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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호주 대륙은 북동쪽으로 항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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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 있지 않다. 지도 위의 그 장소가 아니다. 왜? 호주 대륙은 움직이니까. 대륙이 움직이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 대륙이 움직인다는 건 지구가 돈다는 사실 만큼이나 지구 위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체감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1915년 독일 기상학자 알프레드 베게너(1880.11~1930.11)가 저서 <대륙의 해양과 기원>을 통해 대륙이동설을 주장했을 때, 논란을 일으켰지만 인정은 받지 못했다.

답은 바다 속에 있었다.

지구의 일종의 퍼즐이다. 유라시아판, 북아메리카판, 남아메리카판, 태평양판, 아프리카판, 인도-호주판, 남극판 등 7개의 커다란 판상(tectonic plate)과 그보다 작은 여러 개의 판들로 이뤄져있다. 이 판들은 해저산맥과 해구를 경계로 나뉘어 있다. 지진파를 통해 바다 밑의 지각 형태를 관찰할 수 있게 된 뒤에야 우리는 이러한 판의 경계를 그려볼 수 있게 됐다. 판의 경계 지역은 불안정하며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지구라는 퍼즐이 보통의 퍼즐과 다른 점이라면 퍼즐 판 하나의 두께가 100km에 이른다는 점이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이 100km 두께의 단단한 암석층 밑에는 힘을 받으면 움직일 수 있고, 실제로 움직이기도 하는 '연약권(asthenosphere)'이 존재한다. 판들은 고정불변의 상태가 아니다. 판의 이동 속도는 대체로 1년에 10cm 이내지만 판마다 속도는 제각각이다.

호주 대륙이 속한 판은 현재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판이다. 하지만 호주에 사는 사람이나 생물들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호주는 매년 7cm씩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770만km2에 달하는 거대한 땅 덩어리니 그저 적도 방향으로 움찔한 정도다. 단, 움직임은 꾸준하다. 지난 1994년 이후 22년 동안 총 1.5m의 거리를 움직였다. 실제 위치와 GPS에 사용되는 위도와 경도 사이에 오차가 1.5m 가량 생기지만, 현재 GPS 시스템에는 대략 5~10m 오차가 있으니 실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호주 지구과학연구원은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지도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내년 초 지도를 갱신할 예정이다. 2020년에 예상되는 이동 좌표에 맞춘 데이터로 갱신하는 만큼 몇 년 간 오차를 감수해야 하지만 지금 지도보다는 차이가 덜하다. 이는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1.5m의 오차는 현재는 대수롭지 않지만, 미래 자율자동차 시대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숫자다. 1.5m의 차이로 내 차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드넓은 호주의 경작지에선 자율 주행하는 트랙터가 농경지를 벗어나 가축의 우리를 침범할 수도 있다.

호주가 이렇게 북으로 계속 움직이면 어디로 가게 될까? 지금 추세대로라면 호주 대륙은 5천만년 뒤엔 중국 남동해안에 부딪치리라 예상된다. 학자들은 지구가 4억년에 한 번씩 초대륙(supercontinent)을 형성한다고 예상하는데, 호주와 유라시아 대륙의 만남을 새로운 초대륙 형성의 신호탄으로 본다. 이를 시작으로, 2억년 뒤엔 새로운 초대륙 시대가 열리리란 예상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도 이 대륙 충돌의 격랑(激浪)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북상하는 호주 대륙 앞에는 인도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가 있다. 이들과 일본 열도가 충돌하면 히말라야 산맥 보다 거대한 산맥이 만들어지고 그 뒤에 자리한 한반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후를 가진 땅이 될 것이다. 고비 사막과 같은 황량하고 건조한 사막이 될 수 있다. 대륙 이동은 우주로 대피하지 않는 한 어떤 주인공도 살아남을 수 없는 거대한 재난 영화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 재난의 속도는 인간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니까.

판의 이동은 지각 변동을 동반한다. 판이 움직이면서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고, 강진이 일어나면서 판의 이동을 촉진하기도 한다. 지난 8월 이탈리아 중부 산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의 경우도 아프리카 판의 이동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로 아프리카 판은 매년 북쪽으로 5cm씩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네팔 지진 뒤엔 히말라야 산맥 일부가 1.5m 낮아지기도 했다.

인간의 과학은 지진이 어떻게, 왜, 언제 일어나는지를 거의 알지 못한다. 어디에서 지진이 일어날지도 예측하지 못한다. 지진파를 이용해 간신히 지구 내부 구조를 엿보는 상태고, 판의 구조나 이동에 대한 지식도 걸음마 단계다. 인간의 과학은 지구 비밀을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까?

지난 8월 26일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지는 일본 도쿄대 지진연구소 기와무 미시다 교수와 도호쿠대 료타 타카시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표지로 실었다. 북대서양의 폭풍에서 기원한 지진파를 관측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이 지진파는 폭풍으로 생기는 바닷물의 진동이 해저의 대륙판에 부딪히면서 생겨난다. 이 관측으로 땅에서 발생하는 지진파 외에도 대기와 해양의 영향까지 총체적으로 지각 변동을 이해할 길이 열렸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판들이 자기 갈 길을 가는 동안 인간의 과학도 지구의 비밀을 알기 위해 달려갈 테다. 거대한 대륙의 움직임을 상상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경이를 선사한다. 세계 지도 퍼즐이 있다면 당장 꺼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맞춰보자. 나만의 초대륙을 만들며 대륙의 이동을 상상해보는 일도 멋지지 않을까.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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