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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의 과학향기]울산편, 선사 지리여행(Prehistoric Geo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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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 년 역사의 대한민국. 이 땅 곳곳에 숨어있는 선사유적 중 이곳만큼 선조들의 체온을 잘 느낄 수 있는 곳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기하학 문양에서부터 정교한 동물 그림에 이르기까지 단단한 바위 벽면을 쪼고 갉고 긁으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암면에 담으려 했던 것일까? 오늘은 선사인(先史人)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남긴 5천 년 전 공간으로 발길을 옮겨 보자.

장소는 울산시 태화강 상류. 해발 200m 전후의 높지 않은 구릉지를 뚫고 흐르는 대곡천 품속에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라는 세기의 예술품이 안겨있다.

대곡천 일대는 약 1억 년 전의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층으로 구성된다. 과거 경상남북도 일대에는 수심이 비교적 얕은 호소가 넓게 분포돼 있었는데, 그 호소에 쌓인 퇴적층이 융기해 경상분지를 만들었다.1 이 대곡천 일대도 경상분지에 속한 지역으로 셰일과 사암, 이암 등의 퇴적암이 널리 분포돼 있다. 선사인이 우리에게 남긴 보물들도 이 퇴적층 위에 새겨져 있다.

자~ 그럼 본격 선사 지리여행을 시작해 보자. 여행 순서는 그림 1에 표시돼 있는 번호 순으로 진행된다. 우선 화랑체육공원이 있는 1번 지점이다. 1번부터 2번 지점까지 약 800m 구간의 관전 포인트는 어떻게 작은 물길(마병천)이 산지를 뚫고 협곡을 만들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폭 3m 정도의 작은 마병천이 산허리를 뚫으며 어떻게 흐를 수 있었던 것일까? 2번 지점에서 마병천은 단애(斷崖, scarp)를 만들며 산사면을 관통해 구량천을 만난다(사진 1). 2번 지점 서쪽으로는 구량천이 만든 넓은 평야를 볼 수 있다(그림 2). 이 작은 하천 주변에 어떻게 이런 넓은 벌판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정답을 추론해 보자. 이곳은 약 1억 년 전에 호소(湖沼)가 있었던 곳. 이곳이 서서히 융기하면서 호숫물은 아직 채 굳지 않은 호소 퇴적층을 뚫으며 고도가 낮은 쪽을 향해 흘러갔을 테고, 이후 점차 융기와 하천 침식작용이 가속화되면서 지금과 같은 계곡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1번 지점과 2번 지점에서도 각각 마병천과 구량천이 산줄기를 자르며 흐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반곡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그림 2). 반곡천 역시 위와 같은 이유로 해발 약 100m의 산허리를 3km 정도나 관통해 대곡천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속적인 하천의 하방침식과 느린 융기운동이 만든 결과물인 것이다. 그림 2의 중앙부의 구량천과 반곡천 들판은 과거 호숫물로 잠겨있던 지역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위의 그림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신비 그 자체다. 이젠 이 지역이 달리 보인다. 그림 2의 3번 지점도 아주 흥미롭다. 3번 지역에서는 2005년 대곡댐이 들어서기 이전, 대곡천이 흘렀던 구하도 지형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모양도 왼쪽으로 둥글게 휘어져 있다. 2번과 3번 지점과는 또 언제 관통됐던 것일까? 지금은 댐이 건설된 관계로 더 이상 3번 지역으로 흐르지 못하고 2m 이상 낮은 고도를 따라 제방에 갇힌 채 각석계곡을 향해 흐르고 있을 뿐이다.

3번 지역을 봤다면 이젠 4번의 울산대곡박물관으로 가보자(그림 2). 이 박물관은 대곡댐이 들어서면서 수장된 댐 상류 마을의 향토사를 고스란히 담은 기록 창고다. 대곡댐 상류 지역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수많은 가마터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댐 건설로 과거의 지역문화가 사라져버린 게 무척 아쉽다. 이 박물관은 대곡천 구석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쉬우나 아이들과의 다양한 체험시설이 마련돼 있어 가족여행 시 꼭 들러봐야 하는 곳이다.

이젠 드디어 천전리 각석(川前里 刻石, 국보 제147호)을 둘러볼 차례다(그림 2의 5번 지점). 여기까지 오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일반 여행객들은 이 각석을 보러 곧바로 이곳으로 오겠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선사 지리여행을 위해 대곡천 일대의 지형형성 과정을 먼저 살펴봤다. 이러한 답사는 이곳의 지역성 파악을 위한 기본 수단이다. 대곡천이 어떻게 만들어진 하천이며, 왜 이 대곡천변에 공룡발자국이 산재돼 있고, 그리고 천전리 각석이 왜 기울어져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지적 욕구를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천전리 각석을 처음 본 순간, 섣불리 접근할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었다. 경외로운 기(氣)가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선사인들이 제를 올렸던 일종의 '신전'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남긴 다양한 문양의 메시지를 아직은 알 길이 없으나(사진 3), 신라 화랑인들이 이곳에서 신성한 예식을 치렀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천전리 각석은 역단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사진 2). 각석 양쪽에서 횡압력이 가해져 사진 4와 같이 단층면이 삐져나와 그 평탄면에 암각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 이는 결과적으로 선사인들이 대곡천의 지질현상을 이용한 것으로 이 각석 근처의 암반을 보면 역단층에 의해 생긴 매끈한 바위 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각석은 셰일과 사암, 이암의 호층으로 형성된 퇴적암이다. 세간에는 이 각석이 기울어져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이러한 견해는 넌센스에 불과할 뿐이다.

이곳 5번 지점에는 각석 말고도 또 하나의 볼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공룡이다. 이 각석계곡에는 200여개의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발자국이 있다(사진 5). 이 발자국은 공룡들이 육성퇴적층의 진흙더미를 밟았던 흔적이다. 이곳의 공룡발자국들은 경남 고성의 상족암, 전남 해남의 우항리 공룡발자국들과 괘를 같이 하고 있다. 발자국에서 그들의 엄청난 힘이 느껴진다. 대곡천 물줄기가 처음 이 계곡을 흘렀을 당시 이곳은 저평한 호소였을 것이다. 이런 곳에 공룡들이 노닐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인다. 바로 각석 앞에 설치된 데크다(사진 2). 이 데크는 각석과 공룡의 공간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1억 년 전의 공간과 3천 년 전의 공간을 단절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각석 앞부분은 선사인들의 제례가 이루어졌던 곳으로 이 테크가 그 신성한 공간을 전부 삼키고 말았다. 하루 속히 데크를 걷어내 원래의 경관으로 복원시켜야 할 것이다. 데크가 각석계곡의 고고인류 경관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각석계곡 한 켠에 있는 데크 계단을 올라 반구대 암각화로 향한다. 이곳부터 반구대까지는 2.4km. 선사 트레일은 이곳에서 본격 시작된다. 아주 호젓한 멋진 길이다. 천천히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구멍가게 하나 없이 잘 정리돼 있다. 그래서 이 선사 트레일을 행복하게 걷기 위해선 마실 물과 같은 필수품을 우선 챙겨 두어야 한다.

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울산암각화박물관이다(사진 6, 그림 2의 6번 지점). 잘 지은 건물이다. 자료도 아주 보기 쉽게 잘 정리돼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대곡천과 너무 붙어있어 건립에 반대가 많았다'는 말이 들려온다. 보존을 위해선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곳은 선사 트레일의 베이스캠프에 해당하는 장소이니만큼 친근하게 활용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리해 본다.

이곳에서 반구대 암각화까지는 약 800m. 하지만 반구대로 가기 전까지 들러봐야 할 곳이 한 군데 더 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반구대 암각화이나 어찌 보면 이곳이 더 경이로울지도 모르겠다. 바로 대곡천의 옛 유로인 구하도 지형이다.

대곡천 구하도는 그림 3의 공중화장실이 있는 7번 지점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서 대곡천을 내려다보니 5m 이상의 고차가 느껴진다. 과거 8, 9번 지점을 향해 둥글게 흐르던 대곡천은 7번과 9번 지점의 활발한 측방침식 결과 더 이상 8번 지점으로 흐르지 못하고 곡류천 목(neck)이 절단돼 9번 지점으로 흐르게 됐다. 이 구하도는 선사 트레일의 신비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이곳에 이렇게 잘생긴 구하도가 숨어 있었다니 진즉에 알지 못했던 게 미안할 따름이다.

7번 지점을 지나 구하도로 들어가 본다. 고개 숙인 노란색 들판이 정겹다(사진 7). 언제까지였을까? 이 논 한 가운데로 대곡천이 휘돌며 흘렀을 것이다. 지형형성의 신비는 삶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서 늘 자연을 밟으면 흥이 솟는다. 지구 앞에서 무한히 작아지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괜스레 매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大谷里 盤龜臺 岩刻畵, 국보 제285호)로 향한다. 혹시 사연댐 수위가 올라와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는 게 아닐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그림 3). 사연호 물에 잠기지 않더라도 해가 암벽을 비추는 오후 잠깐만 망원경으로 암각의 문향을 볼 수 있다는 곳.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반길지 발걸음을 재촉해 본다.

암각화로 가는 도중 9번 지점에서 다시 1억 년 전 공룡발자국들이 우리를 반긴다(그림 3). 이곳 공룡들이 선사 트레일의 안내자처럼 느껴진다. 이곳은 중생대와 선사시대, 그리고 현대가 공존하는 종합 예술무대. 기암괴석을 깊게 깎으며 흐르고 있는 대곡천 절경을 선사인들도 매우 경이롭게 생각했을 것이란 느낌이 든다. 그들도 공룡발자국을 알아보고 있었을까?

저 멀리 암각화 조망점이 눈에 들어온다(사진 8). 다가가 보니 다행히 사연호 수위가 낮아 물에 잠기지는 않았으나,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질 않아 기대감이 이내 실망감으로 바뀐다. 혹시나 해서 한참동안 햇살을 기다려도 보았으나 결국은 그냥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곳에 서 있는 입간판을 바라보며 섭섭함을 달래야만 했던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귀중한 세계의 문화유산이다. 고래는 물론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 다양한 동물이 새끼 밴 모습이나 새끼를 거느린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작살을 맞은 고래도 있다. 어부와 사냥꾼의 행동 표현도 재미나다. 과연 어떤 당대 최고의 예술가가 왜 이런 그림을 강변 암벽에 새겨 놓은 것일까? 암각 그림이 너무도 정교해 일반인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은 왜 이곳에다가 수십 마리의 고래를 새겨 놓은 것일까?

이번 선사 지리여행은 공룡의 안내를 받아 선사인과 함께한 시간 여행이었다. 세기의 문화유산도 만나봤다. 이는 신석기인들이 우리에게 남긴 마음의 편지요, 풍습의 기록물이며, 신비의 예술품이다. 이제 우리가 이 국보 보존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선 사연댐 수위를 낮추어야만 한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아니 암각화 보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이 고고인류문화 유산이 영원히 지켜지기를 고대해 본다.

<각주>1. 중생대 백악기 때 형성된 호소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경상남북도 지역을 흔히 경상분지라고 칭하고 있다. 다른 말로는 경상계, 경상누층군이라고도 불리는 데 같은 말로 생각하면 된다. 바다가 융기해서 만들어진 해성층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육성층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용 자료>1. 문화재청, http://www.cha.go.kr2. 다음 백과사전, http://100.daum.net3. 다음 지도4. 네이버 지도

글 : 박종관, 건국대학교 이과대학 지리학과 교수(http://jotra.com), 문화체육관광부 생태관광컨설팅위원장(MP)사진, 그림 : 박종관 교수 제공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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