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수조원대 손실을 주장해 온 정유업계가 14조원대 가격 담합 혐의로 기소되면서 손실보전 협상에서도 수세에 몰리게 됐다. 정부와 업계가 손실 산정 기준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여온 가운데 검찰이 정유사 측 손실보상 논리를 반박할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향후 정산 과정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들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이달 중 정산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지난 3월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해왔다.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에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현재까지 7차 최고가격 지정이 이뤄졌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시행 과정에서 발생한 정유사들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4조2000억원 규모의 예비비도 편성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전체 손실 규모가 약 4조~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실제 보전액 산정을 앞두고 정부와 정유업계는 손실을 어떤 기준으로 계산할지를 놓고 상당한 견해차를 보여왔다. 정유업계는 국제 시장에서 석유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던 가격을 고려해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MOPS)에 가까운 수준을 보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정부는 원가에 적정 마진을 더한 기준금액을 토대로 손실액을 계산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손실을 산정할 경우 실제 생산비용을 넘어 정유사가 얻을 수 있었던 잠재적 이익까지 정부가 보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산업부는 지난 1일 '석유판매가격 최고액 지정에 따른 손실보전을 위한 재정지원 규정'을 고시하고 원가에 적정 마진을 더한 기준금액이 정부가 지정한 최고가격을 얼마나 웃도는지 계산해 그 차액 범위에서 손실보전액을 결정하기로 해 MOPS 가격을 기준으로 한 손실 보전안은 무산됐다.
그러나 원가의 인정 범위를 놓고도 정부와 업계 간 추가적인 논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고시는 원유 구입가격을 비롯해 운송비와 보험료, 인건비, 국내 유통비 등을 원가 항목으로 규정했지만 이자비용과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재고손실 등의 반영 여부는 명시하지 않았다. 어떤 비용을 실제 손실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최종 보전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14조원대 가격 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손실보전 논의에도 변수가 생겼다. 그간 수조원대 손실을 주장하며 보전 규모 확대를 요구해 온 정유업계로서는 가격 결정 과정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담합 수사 과정에서 정부와 정유업계 간 핵심 쟁점인 손실보상 기준과 관련해 정유사 측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관련 자료를 산업부와 공유할 예정으로, 해당 자료의 내용에 따라 정유사들이 주장하는 손실 규모와 산정 근거의 적정성이 정산 과정에서 다시 검증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는 일단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로부터 담합 수사 관련 자료를 전달받으면 내용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검찰 기소와는 무관하게 손실액에 대해선 보전을 하겠다는 입장"이라면서도 "검찰로부터 관련 자료가 넘어오면 검토해볼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손실보전 규모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정유사들이 제출하는 원가와 공급가격,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만큼 검찰이 확보한 자료가 이들 자료의 신뢰성과 손실 산정 방식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손실 인정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정유업계의 요구도 이전보다 힘을 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한얼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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