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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돌아온 장고'와 돌아온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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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6년 개봉된 ‘장고’는 서부 영화의 한 획을 그은 걸작으로 꼽힌다. 고독한 한 영웅이 기관총으로 일거에 적을 쓰러뜨리는 장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많은 서부 영화 팬들이 그 장면에 열광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은퇴했던 장고는 다시 불려나온다. 1987년 ‘돌아온 장고’란 영화가 개봉된 것. 하지만 결과는 참패. 20년 전 날렵했던 주연배우 프랑코 네로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 사이 인기를 끈 람보 시리즈를 어설프게 흉내낸 것도 패착 중 하나. 결국 ‘돌아온 장고’는 3류 싸구려 액션극이란 혹평을 받으면서 대참패했다.

◆은퇴 5년 여 만에 현장 복귀하는 빌 게이츠

우리 앞에 또 한 명의 장고가 돌아온다. 빌 게이츠. 39년 전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세계 최고 IT기업으로 키워낸 영웅. 당대 최강 IBM이 자신들의 젖줄이나 다름 없던 PC 사업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 2008년 은퇴한 뒤 자선 사업에 열중하던 빌 게이츠가 또 다시 불려 나왔다. MS는 4일(현지 시간) 사티아 나델라를 CEO로 선임하면서 빌 게이츠가 기술 고문을 맡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빌 게이츠는 앞으로 MS가 차세대 제품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빌 게이츠를 ‘돌아온 장고’에 비유하는 게 어떨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빌 게이츠 복귀 소식을 듣는 순간 ‘돌아온 장고’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람보류 액션 영화에 맞서기 위해 2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던 장고의 고뇌까지 생각났다.

장고가 그랬듯, 빌 게이츠 역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 돌아온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 없는 MS를 살려내겠다는 강한 사명감이 작용했는 지도 모른다.

사실 MS에서 빌 게이츠가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다. 이번에 물러나는 스티브 발머와는 차원이 다르다. 어쩌면 ‘초보 CEO’ 나델라에게 불어닥칠 외풍을 막아주는 방어막으론 최선의 인물일 지도 모른다.

나델라 역시 빌 게이츠를 원했던 것 같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나델라는 CEO를 맡는 조건 중 하나로 ‘빌 게이츠 복귀’를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나델라는 CEO 선임 후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했다. “빌 게이츠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힌 것. 기술과 제품 쪽에 초점을 맞춰 회사를 위해 일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게 나델라의 설명이다.

과연 ‘돌아오는 빌 게이츠’는 기대대로 MS 구원 투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외신들은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더버지는 빌 게이츠가 2008년 MS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제품 리뷰’와 관련해선 악명 높았다고 평가했다. 지나치게 꼼꼼하게 지적하는 바람에 시장에 제대로 출시되기도 전에 폐기된 제품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과 태블릿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잡아내는 데도 서툴렀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MS가 한 발 앞서 추진했던 쿠리어 태블릿이 폐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도 빌 게이츠였다.

또 다른 IT 매체인 기가옴은 빌 게이츠가 ‘인터넷 전략’ 면에선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기가옴은 특히 빌 게이츠가 ‘윈도 비스타’에 지나치게 집착한 부분 역시 MS에 재앙을 안겨줬다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모바일 전략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면서 ‘아이폰 역풍’을 맞았다는 것.

기가옴은 이런 근거를 토대로 ‘돌아온 빌 게이츠’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티아 나델라를 CEO로 선임한 것은 훌륭한 결정”이라면서도 “굳이 나델라 옆에 빌 게이츠가 있어야 하는 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돌아온 빌 게이츠'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까?

기자 역시 외신들의 이런 평가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빌 게이츠가 통찰력을 갖춘 뛰어난 인물이란 점을 부인하는 건 아니다. 난 빌 게이츠가 IT 영역에선 스티브 잡스 못지 않은 뛰어난 인재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활약하던 시대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의 남다른 통찰력이 ‘포스트 PC시대’에도 여전히 통할 지도 의문이다.

그래서일까? ‘돌아온 빌 게이츠’에게서 ‘돌아온 장고’의 슬픈 그림자가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1960년대 액션 스타’ 장고가 1980년대 다시 불려나왔다가 참패를 했던 슬픈 기억. 자꾸만 그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빌 게이츠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말 그대로 ‘기술 고문’ 역할만 수행할 수도 있다. ‘초보 CEO’ 나델라가 연착륙할 때까지 잘 보좌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돌아온 장고’ 운운하는 비판이 다소 과해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혹시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우리 시대의 영웅을 잃고 싶지 않은 한 기자의 ‘기우’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덧글)

난 빌 게이츠가 은퇴한 직후 그에 대한 애정을 담은 책을 한 권 쓴 적 있다. 원고지 300매 분량의 그 책에서 난 빌 게이츠를 '독점 자본가'에서 '창조적 자본주의자'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고 평가했다. 굳이 덧글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밝히는 건, 빌 게이츠에 대해 강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말을 꼭 덧붙이고 싶어서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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