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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 [HISTORY] 우리나라 전기공학의 선구자, 한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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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10일, 우정사업본부에서는 한국의 과학 시리즈, 첫 번째 묶음으로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 우표를 발행했다. 이번 우표에 실린 과학자는 이론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 나비박사 석주명(1908~1950), 그리고 한만춘(1921~1984)이다. 오늘 소개할 한만춘 박사는 나머지 두 박사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의 전기공학을 개척하고 전력산업을 근대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어느 한 종합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현장. 신입생을 앞에 두고 한창 자신의 전공을 홍보하던 선배들의 경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열기가 느껴지던 순간, 갑자기 강당을 비춰주던 불빛이 전부 꺼지면서 순식간에 암흑의 도가니가 됐다.

웅성거리던 시간도 잠시, 이윽고 전원이 켜지고 불이 들어오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기과 회장이 단상에 올라가 멋지게 두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많은 기술이 있어도 전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일종의 퍼포먼스였을까. 믿거나 말거나인 이 이야기는 모대학 전기과의 전설적인 무용담으로 남았다고 전해진다.

전쟁과 수탈로 인해 산업 기반이 약했던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세계 10위권의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전기공학자들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적부터 수재 소리를 들었던 한만춘 박사는 1943년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전기공학과 1회 졸업함과 동시에 조선전업주식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5년 후인 1948년,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인 전기공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5년부터는 연세대학교 이공대학 전기공학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초대 공학부장, 이공대학장, 산업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 국내 최초 아날로그 컴퓨터 제작

한만춘 박사의 가장 큰 업적은 우리나라 전기공학의 기반을 쌓은 것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우리나라는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에도 빠듯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당연히 전기공학에 대한 기초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이에 한만춘 교수는 우리나라 전기공학의 기초를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학문의 기초를 세우는 일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번역과 출판이다. 그가 번역 작업에 몰두하기 전만 해도 우리말로 된 교재가 없어 대학에서 일본, 미국의 교재를 사용해 강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한만춘 교수는 1960년 <교류회로> 번역 출판을 시작으로 <배전공학>, <송전공학>, <발전공학>, <자동제어이론>, <전기통론연습> 등의 저서를 출간해 후학들의 학문 증진에 힘썼다.

그의 또 하나의 업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1961년 제작한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다. 우리나라의 첫 아날로그 컴퓨터인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는 이후 전력 계통의 안정도 개선 및 제어기 개발, 원자력 발전의 안정성 연구 등 많은 연구에 쓰이면서 당시 우리나라 전기전자공학 수준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또 그 제작과정과 기술이 논문을 통해 전수됨으로써 컴퓨터 기술 개발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는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557호로 등록됐다.

■ 전기제어공학을 원자력 발전에 응용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관련 국비 유학생인 한만춘 박사는 원자력 발전의 국내 활성화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61년 영국 노팅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전기제어공학이론을 원자력발전 안정성에 응용한 연구로 원자력 발전에 큰 도움을 줬다.

한만춘 박사는 산학협력의 기틀을 닦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국무총리실 평가교수,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 기술위원장, 한국기술검정공단 이사, 전국경제인연합회기술조사센터 자문위원, 동력자원부 정책자문위원, 공업진흥청 표준심의회 전기부회 위원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등 생전에 그가 역임한 수많은 직함은 한만춘 박사가 과학기술 활성화에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공로를 인정받아 한만춘 박사는 국민훈장 동백장, 동탑 산업훈장,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수여했다.

한만춘 박사가 별세한 지 약 30년. 강산이 3번 바뀔 시간이지만 그의 발자취는 아직도 길이 남아있다. 그중 하나가 그를 기리는 후학들이 조직한 ‘춘강 한만춘 교수 기념사업회’다. 춘강 한만춘 교수 기념사업회는 ‘춘강학술상’을 제정해 전기 및 전자공학 분야 연구자에게 수여하고 있다. 전기공학의 선구자가 후배 연구자에게 주는 일종의 격려다.

글 : 김청한 과학칼럼니스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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