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바이럴 마케팅 '서동요'
2014.03.10 오후 4:14
[고전으로 읽는 소셜 미디어-6]
[김익현기자] 2012년 7월. 유튜브에 흥미로운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티저 영상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후 ‘강남스타일’은 엄청난 바람을 몰고 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톰 크루즈 등 해외 인기 스타들이 연이어 트위터에서 ‘강남스타일’을 거론하면서 순식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후 싸이는 그 때까지만 해도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미국 빌보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1위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7주 동안 2위 자리를 지키면서 글로벌 스타로 우뚝 섰다.

‘강남 스타일’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확산됐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대중 매체 대신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전파됐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흔히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이라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바이럴 마케팅은 인터넷, 특히 SNS 시대에 활짝 꽃을 피웠다. 싸이 예에서 알 수 있듯, 전파 속도와 범위가 전통 매체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고 넓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이럴 마케팅’이 SNS 시대의 전유물은 아니다. 전파 속도와 범위에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바이럴 마케팅 역시 인간 본능 깊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으로 읽는 소셜 미디어’ 6편은 우리나라에서 바이럴 마케팅의 원조로 꼽히는 분을 다룬다. 노래 한 곡으로 신라 공주를 품에 안은 뛰어난 바이럴 마케터. 바로 백제 무왕 얘기다.

◆선화공주 꾀어낸 서동의 기발한 바이럴 전략

무왕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먼저 시 한 수를 감상해보자. 문과 출신이라면 한번쯤 접해 봤음직한 시. 바로 신라 향가 ‘서동요’다.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서동방을)/ 夜矣卯乙抱遣去如(야의묘을포견거여)"

현대인들에겐 생소한 이두로 씌어진 시. 당연히 해독 불능이다. 자, 이번엔 양주동 선생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연구 끝에 도달한 한글 번역문을 한번 살펴보자.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서동 도련님(薯童房)을 / 밤에 몰래 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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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의미다. 여기서 선화공주는 신라 26대 진평왕의 셋째 딸이며, 서동 도련님은 훗날 백제 30대 무왕이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저 노래가 유통될 당시엔 서동은 미천한 신분에 불과했다.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서동요' 설화는 간단하다. 당시 신라 수도이던 서라벌에서 선화공주의 ‘부적절한 행위(?)’를 고발하는 노래가 널리 울려퍼진다. 돌고 돌던 이 노래는 결국 진평왕의 귀에 까지 들어간다. 당연히 크게 분노. 당장 공주를 궁궐에서 쫓아내 멀리 귀양 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왕실의 체면과 명예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친 공주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귀양을 떠나는 선화공주 앞에 서동(薯童)이 나타난다. 그리곤 그를 보호하며 함께 간다. 갈 곳 없는 신세였던 선화공주 역시 서동을 믿고 따르게 된다.

이렇게 둘은 백제로 가게 된다. 이렇게 자리잡은 서동은 백성들의 신임을 얻어 백제 제30대 왕에 즉위하게 된다. 30대 무왕이 된 맛동은 41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백제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강남 스타일과 서동요, 다른 듯 같은 전파 방식

물론 역사적 사실, 혹은 역사서 속 설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무왕이 선화 공주를 얻고, 백제 왕이 되는 과정을 지리하게 묘사한 건 배경 지식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진짜 관심은 무왕, 아니 서동 도령의 ‘바이럴 마케팅 수법’이다.

마(麻)를 캐어 팔아서 생활을 영위하던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세째 공주인 선화가 절세미인이란 소문을 듣는다. 작심한 서동은 머리를 깎고 신라 수도인 서라벌로 간다.

하지만 직접 선화공주를 찾아갈 방법은 없다. 한번 생각해보라. 당시 진평왕이 이끌던 신라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름 없는 서동 같은 인물이 대제국 신라의 공주를 만날 방법은 전혀 없다.

다소 논리 비약을 무릅쓰고 비교하자면, 바이럴 마케팅을 시작하기 전 싸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싸이 이전까지 내로라하는 국내 가수들이 빌보드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들에 비해 외모나 몸매 모두 한참 뒤지는 싸이가 ‘음악 시장의 서라벌’인 빌보드를 뚫을 방법은 없었던 것처럼, 서동에게도 신라 궁궐의 문을 열 방법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동이 택한 방법이 바로 바이럴 마케팅이었다. 그는 먼저 입소문의 원천이 될 동네 아이들을 하나씩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자신이 직접 캔 마를 먹이면서 그들과 조금씩 친해졌다.

아이들의 마음을 열었다고 판단한 서동은 다음 단계로 돌입했다. 노래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 아이들은 서동이 가르쳐주는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불렀는지, 모르고 불렀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서동요’가 ‘강남스타일’ 못지 않게 신나는 리듬이었을 것이란 추론은 해 볼 수 있다. 그래야 아이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서동요의 최대 강점은 호기심 자극하는 충격적인 가사

바이럴 마케팅은 쉽지 않다. 입소문을 타고 저절로 확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하기 위해선 ‘보편적인 감성’이나 ‘호기심’ 혹은 ‘흥’을 돋우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바이럴 마케팅에 성공한 건 이런 부분이 강하게 작용했다. 톰 크루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빅마우스의 힘이 강하게 작용한 측면도 분명 있다. 하지만 ‘강남 스타일’의 리듬 자체가 서양 사람들, 특히 서부 개척 시대를 경험한 미국인들의 감성을 잘 건드린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최초의 바이럴 마케터인 서동이 뛰어난 점도 바로 그 부분이다. 서동이 퍼뜨린 노래가 어떤 곡조였는지는 우리가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퍼뜨린 노래 가사는 바이럴적인 요소를 잘 담고 있다.

당대 최고 권력자가 아끼는 딸이 출신도 모르는 서동이란 아이와 몰래 만난다? 이건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상상력을 한번 발휘해보자.

서동은 서둘러 메시지를 살포하지 않았다. 일단 ‘마’를 나눠 먹으면서 신뢰와 친근감을 먼저 얻어냈다. ‘입소문’을 담당할 이들의 마음을 먼저 얻은 것이다. 이렇게 무장해제를 시킨 그는 ‘다소 충격적인 노래’를 가르쳐줬다.

어쩌면 아이들은 서동이 가르쳐주는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당시엔 언문일치가 되지 않던 시절이란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물론 아이들이 의미를 알고 불렀을 수도 있다. 눈 앞에 있는 어른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공주를 폄훼하는 노래인데, 겁 날 게 뭐 있겠는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노는 아이들이 ‘서동요’를 불러댔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그리고 그 리듬이 ‘강남 스타일’ 뺨칠 정도로 흥겨웠다고 한번 상상해보라.

“아니, 진평왕의 세째 딸 선화공주가 밤마다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얘기가 어디 있겠는가? 확인할 순 없지만, 여기에다 신나는 리듬까지 곁들였다면, 너도나도 신나게 불러댔을 것이다. 이보다 더 탁월한 바이럴 마케팅이 어디 있겠는가?

처음에 서서히 퍼지던 ‘서동요’는 순식간에 서라벌 전역을 뒤덮었을 것이다. 그리곤 진평왕의 귀에까지 도달하면서, 애꿎은 선화공주는 비참하게 쫓겨나게 됐다.

물론 한국 최초 바이럴 마케터인 서동은 신라 최고 가문에다 절세 미인인 선화공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강남 스타일’ 못지 않은 뛰어난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평가해도 크게 그르진 않을 것 같다.

◆'허위사실' 유포한 서동의 '꼼수'는 경계해야

‘서동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설화다. 실제로 학자들 중 많은 분은 당시 상황에서 불가능한 얘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문학적 진실이다. ‘입소문’에 적합한 메시지를 만들어 순식간에 목적을 달성하는 서동의 마케팅 능력. 이 정도면 SNS 시대 내로라하는 마케터들보다 한 수 위가 아닌가?

물론 ‘바이럴 마케터’ 서동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진실된 메시지’가 아니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점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 아무리 바이럴 마케팅을 하더라도 ‘잘못된 정보’를 유포해선 안 된다. 요즘 그런 ‘짓’을 저질렀다간 바로 처벌을 받을 테니. 게다가 신라 시대와 달리 요즘은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는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그러니 한국 최초 바이럴 마케터인 서동의 장점을 취할 땐 그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서동이 쓴 방법은 정보 네트워크가 취약했던 아날로그 시대에나 통하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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