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친구 맺기와 '나홀로 볼링' 치기
2014.01.27 오전 11:14
[고전으로 읽는 소셜 미디어-3]
[에피소드 1] 기자 생활 초기 기억나는 선배가 한 분 있다. 후배들을 보면 밥이든, 술이든 사 먹이려 했다. 너무 자주 얻어먹는 게 미안해 한번쯤 계산하려고 하면 호통이 떨어졌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듯 우리 동기도 후배를 받게 됐다. 그 선배는 우리를 볼 때면 지겹도록 잔소리를 했다. “후배 잘 챙겨라.”


[에피소드 2] 한 동안 트위터를 열심히 이용했다. 간혹 그럴싸한 글을 올리게 되면 팔로워가 확 는다. 그런데 그 때마다 꼭 ‘맞팔’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정도 지날 때까지 ‘맞팔’을 하지 않을 경우 바로 팔로잉 취소(소위 언팔)를 해 버리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다. “내가 널 팔로잉 했는데, 넌 왜 날 팔로잉하지 않느냐.” 공짜 점심 얻어먹고 난 뒤 밥을 사지 않는 사람 취급당한 느낌. 굉장히 불쾌했다.

◆한정적 호혜성과 포괄적 호혜성

오늘 다룰 책은 로버트 퍼트남의 ’나홀로 볼링(Bowling Alone)’이다.

이 책은 왜 '나홀로 볼링'이란 독특한 제목을 달게 됐을까? 그 부분에 대한 저자의 설명부터 한번 들어보자.

“볼링을 치는 사람은 늘었는데, 정작 볼링 리그 참가자는 줄었다. 미국인들은 언제부터인가 혼자서, 혹은 가까운 가족들하고만 볼링을 치고 있다.”

'나 홀로 볼링'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저자인 퍼트남은 이 문제를 푸는 분석 도구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미국 사회 공동체가 어떻게 발전하고 쇠퇴했는지를 명쾌하게 분석해주고 있다. 미국 사회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사회 연결망의 보편적인 부분을 잘 건드리고 있어 시대를 뛰어넘은 명저로 꼽힌다.

저자는 '나홀로 볼링' 현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다.

"미국인은 이제 선거에도 무관심하고 지역사회의 학교 운영회의나 공공 업무 관련 회의는 물론 교회에도 잘 참여하지 않게 되었으며 심지어 타인에 대한 믿음, 정직성과 상호 신뢰, 그리고 개인의 일상적인 사교까지 줄어들어 사회적 자본이 크게 감소하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사회적 유대의 해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나 홀로 볼링'이다."(699쪽)

저자는 사회적 자본에 대해 논의할 때 호혜성(reciprocity)이란 개념을 중요하게 다룬다. 호혜성이 뭘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저자는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였던 요기 베라의 말을 인용한다.

“네가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네 장례식에 절대 안 와.”

한 마디로 주는 게 있어야 받는 게 있다는 의미. 하지만 저자는 호혜성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고 있다. 한정적 호혜성(specific reciprocity)과 포괄적 호혜성(generalized reciprocity)이 바로 그것이다.

한정적 호혜성은 ‘일차원적인 주고 받기’다. “네가 내게 저걸 해주면 나도 네게 이걸 해주지” 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내가 A에게 밥을 한 끼 샀다고 하자. 그럼 다음엔 A가 나에게 밥을 사길 기대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게 포괄적 호혜성이다. “네게 그 어떤 특정한 보답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이걸 해 주겠다. 어느 누군가 앞으로 내게 무언가 해 줄 것이라고 자신있게 예측하면서 말이야.” 이게 포괄적 호혜성의 기본 개념이다.

이걸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내가 어떤 후배에게 밥을 샀다고 가정해보자. 난 그 후배가 내게 답례로 다시 밥을 살 걸 바라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언젠가 그 후배는, 또 다른 자기 후배에게 밥을 살테지, 란 기대를 하는 것이다. 또 이런 주고 받는 문화가 정착될 경우, 꼭 그 후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나에게 밥을 사리란 믿음. 이런 게 밑바탕에 깔려 있다.

퍼트남은 ‘나홀로 볼링’에서 “한정적 호혜성이 지배하는 사회보다는 포괄적 호혜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훨씬 더 상호 신뢰와 안정성이 더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그건 물물 교환 경제보다 화폐 경제가 더 선진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즉각적인 보답' 강요 문화 강한 SNS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내가 왜 서두에서 에피소드 두 개를 소개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에피소드 1에서 소개한 선배의 행동 방식에는 ‘포괄적 호혜성’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그 선배는, 자기 선배에게 받은 여러 가지 호의를 우리들에게 갚아주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게 궁극적으로는 ‘편집국’이란 사회적 자본의 호혜성을 키워줄 것으로 믿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후배들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 후배’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건 “나한테 뭔가 호의를 얻고선 입을 싹 닦는 짓’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반면 에피소드2에서 소개한 ‘맞팔 강요’는 ‘한정적 호혜성’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들에겐 ‘한국 트위터 커뮤니티’란 사회적 자본 전체의 생태계는 큰 관심이 없다.

자기 팔로워 숫자만 늘리면 된다는 생각. 그렇기에 “내가 팔로잉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호의를 무시하다니”란 생각이 강하게 깔려 있다.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다보면 포괄적 호혜성과 한정적 호혜성이란 두 가지 개념을 자주 접하게 된다. 당연히 소셜 미디어의 기본은 ‘포괄적 호혜성’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계정을 팔로잉한다고 해서 꼭 그 사람으로부터 어떤 보답을 바라지는 않는 것. 그저 내게 관심 있는 다른 사람이 날 팔로잉하면 그만인 문화. 이게 소셜 미디어 생태계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원론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생각보다 ‘한정적 호혜성’에 대한 부담감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은 “페이스북에 가면 꼭 뭔가 보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드는 게 싫다”고 털어놨다.

이 정도는 약과다. 때론 과도한 ‘한정적 호혜성’ 요구 때문에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2012년 미국에서는 페이스북에서 친구 삭제를 한 것이 빌미가 돼 살인으로 이어진 적도 있다.

◆친구 삭제에 좀 더 '쿨'해야 하는 것 아닐까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출간하는 옥스퍼드출판부는 지난 2009년 '올해의 단어'로 '친구 삭제(unfriend)'를 선정했다. ‘언프렌드'는 페이스북 같은 사이트의 친구 목록에서 삭제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다.

당시 옥스퍼드가 ‘친구 삭제’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실제로 한번 따져보자. 내가 누군가와 친구 관계를 맺었는데, 어느 순간 상대방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한정적 호혜성’이 강조되는 소셜 미디어라면 간단하게 해결하기 힘들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결과들을 봐도 소셜 미디어 상에서 친구 삭제를 당할 경우 그 충격이 현실 생활에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지난 해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페이스북 이용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친구 삭제’를 당할 경우 10명 중 4명이 실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것. 또 두 명 중 한 명은 “페이스북에서 친구 삭제를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날 경우 피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봐도 소셜 미디어 공간에선 아직도 ‘한정적 호혜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선 이런 감정적인 부분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친구 삭제'를 당해도 상처받지 않고, 또 유용하지 않을 땐 '친구 삭제'를 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걸 퍼트남 식으로 표현하면 “소셜 미디어가 발전해나갈수록 ‘한정적 호혜성’에서 ‘포괄적 호혜성’으로 한 단계 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젠 '올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을 추구할 때

퍼트남은 또 ’나홀로 볼링’에서 사회적 자본을 결속형(bonding)과 연계형(bridging)으로 나눈다.

결속형은 나와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들, 예컨대 학연 혈연 지연 등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내부 지향적인 커뮤니티다. 배타적 정체성과 동질성을 강화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반면 연계형은 외부 지향적이며 다양한 사회적 계층을 망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체성과 호혜성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공동의 대의 명분을 가진 운동에 참여한 경우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퍼트남은 결속형 자본은 사회적 접착제, 연계형 자본은 사회적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정의했다. 이런 정의 역시 소셜 미디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나홀로 볼링’에선 프랑스 정치철학자인 알렉시스 토크빌의 초기 미국 사회 관찰이 중요한 이론적 배경 역할을 한다. 토크빌은 이 때 받은 깊은 인상을 토대로 '미국의 민주주의'란 책을 썼다. 이 책에서 토크빌은 미국인들의 놀라운 공동체 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건 토크빌의 분석이다. 그는 “미국인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상주의적인 무념무사 규칙을 지켜서가 아니라 ‘올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는 작동했다.(218쪽)”고 설명했다.

토크빌의 분석은 소셜 미디어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많은 생태계에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다. 특히 ‘공유지의 비극’이 강하게 작용하는 플랫폼일수록 ‘올바르게 이해된 자기 이익’이란 명제는 한층 더 많은 설득력을 갖는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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