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통령선거에는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파란많았던 2002년 대선 때도 볼 수 없던 것이다. 사용자가 손수 제작해서 인터넷에 띄운 영상물 즉, '동영상UCC'다.
많은 사람들이 올 대선과 동영상UCC를 연결지어 말한다. 아마 최대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판을 가를 수 있는 인화성과 폭발력을 가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예측에 공감한다.
올 대선에서 동영상UCC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다. 그 어떤 게 담겨 있는 지 모르고, 뭐가 튀어나올 지 모르는.
'열지 마라'는 제우스의 명령도 판도라의 호기심은 막지 못했다. 그렇듯, 뭇사람의 호기심에 'UCC상자'는 열릴 수 밖에 없다. 규제? 관리? 제우스의 헛된 명령처럼 애시당초 먹히지 않을 주문이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분위기는 이미 그렇게 간다.

우리 사회는 지난 2004년 4.15총선 때 동영상UCC의 쇼크를 이미 경험했다. 이른바 '노인폄훼 발언 동영상' 사건이다. 당사자는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 그는 3월26일 대구의 한 호텔에서 국민일보·야후코리아 등이 운영한 대학생 총선기자단과 인터뷰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질문이 사단을 일으켰다. 정 의장은 '60대 이상 노인들은 투표하지 않고 집에서 쉬어도 된다'는 뜻의 말을 했다. 문제의 발언이 담긴 동영상이 4월1일 공개됐다. 전국의 노인들은 분노했다. 4.15총선 판도를 뒤흔든 '노풍(老風)'의 시발점이었다. 정 의장은 그 화(禍)로 선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비례대표도 반납했다.
지난해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동영상UCC는 그 위력을 보여줬다.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조지 앨런(공화당)은 낙승이 예상됐다. 경쟁자인 민주당 후보 짐 웹은 지명도가 너무 낮았다. 방심한 앨런 상원의원이 불의의 타격을 받는다. 짐 웹 진영의 인도계 자원봉사자를 '원숭이'라고 부른 장면이 동영상으로 찍힌 것. 삽시간에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퍼졌다. 앨런 상원의원은 '인종차별자'로 낙인이 찍혔다. 선거의 승자는 짐 웹.
몬태나주 상원의원 콘래드 번스(공화당)도 동영상UCC의 희생물이었다. 그는 농장법안(Farm Bill) 공청회 도중 잠깐 졸았다. 경쟁자인 존 테스터(민주당)가 고용한 파파라치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테스터 후보 측은 10초 짜리 조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를 본 몬태나주의 농민들은 분노했다. 번스는 결국 낙선했다.
이들 선거 동영상UCC 사례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모럴의 측면과 결합했다는 점이다. 해당 정치인들의 잘잘못을 가리기는 명확했다. '정치인들은 잘못했고, 동영상UCC는 잘했다.' 누구나 이렇게 인식했다. 동영상으로 찍힌 당사자들은 끔찍한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반면, 동영상UCC는 비난받을 만한 일을 찾아내 대중에 알린 공을 인정받았다.
이들 사례는 동시대의 대중과 정치권에는 너무나 생생한 경험을 안겨줬다. 정치인들은 동영상UCC가 자신들의 생사까지 좌우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대중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실감했다. 탄력받은 대중은 앞으로 동영상UCC 생산과 전파에 더욱 열을 올릴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의 움직임이다. 정동영-앨런-번스 사건의 교훈 때문일까. 동영상UCC에 대해 내놓고 거부반응을 드러내지 않는다. 거론되는 여야 대선 주자 그 누구도 동영상UCC에 대해 '몹쓸 것'이라고 저어하지 않는다. '거부했다간 유권자에게 밉보인다'고 여기는 듯한 '학습효과'가 엿보인다. 동영상UCC 때문에 넘어진 '그들'과 같은 세계를 사는 정치인들로선 본능적인 입장 선택일 성 싶다. 거리두기, 차별화, '동영상UCC가 와도 나는 떳떳하다' 류의...
대선 주자들은 오히려 동영상UCC를 적극 활용하려고 한다. 한나라당 후보들이 더 열심이다. '인터넷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졌다'는 이유로 '인터넷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한나라당이다.
2007년 한국의 대선에서 동영상UCC는 '선거혁명'을 낳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동영상UCC 선거혁명은 무혈(無血)혁명이 될 것 같다. 이해 당사자인 정치권조차 저항없이 환영하니 그럴 것이다. 세상을 바꿀만한 새로운 것이, 이렇듯 좋은 상황에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요즘 동영상UCC에 대처하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자세를 보면 걱정스럽다. 최근 포털 주최 좌담회 등에서 나타난 선관위의 동영상UCC에 대한 입장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0대 미성년자는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동영상 UCC를 만들어 띄울 수 없다 ▲성인의 경우 법정 선거운동기간(23일간)에만 가능하다 ▲법정 선거운동기간에도 특정 후보를 지지·반대하는 동영상 UCC는 안된다 등등.
한 마디로 말하면 금지, 규제 일색이다. 동영상UCC가 나쁘게 쓰일 수 있는 측면만 보는 심리가 묻어난다. 동영상UCC의 순기능을 받아들여 선거문화 개선의 긍정적 요소로 삼아보려고 하는 태도는 찾기 어렵다. 몽둥이를 들고서, 전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감시하고 규제하려는 자세가 역력하다.
물론 동영상UCC에는 천사와 악마의 얼굴이 같이 있다. 폐해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살인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식칼이나, 사고를 낼 수 있는 자동차와 본질적으로 같은 범주의 것이다. 동영상UCC를 악의적으로 써서 '범죄'가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인터넷IP 추적 등을 통해 범인을 잡을 수 있는 길이 있다. 기존 형법·선거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나쁘게 쓰일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원천봉쇄 하려는 듯한 선관위의 자세는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동영상UCC는 국민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19세기, 20세기와는 다른 문명의 틀에서 보편화되고, 국민이 좋아하는 새로운 표현방식이라는 것이다. 새로 자리잡아가는 '현실'을 정부가 전향적으로 학습하고 수용하길 국민은 원한다.
동영상UCC는 또 새롭고도 유력한 국민 참여와 검증의 수단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 지지율이 10%대다. 이는 변화를 바라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국민이 대선 국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려고 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국민은 선거 부정을 감시하고, 후보의 언행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싶어 한다.
국민은 지금 동영상UCC를 들고 스타트 라인에 서 있다. 후보 검증은 경쟁자나 언론사만 할 자격을 부여받은 게 아니다. 동영상UCC로 가능해지고 입증된 국민의 검증 욕구는 막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대선국면에서 온갖 동영상UCC가 범람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이성은 '홍수' 속에서 '식수'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성숙돼 있다.
동영상UCC 규제는 또한 가능하지도 않다. 한국은 4천만이 네티즌이다. 휴대폰 사용자도 4천만이다. 블로거들은 몇 백만인지 헤아릴 수도 없다. 이들이 정치변화의 열망을 담아서 만들어 올릴 수많은 동영상UCC를 일일이 감시하고 단속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헛품 파는 일이다. 더구나 대선 주자들조차 앞다퉈 동영상UCC를 적극 활용하려는 판이다. 국민의 동영상UCC를 규제하겠다는 것은 씨가 안 먹힐 발상이다.
미디어와 정치? 지난 1987년, 1992 대선의 승리자 노태우, 김영삼은 신문시대의 산물이었다. '토론의 달인' 김대중은 1997년 대선에서 TV의 후광을 입었다. 2002년 노무현은 인터넷혁명의 수혜자였다. 2007년 대선은 동영상UCC 검증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는 자가 승자가 될 터다. 이는 한강 물줄기처럼 큰 흐름이다. 흐름은 역행한다고 해서 거슬러지는 게 아니다.
2007년 한국의 대선은 동영상UCC를 국민, 정치권과 정부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보여주게 되는 특이점이 있다. 선관위는 거룻배로 한강을 거슬러 가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재권 논설실장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