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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아듀 윈도XP…"잘 가게, 똑똑했던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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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착잡하네. 늘 우리 곁을 지켰던 자네가 이렇게 떠나다니. 오래 전 예고된 일인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마음 추스르기가 쉽지 않네.

2001년 8월 24일. 자네가 처음 탄생하던 날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네. 집안의 큰 어른인 빌 게이츠가 자네를 소개하면서 "지금까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만든 운영체제(OS) 중 최고 걸작"이라고 호언장담했지.

실제로 자넨 정말 뛰어났어. 출생부터 남달랐으니까 말일세. 게다가 뒤숭숭한 집안을 확실히 일으켜세울 인재로 큰 기대를 받았지.

회고 삼아 잠깐 옛날 얘기 좀 해보세.

◆윈도98부터 윈도ME 뿐 아니라 윈도NT 장점까지 흡수

자네가 태어나기 직전 자네 집안 사정은 좀 복잡했네. 작고(Micro)-부드러운(Soft) 회사를 자처했던 MS는 그 무렵 온갖 잡음을 몰고 왔네. 윈도95, 윈도98 같은 자네 형들 때문이었네. 먼 친척뻘인 '익스플로러'에 편의를 봐줬단 혐의를 쓴 때문이지. '브라우저 전쟁'이라 불렸던 그 싸움에서 MS는 자네 형들을 앞세워 당대 최강 넷스케이프를 물리쳤다네.

그런데 그 후유증이 꽤 컸어. 자네 모국인 미국이란 나라가 독점횡포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많기 때문일세. 일단 반독점이란 의심을 받게 되면 응징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나랄세. 게다가 자네 집안이 '독점 횡포'를 한 혐의도 꽤 짙었다네.

결국 오랜 재판 끝에 집안 큰 어른이던 빌 게이츠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네.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걸 막으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했기 때문일세.

게다가 그 무렵 자네 형들도 문제가 많았네. 윈도98 이후 변변한 역할을 한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지. 윈도2000과 윈도ME는 연이어 손가락질을 받았지.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해야 할 자식들이 연이어 실패를 거듭하니 오죽 애가 탔겠나.

그 무렵 혜성처럼 등장한 게 바로 자네였네. 게다가 자넨 태어날 때부터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네. 무엇보다 형들의 장점을 잘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았지.

바로 윗 형인 윈도2000 뿐 아니라 두 어 세대 앞선 윈도98의 장점까지 잘 결합했으니 말이야. 그 뿐 아니었지. 잠깐 등장했다가 이내 사라진 윈도ME의 유산까지도 자네 몸 속에 고스란히 들어갔네. 그런 것 보면 자넨 정말 욕심장이였던 것 같아.

게다가 사촌 격인 윈도NT의 안정성까지도 흡수했다는 평가를 받았지. 이러니 빌 게이츠가 "사상 최고 OS"라고 호언장담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네.

게다가 자넨 집안에 오랫동안 남아 있던 옛 잔재까지 말끔히 씻어버렸네. MS 도스(MS DOS) 말일세. 자네는 사상 최초로 도스로부터 확실하게 결별한 OS란 평가를 받았지. 오죽하면 빌 게이츠가 자네 탄생을 알리는 행사 때 "한 시대의 종언(end of an era)"이라고 선언했겠나.

나 역시 자네가 참 익숙하다네. 최근엔 다른 집안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자네를 많이 찾았으니 말일세. 아, 그러고 보니 종교활동 하는 곳에선 여전히 자네를 이용하고 있구만, 그려.

◆은행 ATM에 윈도XP 깔려 있는 게 MS가 책임질 일?

자네가 사라지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야. 좀 까칠해 보일 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정확하게 짚을 게 있네. 엄밀히 말하자면 자넨 사라지는 게 아닐세. 다만, 더 이상 집안에서 보살펴주지 않는 신세가 된 거지. 이를테면 누군가 자네 약점을 이용해 공격하더라도 아무런 방패막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거지. 하긴 보안 문제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요즘 같은 때 그건 아주 큰 문제긴 하지.

그런데 이 조치를 놓고 주변에서 말들이 좀 있는 모양이야. 주로 자넬 좀 더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들이라네. 하긴 그럴만도 하지. 자네가 너무 똑똑했으니. 넷애플리케이션즈란 곳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니 눈이 튀어나오더군. 자넨 지난 3월 데스크톱PC 시장의 27.7%를 차지했더구만. 데스크톱 PC 네 대 중 한 대엔 여전히 자네가 자릴 잡고 있는 셈이네, 그려.

그런데 쏟아져나오는 기사를 보면서 난 참 착잡한 생각이 들더군. 자네나 자네 집안 탓이 아닌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내용들이 꽤 많은 것 같아서 말일세.

한 가지만 얘기해볼까? 은행 ATM에 아직도 자네가 쓰이고 있다면서, 자네 집안이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들이 있더군. 난 그 내용보고 깜짝 놀랐네. 자네 집안 문제가 아니라 은행들의 책임 아닌가, 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세. 자네가 이맘 때쯤 공식적인 생명을 다할 것이란 건 이미 오래 전에 알려졌던 사실인데, 금융권이 여태껏 아무런 대책도 없이 손 놓고 있었다는 게 도리어 화가 나더군.

하긴 자네 집안은 큰 죄를 짓긴 했지. 12년 7개월 전 만든 자네보다 더 뛰어난 동생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말일세. 어쩌겠나. 집안을 홀로 지탱해 온 업보라고 생각하게.

그러고 보면 빌 게이츠가 자네 탄생일날 호언장하면서 한 가지 예상치 못한 게 있는 것 같아. 그 때 빌 게이츠는 "지금까지 만든 OS 중 최고"라고 자신있게 자랑했지. 그런데 결과적으론 "지금까지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 만한 작품은 만들기 힘들 것"이라고 한 셈이 됐네, 그려.

◆최고의 '컴퓨팅 경험' 선사했던 윈도XP

친구.

자네가 정말 떠난다니 내 마음이 몹시도 아프네. 그 새 자네 집안과 연을 끊고 이웃집과 새로운 정분이 난 날 너무 원망하진 말게. 그래도 내겐 자네가 영원한 마음 속 연인이라네.

자넨 12년 7개월 동안 자기 역할을 120% 감당했네. 하지만 그 사이 세월이 많이 바뀌었지. 이젠 자네 집안도 다른 쪽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말일세.

자넬 떠나보내는 내 마음이 편치 않은 건 그 때문일세. 게다가 나 역시 변화된 환경에 잽싸게 편승해버린터라, 살짝 미안한 마음도 있네.

최근 태블릿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터치만이 살 길"이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네. 자네 집안도 그 분위기에 휩싸이면서 격랑을 겪었지.

하지만 자네가 우리에게 선사한 '컴퓨팅 경험'도 결코 '멀티터치' 못지 않았다네. 그러고보니 자네 뒤에 붙은 XP가 경험(eXPerience)에서 따온 말이라지?

잘 가게. 똑똑했던 내 친구, 윈도XP. 내 영원한 사랑.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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