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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귀환·초라한 퇴장…결국 막내린 '김성근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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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전격 사퇴…수많은 논란 속 불명예 퇴장

[조이뉴스24 김지수기자]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결국 지휘봉을 내려놨다. 한화 구단은 지난 23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김 감독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한화와 김 감독의 불편했던 동거는 마침내 끝났다.

올시즌을 끝으로 3년 계약이 종료될 예정이었던 김 감독은 끝내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김 감독은 한화에서 331경기 152승 3무 176패(승률 0.463)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숙원인 팀의 우승과 포스트시즌 진출은 커녕 5할 승률에도 한참 미달했다.

지난 2014 시즌 가을 한화 사령탑 부임 당시 받았던 환호와 기대는 모두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6년 전 갑작스런 경질과 팬들의 응원

김 감독은 SK 와이번스 사령탑을 맡고 있던 지난 2011년 8월18일 시즌 중 경질됐다. 경질되기 전날 문학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이번 시즌을 마친 뒤 구단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곧바로 유니폼을 벗었다. 구단과 재계약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시즌 중 충격적인 경질 통보를 받았다.

당시 김 감독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시즌 동안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3회·한국시리즈 준우승 1회를 달성하며 1984년 OB 베어스에서 프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SK 팬들은 크게 반발했다. 김 감독이 경질된 8월18일 SK가 문학 삼성전에서 0-2로 패한 직후 팬들은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그라운드에서 SK 유니폼과 깃발을 불태우고 물품을 파손하는 등 구단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SK에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주고 '왕조'를 이룬 김 감독의 존재는 팬들에게 그야말로 '야신' 그 이상이었다.

김 감독은 경질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응원 속에 떠날 수 있었다.

2014년 가을 화려했던 귀환

김 감독은 SK를 떠난 이후에도 야구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국내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감독을 맡으며 프로에서 방출됐던 선수들을 지도했다. 김지성(개명 전 김영관, 현 KIA) 안태영(전 넥센) 윤병호(현 NC) 김종민(현 kt) 등을 프로로 다시 보내면서 '야신'의 명성을 이어갔다.

2014년을 끝으로 원더스가 해체되며 자연스레 '야인'이 되면서 김 감독의 영입을 요청하는 한화팬들의 요구가 쇄도했다. 당시 한화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며 팬들의 마음에 큰 상처가 나 있었다. 몇몇 극성 팬들은 한화그룹 본사 앞 1인 시위부터 청원 영상까지 제작해가며 김 감독 영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한화는 팬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김 감독을 3년 총액 20억원의 조건으로 모셔오는데 성공했다. 현장으로 돌아온 김 감독은 연일 화제였다. 한화와 김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포스트시즌이 묻힌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한화는 김 감독을 적극 지원했다. 김 감독의 취임과 함께 FA 선수였던 권혁(4년 32억)·배영수(3년 21억5천만원)·송은범(4년 34억)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한화팬들은 연일 강훈련에 매진하는 김 감독과 한화 선수들을 보며 탈꼴찌와 함께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부푼 꿈을 꾸기 시작했다.

혹사 논란 속 끝없는 추락... 그리고 초라한 마지막

한화가 김 감독에게 기대했던 건 팀의 재건이었다. 김 감독이 만년 약체 태평양 돌핀스(1989~1990)·쌍방울 레이더스(1996~1999)를 가을 야구로 이끌었던 것처럼, SK를 '왕조'의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이글스의 비상을 이룩해주기를 바랐다.

한화는 2015 시즌 초반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키며 가을 야구 진출의 꿈을 키워갔다. 7월까지 5할 승률을 유지하면서 지난 2007년 이후 8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이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8월부터 추락이 거듭됐다. 시즌 초반 잦은 연투로 우려를 샀던 권혁이 여름을 버티지 못했다.

김 감독은 혹사 논란 속에서도 잦은 퀵후크와 투수 운용을 밀어붙였지만 결과는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였다. 68승76패로 6위를 기록하며 탈꼴찌에는 성공했지만 당초 기대했던 성적과는 거리가 있었다.

2015년의 실패에도 김 감독은 2016 시즌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4월에만 승패 마진 '-11'을 기록하며 사실상 시즌 초반 순위 싸움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권혁은 결국 무리한 연투를 버티지 못하고 수술대에 올랐고 한화는 전년보다 한 단계 하락한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전폭적인 지원에도 끊임없는 논란과 함께 추락을 거듭하자 김 감독에게 지지를 보냈던 팬들은 고개를 돌렸다. 한화 구단도 지난해 가을 박종훈 단장의 취임과 함께 김 감독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며 변화를 모색했다.

김 감독은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난 2월 스프링 캠프부터 박 단장과 마찰을 빚었다. 지난 4월 2군 소속 선수의 1군 동행 훈련 문제를 놓고도 대립하면서 충돌했다. 김 감독과 박 단장의 불편한 동거는 1년을 채 가지 못했다. 한화는 올시즌 내내 하위권에 머물면서 부진한 경기력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김 감독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6년 전과 정반대다. SK 감독직에서 물러났던 당시에는 큰 응원과 격려를 보내며 권토중래를 크게 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올해 75세라는 고령의 나이와 한화에서의 행보를 볼 때 다시 프로야구 감독직을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게 야구계의 일치된 시각이다.

KBO리그 역사상 가장 화려하게 돌아왔던 지도자. 그러나 마지막은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쓸쓸하게 퇴장했다. 프로야구를 들었다 놨던 김성근 야구가 이렇게 막을 내리고 있다.

조이뉴스24 김지수기자 gsoo@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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