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정부가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면 생산량에 따라 세금을 깎아주는 ‘국내생산세액공제’를 신설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자국 내 첨단 제조업 생산을 유도한 것처럼 국내 생산기반을 지키고 확대하기 위한 ‘한국판 IRA’ 성격의 제도다.
재정경제부는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 국내생산세액공제 신설 방안을 담았다.

지원 대상은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AI) 로봇부품, 핵심소재, 태양광, 풍력 등 6개 분야다. 기업이 해당 제품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판매하면 생산량에 품목별 기준공제액을 곱한 만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글로벌 경제안보와 녹색전환 측면에서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품목을 국내 생산·판매량에 따라 지원하는 국내생산세액공제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조만희 재정경제부 세제실장도 "중요성과 유망성, 지원 필요성을 검토해 6대 분야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장 지으면 혜택→국내에서 만들어야 혜택
이번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세제지원의 기준이 '투자'에서 '생산'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기존 통합투자세액공제는 공장을 짓거나 생산설비를 들이는 데 투자한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깎아준다. 반면 새 제도는 공장 건설 이후 국내에서 얼마나 생산했는지를 기준으로 혜택을 제공한다.
쉽게 말해 공장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내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혜택도 커지는 구조다. 생산시설과 일자리, 핵심 공급망을 국내에 묶어두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미 미국 생산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미국의 지원을, 국내에서 생산하면 이번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양국의 지원 조건과 생산비용을 함께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생산세액공제와 통합투자세액공제는 중복 적용되지 않는다. 기업들은 국내외 생산거점과 투자 시기, 적용 가능한 지원 규모를 종합적으로 비교해 생산 전략을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양 만들어도 지방 공장이 더 받는다
공제 규모는 생산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정부는 수도권에 기본계수 1.0을 적용하고, 비수도권 광역시는 1.1, 그 밖의 비수도권은 1.3을 적용한다. 인구감소지역 등 우대지역에는 최대 1.5의 계수를 적용한다. 모든 비수도권이 일괄적으로 1.5배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가령 특정 반도체 제품의 기준공제액이 개당 100원이고 연간 생산량이 100만개라고 가정하면 기본 공제액은 1억원이다.
수도권 공장은 계수 1.0을 적용받아 1억원을 공제받지만, 비수도권 일반지역 공장은 1억3000만원, 우대지역 공장은 1억5000만원을 공제받는다.

실제 기준공제액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같은 제품을 같은 양 생산해도 공장 소재지에 따라 기업이 받는 세제 혜택은 달라진다.
정부는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와 통합투자세액공제에도 지역별 계수를 도입한다.
구 부총리는 "국가적 과제인 지방주도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지방에 더 많은 혜택이 가도록 세제를 개편하겠다”며 “지방의 세제 혜택이 수도권의 최대 1.5배가 되도록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산업 투자를 비수도권으로 분산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가 추진하는 호남·충청·경남권 첨단산업 육성 정책에 세제 유인을 더해 기업의 지방 투자를 이끌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HBM·배터리 셀 포함될지는 아직 미정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이 실제 어떤 제품에서 얼마나 혜택을 받을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대상 품목과 품목별 기준공제액은 시행령에서 정해질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낸드플래시, 배터리 셀·모듈·양극재 등이 공제 대상에 포함될지와 제품별 지원 규모는 추후 결정된다.
조 실장은 "6개 분야를 정했고 세부 품목은 시행령에서 규정할 것”이라며 “기준공제액도 생산비용을 고려해 품목별로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완성차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이차전지가 포함됐다. 정부는 완성품보다 핵심 부품과 소재의 국내 생산을 지원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구 부총리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은 이차전지"라며 "전기차 자체보다 이차전지의 핵심 품목을 지원해 전기차가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제도는 10년간 운영되며, 마지막 3년에는 공제액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점감 구조를 적용한다. 지원 종료에 따른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적응 기간이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