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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림]'변호인', 외로운 싸움은 연대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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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영화의 엔딩이 판타지인 이유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권혜림기자] 연출을 맡은 양우석 감독이 예고한대로, 영화 '변호인'은 상식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의 길을 가기까지 일대기와 대체로 일치하지만, '변호인'은 전기 영화의 함정에 빠지는 대신 실존 인물의 삶을 빌어 보편적 메시지를 설파하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변호인'은 19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을 주인공으로 한다. 송우석이 판사를 거쳐 부산의 세무 전문 변호사로 자리잡은 뒤 우연한 계기에 부림 사건의 변호인으로 나서게 되는 것이 영화의 큰 줄기다.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 송우석은 송강호의 성과 감독의 이름을 합성해 만들어졌다.

영화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은 지난 1981년 제5공화국 군사 독재 정권이 통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이다. 부산 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교사·회사원 등 22명이 영장 없이 체포됐고 이들은 불법 감금돼 구타와 고문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을 낳았다.

색깔 정치가 기승이었던 군사 정권, 핏기어린 한국의 근현대사를 떠올릴 때 사건의 몰상식함에 울분을 토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변호인'은 숱한 시민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던 국가기구의 폭력을 주인공 송우석의 눈으로 겨냥한다. 동시에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자문케 한다.

'변호인'의 메시지는 몰상식한 사회에 뒤늦게 눈을 뜬 한 인물의 자각(自覺), 그리고 수 년 후 그의 헌신이 이끈 연대로 이어진다. 돈만을 좇던 세무 변호사 송우석은 사회의 어두운 얼굴을 목도한 이후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게 된다.

영화는 무려 20여 년 전 역사를 이야기하지만, 당대의 고민은 물 흐르듯 현재로 이어진다. 부림 사건으로부터 6년 뒤 송우석의 모습을 그리는 영화의 엔딩은 서사의 완결에서 오는 안도감보다 이 사회에 여전한, 상식을 향한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변호인'의 결말, 송우석은 1987년 故 박종철 열사 추모 행사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다시 법정에 선다.

"법조인이니 권리를 찾지 못한 시민들을 대신해 맨 앞에 서야 한다"고 담담히 밝히는 그의 모습에서 "국가대표 요트 선수가 되겠다"고 농을 하던 순진한 우석의 얼굴은 찾을 수 없다. 부서진 상식에 눈을 뜨고 고독한 싸움에 뛰어든 한 변호사의 눈동자만이 빛난다. 우리는 '변호인'을 통해 노무현이 아닌, 통렬한 자각과 반성 끝에 시대의 급류로 뛰어든 한 남자를 본다.

그를 변호하기 위해 재판정을 가득 채운 99명의 변호사들은 송우석의 외로웠던 싸움이 비로소 연대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수의를 입은 채 뒤를 돌아보는 송우석의 벌개진 눈에는 파닥이는 시대 정신이 어려 있다.

1980년대를 뒤흔든 민주화의 물결은 역사의 흐름 앞에 잔잔해졌다. 영화 속 극단의 비상식에 발을 담그고 나니, 우리는 얼핏 상식의 시대에 사는 듯도 싶다.

하지만 진정 그러한가. 헌법적 가치로서 민주주의가 수많은 송우석'들'의 투쟁으로 이뤄졌다면 그 아래 민중의 삶을 가로지르는 문제들은 2013년 지금도 여전히 산재해 있다. 그렇게 '변호인'은 영화에 대한 감상과 고민을 스크린 밖으로까지 끌어내고야 만다.

실화와 싱크로율을 떠나 현재 시점에서 영화의 엔딩이 판타지로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꿈이고 희망이지만 감히 실현을 확언할 수 없는 연대라는 판타지는 영화의 결말을 강렬하게 장식하며 은막 밖 세상에 과제를 던진다.

'변호인'의 영화적 만듦새는 배우들의 호연으로 더욱 빛났다. 송우석 역의 송강호는 역대 필모그라피 중 최고의 연기라는 극찬이 과하지 않을 만큼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특히 다섯 차례의 공판 속 변론 연기는 숨돌릴 틈 없는 긴장감을 안기며 감탄을 자아낸다.

형사 차동영 역의 곽도원 역시 그간 보여준 모든 악역 연기를 뛰어넘을 만한 임팩트를 안겼다. 송강호와 맞붙은 법정 시퀀스는 출중한 조연 배우들의 활약이 '변호인'의 허리를 든든히 받쳐내고 있음을 직감케 했다. 진우 모(母) 최순애 역의 김영애, 송우석의 조력자 박동호 역의 오달수, 판사 역의 송영창, 강검사 역의 조민기 등도 두말할 것 없는 내공을 뿜어냈다.

이번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제국의 아이들의 멤버 임시완도 제 역할을 했다. 신인 연기자로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진우의 모습을 그리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쟁쟁한 배우들 속 그의 존재감은 극 중 진우 역의 밀도와 무리 없이 맞아 떨어졌다.

우리 역사가 얼마나 자주 비상식과 부딪혀왔는지, 그 앞에서 어떤 치욕을 감내해야 했는지를 '변호인'은 단숨에 풀어낸다. 그래서 이 영화는 노무현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풍랑을 버텨 낸 상식을 향한 갈망, 이를 현실로 이뤄 낸 연대에 대한 이야기다. 15세 관람가, 오는 18일 개봉.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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