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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Feel']김정미에게 보내는 박수, 그리고 미안함2017.04.14 09:51
북한전 페널티킥 선방…본선 이끈 촉매제 역할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김)정미 씨 내년에 열릴 예정인 2018 요르단 여자 아시안컵 예선에서 북한하고 만날 확률이 있는데…."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는 2016 대한축구협회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당시 김정미(33, 인천 현대제철)는 '올해의 여자 선수'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김정미는 여자 축구의 산증인입니다. 2003 미국 여자 월드컵을 유일하게 경험했고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에서는 후배들을 이끌고 16강에 진출하는 힘을 보여줬습니다. 2016년에는 2월 20일 리우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북한전에서 A매치 통산 100경기 출전으로 권하늘(29, 보은 상무)에 이어 두 번째로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에 가입하는 기쁨을 누렸으니 당연히 올해의 여자 선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 김정미에게 '조이뉴스24'는 당시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여자 아시안컵 예선 조편성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상황에 따라 북한과 한 조에 묶여서 예선을 치를지도 모른다"고 귀띔을 했기 때문이죠.

이제는 지나간 예선이 됐지만, 북한은 아시아 축구연맹(AFC)에 예선전 유치 신청서를 냈죠. 타지키스탄(A조), 팔레스타인(C조), 베트남(D조) 유치에 성공했고 B조 예선 개최국이 됐습니다. 한국의 경우 조편성에서 베트남과 톱시드인 1번 포트에 묶여 33%의 확률로 북한을 만나게 됐고요.

북한은 2011년 독일 월드컵 본선 당시 도핑테스트에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이 나와 최하 시드인 5번 포트로 밀렸습니다. 괌, 이라크, 싱가포르, 시리아, 타지키스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전력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팀들과 묶여 버려 한국과 만날 가능성이 컸던 겁니다.

'천적' 북한은 참 껄끄러운 존재입니다. 중국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고 일본에도 대등한 수준이 됐습니다. 일본에는 최근 3경기 2승 1무로 앞서고 있고요. 그런데 북한이 참 애를 먹입니다. 리우 올림픽 본선도 북한과 1-1로 비기는 바람에 좌절됐습니다. 앞서 2015년 동아시안컵에서도 0-2로 패해 넘어야 할 산이 됐습니다.

질문을 들은 김정미는 북한에 대해 정면 돌파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동계 훈련부터 제대로 준비해서 WK리그와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할거에요. 어린 선수들과 서로 경쟁하면서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가고 있고요. 어린 시절 훈련하던 선수들과 하고 있어서 제대로 준비하리라고 봐요. 조만간 북한처럼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며 치열한 내부 경쟁이 북한에 맞서는 힘을 작용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운명처럼 새해가 되고 1월 열린 조추첨에서 33%의 확률은 한국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말이 씨가 됐다고 북한과 한 조에 묶인 겁니다. 괜스레 김정미에게 미안해진 겁니다.

그러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아시안컵 본선 진출의 기적을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해내고 말았습니다. 북한과 1-1로 비긴 뒤 인도 10-0, 홍콩 6-0, 우즈베키스탄 4-0으로 이기며 다득점에 앞서 본선 티켓을 얻었습니다. 본선이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 최종예선을 겸하기 때문에 정말 큰 소득인 겁니다. 김정미는 네 경기 모두 골문을 지키며 몸을 던졌습니다.

사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평양에 간 공동취재단이 전달하는 기사와 1분 안팎의 짧은 영상 외에는 알 방법이 없었기에 "잘했다"는 말만 건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 자체 방송인 KFATV가 자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한 북한전 47분 편집 영상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미안함의 깊이가 더 깊어졌습니다.

울리 슈틸리케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요한 크루이프가 아닌 여자 대표팀의 북한전 동영상을 선수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투혼의 정석이었습니다.

5만여 관중은 자동응답기처럼 한국이 볼을 잡으면 야유를 재생하고 북한이 공격하면 "와~" 함성을 내뿜습니다. 김정미를 향해 불을 강하게 붙이고 건드리는 행동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전반 5분 위정심의 페널티킥을 막은 뒤 다시 볼을 잡는 과정에서 상대에 발로 차였지만 참고 끝까지 뛰는 모습은 후배들의 승리욕을 불타게 만들었습니다.

1-1 동점이던 후반 45분이 지나 7분의 추가시간이 주어진 뒤 김정미를 포함해 선수들이 북한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지는 투혼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필드플레이어들이 조금이라도 더 쉬도록 미드필드까지 올라와 프리킥의 키커로 북한 진영까지 길게 킥을 하는 보이지 않는 배려까지 했습니다. 주심의 종료 호각이 울린 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누구보다 기뻐한 김정미입니다. '세대교체'를 단행하려다 북한과 한 조가 된 뒤 김정미를 호출한 윤 감독에게 제대로 보답한 겁니다.



김정미는 13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과 만나 "키프로스컵부터 시작이 좋았다. 그 때 뭉친 것이 예선전까지 이어졌다.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면서 더 많이 대화하는 등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며 투혼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욕심도 여전합니다. 프랑스 월드컵 본선 티켓을 얻어낸다면 한국 여자 축구 역사상 최초 최다 본선 출전자가 됩니다. 김정미는 "윤덕여 감독님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라고 하세요. 근육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물론 목표는 갖고 있고 노력도 할 겁니다. 후배 강가애(구미 스포츠토토)도 좋은 선수예요. 제가 보고 배울 정도니까요"라며 승리욕과 배려를 동시에 표현하더군요.

김정미는 평양에서 4경기를 뛰면서 A매치 110경기를 기록했습니다. 김정미 덕분에 조소현(현대제철)도 100경기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아직 대기자는 많습니다. 지소연(첼시 레이디스)이 95경기, 전가을(현대제철)·유영아(구미 스포츠토토)가 각각 82경기로 영광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아직은 더 뛰어도 되는 맏언니 김정미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정미 선수, 기억은 못 하겠지만 말이 씨가 되게 만들어 미안했어요.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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