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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로봇을 입고 겨룬다, 사이배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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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녹초가 된 채 집에 돌아온 태연. 소파 위로 쓰러지듯 몸을 던지고는 헉헉댄다. 온몸이 땀범벅이다.

"태연아, 괜찮아 꼴찌면 어때. 가을운동회에서 꼴찌 한다고 하늘이 무너지냐, 땅이 꺼지냐. 무슨 달리기 연습을 목숨 걸고 하니."

"흑, 그럼 평생 거북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라고요? 우사인 볼트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꼴찌를 면할 수 있을 정도의 운동신경만이라도 갖고 태어나게 해줬으면 내가 이 고생을 안 하잖아요. 다 아빠 잘못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빠도 살찐 거북이로 유명했거든. 흑."

"그건 또 그렇지 않아요. 영화와 똑같지는 않지만, 첨단 과학기술 덕분에 인간의 능력을 기계의 힘으로 극대화하는 꿈같은 일이 상당부분 이뤄지고 있단다. 10월 달에 스위스에서 열리는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를 보면 과학으로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을 거야. 첨단 보조장비를 착용한 전 세계 장애인들이 서로 역량을 겨루는 대회인데, 장애인이 선수로 뛴다는 점에서는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과 같지만, 장애인의 의지만큼이나 보조장비의 수준이 승부를 가르는 중요 요인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그럼, 장애인이랑 첨단 기계가 한 팀이 되는 거네요? 신기하다. 어떤 종목이 있는데요?"

"이번이 1회라서 종목이 많지는 않아. 뇌파를 이용한 컴퓨터 자동차게임, 전기자극을 이용한 자전거 경주, 전동 휠체어 경주, 로봇 의족 달리기, 로봇 의수 경주, 로봇 슈트 걷기. 이렇게 6개란다."

"뇌파로 게임도 해요? 이건 진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긴데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MI)'를 활용한 경기인데, 선수들은 뇌파를 측정하는 헬멧과 같은 장치를 쓰고 오로지 뇌파만으로 게임 캐릭터를 조종해서 자동차경주를 한단다. 극도로 미미하게 변하는 뇌파를 잡아내는 기술도 뛰어나야 하지만, 주변의 소음이나 감정상태 변화 등에 동요하지 않고 완벽하게 게임에 집중하는 장애인 선수의 의지도 정말 중요한 종목이야. 또 전기 자극 자전거 경주는 완전 척수장애인의 피부에 전극을 부착한 다음, 선수가 미세하게 근육을 움직일 때 이를 포착해서 자전거 바퀴를 움직이는 경기야. 역시 첨단 센서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이지."

"로봇 의수 경주는 로봇팔을 장착한 선수들이 옷걸이에 옷 걸기, 빨래집게 꽂기 등의 종목에 참가한단다. 근육과 신경에서 나오는 미미한 신호를 해독해서 선수가 지금 어떤 행동을 하려는지 파악한 다음, 로봇이 그 행동을 대신하는 거지. 로봇 의족 달리기도 같은 원리인데, 로봇다리를 장착한 선수들이 계단 오르기나 장애물 통과 등의 종목에 참가하지. 또 척수마비 선수들이 로봇슈트를 입고 누가 더 잘 걷는지를 겨루는 경기와 전동 휠체어 경기도 진행된단다."

"이런 기술이 엄청 발달하면 장애인도 자신의 장애를 별로 느끼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날이 곧 오겠어요. 빨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빨리 오도록 하는 게 바로 사이배슬론을 개최하는 이유란다. 그 동안에는 첨단 로봇기술과 뇌과학 등을 총 동원해 이런 보조장비를 만들어도 진짜 필요한 사람한테까지 가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래서 이런 대회를 통해 장애인들이 어떤 불편을 겪고 있으며, 그래서 어떤 장비가 필요한지, 현재의 기술수준은 어떤지 등을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리고 지지를 얻으려는 거야. 지지가 모이면 과학자들이 맘껏 이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테고, 이를 생산해서 장애인에게 공급하는 기업도 늘어날 테니 말이야."

"그런 지지라면 전 온몸을 불살라서라도 할 수 있어요. 물론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긴 하지만, 이런 기술이 막 퍼지면 저 같은 느림보를 빨리 뛰게 해주는 보조장비도 나올 테고, 그럼 거북이라는 별명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요? 굳이 페달을 돌리지 않아도 학교까지 저를 척척 데려다주는 자전거가 나올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굳이 마우스나 키보드를 조작하지 않아도 뇌파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완전 완전 신나요!"

"어쩜, 넌 역시 내 딸이 맞구나.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거든. 나대신 세수나 양치를 해주는 로봇장갑이나, 누워서 편하게 뇌파로 보고서를 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껏 행복했지 뭐냐. 게으름과 느림이라는 점에서 우린 어쩜 이리 붕어빵인게냐?"

"그럼, 말 나온 김에 붕어빵이나 사다 먹을까요? 모퉁이에 새로 온 붕어빵아줌마 솜씨가 아주 끝내주시더라고요."

"나도 딱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찌찌뽕!"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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