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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준의 이런 야구]日 고쿠보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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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12서 한국에 시련 겪으며 성장…내년 WBC서 '복수의 칼날'

"선발투수가 6∼7회를 무사히 던지면 대개 투수를 바꿔 버린다. 일본 프로야구의 아주 나쁜 버릇이 또 나왔다."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은 매섭게 추궁했다. 잘 던지던 선발투수를 '이유 없이' 바꾼 것이 큰 실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타자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이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가 지적한 대상은 고쿠보 히로키(小久保裕紀). 현재 일본 야구 대표팀 '사무라이 재팬'의 수장을 맡고 있는 그 인물이다. 2015년 열린 초대 'WBSC 프리미어12' 준결승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다 이긴' 경기를 놓친 다음 일본내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다.

◆논란 부른 실수

지난해 11월19일 도쿄돔에서 일본은 한국과 프리미어12 준결승 일전을 치렀다.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를 내세워 결승 진출을 자신했다. 한국 타자들은 앞선 예선전에서 오타니의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7회까지 오타니는 단 1안타로 한국 강타선을 봉쇄했다. 그러자 3-0으로 앞선 8회초 일본은 '불펜야구'로 전환한다. 오타니를 내리고 노리모토 다카히로, 마쓰이 유키, 마스이 히로토시를 줄줄이 내세웠지만 9회 한국 타선의 집중타에 4점을 내주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국에선 또 하나의 '도쿄 대첩'이라며 환호했지만 일본에선 난리가 났다. 프리미어12는 일본이 '자기 돈'을 들여 어렵게 개최한 대회다. 2020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에 야구를 포함시키기 위해 사전 기획된 대형 국제 이벤트다. '일본을 위한 일본 만의 대회'라는 목소리도 꽤 높았지만 어쨌든 일본 입장에선 자신들이 우승하는 게 여러모로 모양새 좋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다 못해 솥단지를 엎어버린 것이다.

당시 상황을 한 번 더 복기해보자. 필자는 당시 일본 대표팀에 대한 방송용 해설자료를 준비하며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오타니는 위력 있는 공을 뿌렸다. 7회까지 85개의 공을 던졌고, 1안타만 허용하며 11탈삼진 위력투를 펼쳤다. 한국은 2루조차 밟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본 타선도 4회 선제 3득점 이후 불안한 리드를 하고 있었다. 운명의 8회, 잘 던지고 있는 오타니 대신에 노리모토가 마운드에 오른다. 8회를 잘 막았지만 9회 (일본 입장에서) 사달이 났다.

노리모토가 9회 초에 1실점하자 무사 만루에서 고쿠보 감독은 마쓰이(라쿠텐)를 구원 투입한다. 마쓰이는 고졸 2년차 선수로 약관 20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였다. 큰 경기에서 긴장한 탓인지 마쓰이는 밀어내기 실점을 허용했고, 스코어는 1점 차로 좁혀졌다. 여기에서 고쿠보는 마스이(니혼햄) 카드를 내밀었지만 이대호에게 2타점 역전 적시타를 허용했고, 결국 경기는 3-4 일본의 역전패로 끝났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정작 일본 야구가 자신있게 내세운 '사무라이'들이 맥없이 쓰러진 것이다.

◆일본의 공적

이후 일본에선 거센 논쟁이 벌어졌다. 8회의 투수교체가 옳았는지 여부를 두고 팬들은 물론 야구인들도 저마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결론은 99% 감독책임이라는 데 모아졌다. 현역 은퇴 후 일본에서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장훈의 말이다.

"고쿠보 감독의 용병술은 인정하나 왜 그 장면에서 오타니를 교체했는지 모르겠다. 선발로 나선 투수는 완투를 그리며 마운드에 선다. 오타니는 한국 타자들이 싫어하는 투수다. 물론 노리모토, 마쓰이도 좋은 투수임에 틀림 없지만 한국 타자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기 끝까지 던지게 오타니를 놔두는 것이 감독의 중요한 임무였다. 일본에는 아쉬운 경기였다. 감독이 다음 경기인 결승까지 염두에 뒀을지 모르겠지만 고쿠보의 생각이 짧았다. 그리고 예선전에서 완승해서인지 한국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장훈의 질책은 '양반'이었다. 고쿠보 감독은 경기 후 '대역죄인' 최급을 받았다. 한동안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는 얘기가 나돌 만큼 일본 국민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타고난 스타…엘리트 중 엘리트

고쿠보의 오타니 교체는 한국팀에도 적지 않은 의문이었다. 선동열 당시 대표팀 투수코치는 "우리 벤치에선 3점이라면 노리모토를 괴롭히며 따라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오타니가 교체된 것은 나 자신도 의아하며 이해가 되지 않는 투수교체였다"고 털어놓았다.

확실히 당시 고쿠보의 투수 기용은 경기 결과를 바꿔놓은 결정임에 틀림없다.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경기 후 일본내 반응을 지켜보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약간 과장하면 당시 일본에선 패전의 책임을 넘어 아예 고쿠보라는 한 야구인을 매장하려는 듯한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당연히 이겨야 할 경기를 졌다는 아쉬움을 넘어 '너 때문에 모든 걸 망쳤다. 그러니 네가 모든 걸 떠안고 가장 큰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섬뜩한 기운이었다.

'논란의 인물' 고쿠보는 1971년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났다. 지역고교 졸업 후 도쿄의 아오야마가쿠인(青山学院)대학에 진학했다. 참고로 이 대학 영문과 여학생 중에는 참한 규수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아오야마대학은 야구 명문교는 아니지만, 고쿠보의 입학으로 일약 야구 강호로 탈바꿈한다. 그는 대학 4년간 40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9푼1리 8홈런 23타점을 기록했다. 4학년 때는 아오야마대학 역사상 최초로 일본대학야구선수권에서 우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대학야구의 영웅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유일한 대학생으로 일본대표팀에 발탁돼 홈런 2개를 쳤고, 미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2개의 적시타를 기록하며 팀 승리에 공헌했다. 일본 야구가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메달을 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처럼 그는 타고난 스타였다. 프로에서는 18년간 통산 타율 2할7푼3리 413홈런 2천41안타를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명구회(타자 2천안타, 투수 200승 이상 선수의 모임)에 가입했다 .프로 시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간판 타자였다. 2013년부터 NHK 야구 해설가를 맡고 있고,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에도 임명된 엘리트 중 엘리트다.

◆시련 겪은 고쿠보, 이젠 경계해야 한다

야구감독은 극한의 직업이다. 매일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을 놓고 고뇌한다. 특히 한 나라의 대표팀을 이끄는 자리라면 그 중압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자신의 결정 하나에 온국민이 울고 웃는다. 자국에서 열린, 반드시 이겨야 하고 또 다 이긴 경기를 자신의 결정 하나로 망친다면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누구보다 자신이 '죽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고쿠보는 의연하게 자신에 대한 모든 비난을 감내했다. 감독 사퇴 압력 여론이 거셌지만 그는 꿋꿋하게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요즘도 방송 해설을 하면서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준비하고 있다.

고쿠보를 볼 때마다 내공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거의 혼자 힘으로 소속 대학을 야구 명문으로 올려놓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힘있는 용병들이 득세하는 프로에서도 가는 곳마다 중심타자이자 '토종 거포'로서 크게 활약했다. '유망주-스타플레이어-레전드-감독'의 엘리트 코스를 쉴 새 없이 밟아온 인물이다. 웬만한 외풍에는 흔들리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최근 고쿠보가 해설하는 경기를 시청한 적이 있다. '일본국민의 공적' 이란 소리가 나올 만큼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차분히 준비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속으로 칼을 갈면 무척 무서워진다. 고쿠보는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한국에게 당했다. 내년 3월 열리는 WBC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김인식 한국대표팀 감독은 프리미어12 준결승이 끝난 뒤 "이 경기를 계기로 고쿠보 감독이 더 성장할 것으로 본다. 고쿠보 감독이 아직 경력이 짧은데,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제부터는 돌다리도 두드려서 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인생의 큰 시련을 겪으면서 분명히 한 단계 올라섰을 고쿠보다. 한국도 또 한 번의 결전에 대비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듯하다.

조희준

조희준은 20년 이상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야구행정을 다루며 프로야구의 성장과정을 직접 지켜봤다. 국제관계 전문가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범 당시 한국 측 협상단 대표로 산파 역할을 맡았다. ▲일본 호세이(法政)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일본 야구에 조예가 깊은 그는 ▲KBO 운영부장 및 국제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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