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가 미디어법과 관련, 극적 타결로 일단 2월 임시국회를 간신히 넘겼지만 이제부터는 '100일 전쟁'으로 전개되는 형국이다.
여야는 지난 2일 미디어 관련법 중 최대 쟁점인 방송법·신문법·IPTV법·정보통신망법 등 4개법안을 문방위 산하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100일간 논의 후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처리키로 했다.
이같은 합의로 '2월 임시국회 파국'이라는 급한 불을 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히려 또 다른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2월 임시국회가 '100일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모양새다.
특히 여야가 합의키로 한 '사회적 논의기구'가 논란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과 방법, 구성 등에서 여야의 입장 차가 확연하다. "우리는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것(민주당 정세균 대표)"이라며 의지를 다지고 있는 등 100일간의 험로를 예고했다.
◆'사회적 논의기구' 어떻게…與 '표결처리' 방점 vs 野 "여론 반영돼야"
미디어 관련법 처리에 대한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핵심인 '사회적 논의기구'의 성격을 놓고 여야 지도부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은 문방위 산하에 구성될 논의기구를 '자문기구'로 규정하고 있다. 여론수렴을 위한 자문기구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 즉, 논의기구에 법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이 100일간 논의 후 '표결 처리'로 결정짓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반면, 민주당은 이 기구에서 수렴된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합의기구'의 성격으로 위상을 강화시켜 미디어 관련법의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등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시각차에 따라 여야 마찰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3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사회적 논의기구'가 의결권이 없는 자문기구임을 강조하면서 "기구 의견을 수용할 의무도 없고, 거기에 구속되지 않는다"며 "기구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대표는 또 "(기구에서)합의가 안 되더라도 국회 의사를 결정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며 "합의가 안되면 그 기구에서 건의를 못하는 것이며 문방위에서 의사를 진행하고 결정하는 데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표결처리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방위 한나라당측 간사인 나경원 의원은 이날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합의문에 문방위 자문기구라고 명백히 나와 있는 만큼 자문만 하면 된다"며 의결권은 당연히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윤상현 대변인 역시 "사회적 논의기구는 자문기구로서 자문에 충실하는 것이 여야의 합의정신"이라면서 "그러나 (야당이) 아전인수격의 해석과 판단을 하며 옆길로 빠지려고 눈치를 보고 있다. 국회가 넘어야 할 산이 있으면 합의정신에 따라 운영하면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모아진 의견을 바탕으로 독소조항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여론수렴 결과의 반영 노력을 게을리하고 원안을 고수한다면 전혀 수용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 대표는 "논의기구에서 여론수렴 등의 과정을 제대로 거친다고 돼 있는 만큼 여론수렴 결과가 입법에 반영돼야 한다"며 "논의기구는 3월초 구성하게 돼 있기 때문에 국회 문방위에서 구성, 방법과 구성원, 운영 방법 등의 논의를 통해 신속히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방위 민주당측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고 산술적으로 제시된 여론들이 언론악법 개선에 담겨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부수적인 절차만 가지고 국민 마음과 여론을 담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적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기구 활동을 통해 모인 의견들이 향후 미디어법 처리 협상과정에서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명분이 될 수 있는 만큼 당의 입장을 가장 잘 반영할 인사 선정에 공을 들이는 한편, 기구 출범에 발맞춰 가급적 이달 중 미디어법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기구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선정 문제도 쟁점거리다. 민주당은 언론노조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한나라당은 생각이 다르다. 이를 두고 논의가 평행선을 달릴 경우 기구 자체의 무용론 뿐 아니라 문방위 파행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민주당 강경론 확산…100일 전쟁 '물러설 수 없는 野'
사실상 한나라당은 미디어 관련법의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과 내용보다 '표결처리'에 방점을 찍고 있다. 때문에 이 과정에서 여야간 물리적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특히 민주당 안팎으로 강경론이 확산되면서 당 지도부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결의로 여당과 막판 결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번 미디어 관련법은 당초 '1.6합의서'보다 상당폭 후퇴한 것이다. 더욱이 출총제 폐지 및 금산분리마저 양보한 상황이어서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다.
당장 당내에서는 책임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현실이기 때문에 어떻게 통감하는지 스스로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 지도부는 스스로 판단해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경고장을 날렸다.
이 의원은 "미디어 관련법 합의는 0대 100으로 내준 격이어서 한나라당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 해주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참 답답하고 침통하다"면서 "처리시한을 못박은 것은 소수 야당 입장으로서 백기를 들라는 입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고, 표결처리 명시는 다수당의 입장대로 해도 좋다는 것을 허용한 것"이라고 당 지도부를 겨냥해 맹비난했다.
민주당 내 개혁블록인 '민주연대'도 이날 성명을 내고 "100일 논의 뒤 표결처리 합의는 국회의장이 중재한 잠정 합의안보다 대폭 후퇴한 내용"이라며 "이번 합의는 폭력과 협박, 기만 등의 강박에 의한 합의였기에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1차 입법전쟁 이후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민주당 지도부의 안이한 태도가 매우 아쉽다"고 민주당 지도부를 겨냥했다.
이뿐 아니라 언론노조도 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정부와 여당이 원안을 고수한 뒤 시간을 끌다가 100일이 지나면 그대로 처리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면서 "언론노조는 시민·네티즌들과 함께 총력투쟁을 펼쳐 법안을 폐기시키고 정권퇴진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또 "사회적 논의기구에 들어가 정부 여당의 들러리를 서는 것보다는 국민들에게 직접 다가가서 법안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폭로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며 여야가 합의한 사회적 논의기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민주당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처럼 당 안팎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당 지도부로서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사회적 논의기구'로 촉발된 여야 논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철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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