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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준의 이런 야구]'도쿄의 동대문' 진구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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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6대학 리그 성지…78년 JS 홈구장 이동 해프닝

일본 도쿄를 상징하는 야구장은 도쿄돔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야구의 성지'가 있다. 지금은 철거된 동대문구장(1925년~2008년)을 연상시키는 메이지 진구 야구장(明治神宮野球場)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야구장은 종교법인의 소유다. 대학야구의 본터이면서 프로야구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홈구장으로도 크게 사랑받고 있다.

진구구장은 도쿄 신주쿠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무척 뛰어나다. 1925년에 기공해 1926년 완공됐다. 당시 총 공사비는 53만엔이었고, 그 중 종교법인 메이지 진구가 48만엔, 그리고 '도쿄 6대학 야구연맹(와세다·게이오·도쿄·릿쿄·메이지·호세이대 6대학이 1925년 결성)'이 5만엔의 공사비를 부담하면서 학생야구가 우선 사용권을 가지게 됐다. 자연스럽게 대학야구의 성지로 발전했고, 1931년에는 도쿄 6대학 야구연맹이 공사비 55만엔을 부담, 내·외야 관중석 증축 공사를 통해 수용인원을 4만8천785명으로 늘렸다. 이 때부터 도쿄 6대학 야구의 전 경기를 이곳에서 치르고 있다.

그래서 진구구장은 다른 프로야구장과 달리 학생야구(도쿄 6대학 야구연맹)가 프로야구보다 우선시 된다. 아무래도 진구구장의 초기 건설, 확장 및 리모델링 공사에 도쿄 6대학 야구연맹의 돈이 쓰여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장 소유주인 종교법인 메이지 진구는 구장 건설 시 아마추어야구를 진흥 ·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프로야구단이 아마야구에 비해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구조다.

그래도 여러 구단이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해온 역사가 있다. 1962년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니혼햄 파이터스)를 시작으로 1964년 '고쿠테쓰(国鉄) 스왈로스(현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구단 홈으로 진구구장에 터를 잡자 학생야구계에서 크게 들고 일어서기도 했지만 결국은 프로와 아마가 공동사용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1978년 일본시리즈 소동

1978년에는 일본 야구사상 전무후무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해에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강했다. 시즌 동안 선두를 내 주지 않았으며, V9(1965년 – 1973년 일본시리즈 우승)과 76∼77년 센트럴 리그 2년 연속 우승(일본시리즈 실패)을 하며 1978년에도 순항하고 있었다. 시즌 막판 야쿠르트가 대반격을 시작했다. 드라마틱한 역전극과 연승으로 1위를 달리던 요미우리를 3경기차로 앞서며, 구단 창단 첫 리그우승(68승 46패 16무승부)을 거머쥔다. 요미우리로선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리다 막판에 우승을 빼앗긴 뼈아픈 시즌이었다.

구단 창단 후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맛본 야쿠르트는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지역 라이벌이자 NPB의 '공적'인 요미우리를 제치고 거둔 첫 우승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그런데 '가을 야구'를 준비하던 와중에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 78년 개막 전만 해도 구단 관계자는 물론이고, 언론 및 야구 전문가들도 야쿠르트의 우승을 점치지 않았다. 정규시즌을 마치면 모두 짐을 싸서 떠날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기쁘지만 '준비되지 않은' 우승을 하면서 퍼시픽 리그 패권을 차지한 한큐 브레이브스와 일본시리즈를 갑작스럽게 치르게 된 것이다. 7전4선승제의 일본시리즈에선 3∼4경기가 진구구장에서 열려야만 한다.

문제는 이 구장의 우선사용권이 야쿠르트에 없다는 것이다. 이 해의 '도쿄 6대학 추계리그전'이 이미 예정돼 있었던 까닭에 '일본 야구의 최고봉' 일본시리즈가 구장 사용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다지만 무턱대고 '가을 야구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일본 프로야구계의 안이함이 초래한 결과였다. 홈구장이 없으니 안방에서 경기를 치를 수가 없었다. 야쿠르트는 도쿄 6대학 연맹과 구장을 주간, 야간으로 나누어 사용하자며 협상을 가졌지만 모두 결렬되고 말았다.

◆'성동원두'는 흔적도 없어

어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인접해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 고라쿠엔 구장(진구구장과 지하철역으로 5 정거장에 위치)이다. 그렇게 78년 일본시리즈는 야쿠르트의 홈이 아닌 '적지'에서 진행됐다. 홈경기인 1·2차전과 6·7차전을 타 팀 홈구장을 빌려 경기를 치른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야쿠르트는 접전 끝에 한큐에 4승 3패로 이겨 일본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요미우리의 심장'에서 야쿠르트가 첫 일본시리즈 우승의 축배를 든 것이다.

야쿠르트 프런트로선 '영광이면서 굴욕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한편에서는 라이벌 구단에 대한 '완벽한 피날레'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라쿠엔의 주인'인 요미우리 입장에선 자신들의 안방에서 다 잡은 리그 우승을 빼앗아간 야쿠르트가 첫 '일본 제패'에 성공하는 장면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일본시리즈가 연고 구단의 홈구장이 아닌 곳에서 열린 일은 없다. 야쿠르트의 '실수'에 정신이 번쩍 든 모든 구단이 미리미리 여유있게 한 해 일정을 잡아놓기 때문이다.

진구구장을 생각할 때마다 동대문구장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우리 학생야구를 대표하는 구장이자 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봉황대기 등을 통해 불세출의 야구영웅이 다수 배출된 '한국야구의 신궁(神宮)'이다. 도쿄의 진구가 여전히 아마와 프로의 성지로 큰 사랑을 받는 것과 달리 서울의 '성동원두'는 외야 조명탑 한 쪽만 남겨둔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점이 무척 아쉽다.

◆6대학 야구연맹

도쿄 6대학 야구연맹(TOKYO BIG6 BASEBALL LEAGUE)은 도쿄에 소재하고 있는 6개의 대학으로 구성된, 일본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야구 리그다. 일본야구 인기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봄·가을이면 토·일요일에 진구구장에서 진행된다. 다른 대학야구연맹과 비교해서 인기가 무척 높고 관중 수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1903년 와세다대와 게이오대의 야구대항전(일명 와세다·게이오전)이 시작된다. 연맹의 시작은 이 두 라이벌교의 정기전이 계기였다. 1906년 양교의 과열응원으로 일시 중지되기도 했지만 1914년 메이지대학이 가입하면서 3대학 리그로 편성됐고, 1917년 호세이대, 1921년 릿쿄대가 참가했다. 1925년 봄에는 일본 최고 명문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이 합류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권위의 6대학 야구연맹으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참고로 도쿄대 출신 NPB(일본프로야구) 선수는 모두 5명이 배출됐다.

조희준

조희준은 20년 이상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야구행정을 다루며 프로야구의 성장과정을 직접 지켜봤다. 국제관계 전문가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범 당시 한국 측 협상단 대표로 산파 역할을 맡았다. ▲일본 호세이(法政)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일본 야구에 조예가 깊은 그는 ▲KBO 운영부장 및 국제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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