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손님보다 매물이 더 귀합니다. 전세가 하나 나오면 집을 보겠다는 예약부터 줄줄이 잡힙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위치한 공인중개사무소. 전용 84㎡(33평형) 전셋집을 찾는다고 문의하자 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목록 대신 대기중인 손님명단부터 설명했다.

이 일대 대표 신축아파트인 '롯데캐슬클라시아' 전용 84㎡ 전셋값은 현재 10억~11억원선에 형성돼 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순수 전세매물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중개업소들은 간혹 매물이 나와도 주말에 방문예약이 한꺼번에 몰려 실제 집을 보기까지 1~2주를 기다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다린다고 해서 집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선 순번의 수요자가 계약금을 먼저 송금하거나 단지구조를 잘 아는 입주희망자가 내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계약을 체결해 방문일정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전세매물이 접수되면 대기손님들에게 먼저 연락을 돌리는데 하루만에 예약 여러건 잡히는 게 일상"이라며 "집을 보여주기로 약속한 날이 오기 전에 앞 순번 손님이 계약을 끝내버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요자들이 집 상태를 하나하나 비교할 여유가 없다"며 "동일평형에 비슷한 동·층이면 사진이나 이전에 봤던 구조만 확인하고 계약금을 먼저 보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은행권이 대출한도를 조이면서 내집마련을 미룬 수요자들이 전세시장으로 대거 밀려난 모양새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이 대출한도 축소를 발표한 지난 8일부터 길음동 주요 신축단지에는 전용 84㎡ 전세매물을 찾는 30·40대 문의가 쇄도했다.
특히 입주연식이 짧고 주거환경이 우수한 '롯데캐슬클라시아'와 '래미안길음센터피스'에 문의가 집중됐다. 매물을 구하지 못한 수요자들은 길음뉴타운 대단지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현재 롯데캐슬클라시아와 래미안길음센터피스 전용 84㎡ 매매가격은 17억~18억원선이다. 길음뉴타운 주요 대단지도 비슷한 평형이 12억~15억원대에 거래된다. 대출한도가 줄면서 매수부담이 커진 실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전세로 발길을 돌린 셈이다.
길음동 일대는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한 출퇴근이 편리한 데다 신축 대단지와 학교, 백화점 등 생활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맞벌이 부부와 자녀를 둔 30·40대가구 선호도가 꾸준히 높다.

그러나 시장에 나오는 순수 전세물량은 거의 멸종단계다. 전용 84㎡ 전세매물은 롯데캐슬클래시아 1건, 길음뉴타운9단지래미안 1건에 불과하다.
전세가 사라진 자리에는 보증금 2억~6억원에 월세 160만~280만원을 받는 반전세가 늘고 있다. 거액의 보증금반환 부담을 줄이고 매달 임대수입을 얻으려는 집주인이 많아진 까닭이다.
또 다른 중개업소 관계자는 B씨는 "롯데캐슬클래시아나 래미안길음센터피스는 입주 당시 전세를 놓았던 집주인들이 대거 실거주로 전환했다"며 "집주인들이 오른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기보다 본인들이 직접 입주하는 경우가 많아 매물이 더 없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출한도가 줄어든 현 상황이 지속되는 동안 세입자 선택지는 반전세로 좁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길음동 신축단지는 입주초기 급전세가 7억원대에 형성됐지만 물량이 소진된 뒤 일부매물이 10억~11억원대에 거래된 상황"이라며 "전세 부족현상이 이어지면 선호도 높은 매물의 가격상승과 반전세 전환 흐름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