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쾅'
임인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이 산회를 알리는 의사봉 소리가 울리자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들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통신서비스 재판매(MVNO) 도입 근거'가 담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길 기대했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방송통신위 관계자들이 다음 주 초, 이달 말로 예정된 임시국회 내에 재판매법의 재논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재판매법이 17대 국회의 문을 넘긴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9시경부터 과기정위 주변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국회 의사당 4층에 위치한 전체회의실과 소위원회 회의실에 과연 정족 수를 채울 수 있는 의원들이 참석할 지 여부가 관심사였다. 9시 소위원회와 전체회의가 같은 시각 마련될 만큼 17대 국회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의원님은 언제 오세요?", "안양에서 오고 계세요.", "소위 정족 수 돼?" "10시 본회의 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하는 거요, 안하는 거요?"
소위원회 멤버인 이종걸, 서상기, 김희정, 변재일, 박형준 의원 등이 속속 나타나면서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소위원회는 시작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지난 6일 전체회의에서 일부 의원들이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출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방통위의 자의적인 권한만 확대됐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한 터라 회의장 안팎에 있던 방송통신위 관계자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과기정위 한 보좌관은 "지난 1월28일 국회에 제출된 전기통신사업법은 사실상 전면 개정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소위원회 한번 열린 것 밖에 없다"며 "방통위가 무리하게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사실상 소위를 넘기기 힘든 법안이라는 것이다.
다른 보좌관은 "이미 지난번 전체회의에서 '보류'가 됐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17대에선 물건너 간 얘기라는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그러나 소위원회는 예상과 달리 일부 법률안의 수정을 통해 재판매법안을 통과시켜 전체회의에 상정키로 결정했다. 아울러 논란이 거듭된 '위치정보의보호 및 이용등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마저 전체회의에 상정했다.
과기정위의 한 보좌관은 "위치정보 보호법에는 모든 휴대폰에 '핫키'를 장착해 위기상황에 경찰 등에 자신의 위치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취지는 좋지만, 국민의 선택권을 법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소프트웨어 다운방식이나 단축 키 활용 등 다른 대안도 있지만 휴대폰에 핫키 의무장착은 문제가 많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방통위 관계자들의 얼굴은 다소 밝아졌지만, 일부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당황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러나 곧이어 시작된 전체회의에선 재판매법, 위치정보법의 17대 국회 통과를 반대하는 의원들의 비판이 터져 나왔다.
통합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보조금 일몰제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뒤 일몰제가 연장되는 우를 겪지 않았나"며 "재판매법은 행정권을 자의적으로 남용할 소지가 큰 이 법안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반면 행정의 규제권한만 남용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류근찬 의원은 "전기통신사업법은 상임위에 안올리기로 한 것인데 넘어왔다"며 "논의를 이중으로 하는 게 어딨냐"고 따졌다.
이날 겨우 11명의 의결 정족수를 채워 시작된 과기정위는 일부 법률안 통과에 불만을 가진 의원들이 자리를 비우며 위태위태 하다 결과적으로 재판매법안 상정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소위원회의를 진행한 변재일 의원은 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와 만나 "재판매법은 정부의 정책실패를 사업자에게 의무를 부과해 모면하려는 성격이 짙었지만 국회가 대안을 내놓지 못한데다 3년간 한시적 적용, 망이용 대가산정 범위의 포괄적용 등 수정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소위에서 전체회의로 상정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체회의에서 결국 통과되지 못한 것은 방송통신 융합 시대의 제대로된 활성화 법안을 만들어 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며 "한나라당이 주도할 18대 국회에서도 지금 수준의 법안이라면 쉽게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치정보의보호 및 이용등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논의과정에서 과기정위 내부 분란을 초래했다.
임인배 위원장이 소위를 넘어 온 위치정보보호법을 상정하려 하자 김영선 의원은 "17대 내내 위치정보 보호법은 갑론을박이 있었고, 상임위에서 이미 결론이 난 상황이다"며 "위치정보보호법은 인권에 관한 심각한 법인데도 (합리적인) 절차도 안밟고 통과시킨다면 말이되나. 이런 식의 날치기 통과가 어딨냐"며 강력히 항의했다.
유승희 의원도 "위치정보법은 아동성폭행 등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꼭 필요하다는 점이 있지만 인권침해 논란과 함께 핵심이 수사권에 대한 문제"라며 "상임위 안건에 상정 않기로 여야가 합의된 법안이 상정된 것에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위치정보법 통과에 적극 나섰던 서상기 의원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거나 하는 내용은 모두 제외됐다"며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본 뒤 신중한 발언을 해야 하는데도 인권침해다, 날치기다 하는 것은 동료 의원에 대한 모독이다"고 맞섰다.
결국 임 위원장은 "양당 간사간 합의가 안되면 이 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임 위원장은 "18대에서 논의하라"고 결론 내렸다.
이날 과학기술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법 전부개정법률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전파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통과됐다.
/강호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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