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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기자 입장에서 본 '뉴스 무용론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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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언론학도들을 감동시키는 건 또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다. "의회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률도 제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언론이 무관의 제왕'이란 말에 절로 힘이 실린다.

학교에선 대개 여기까지만 접한다. 그래서 언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굉장한 환상을 갖는다. 세상을 바꾸는 멋진 기자를 꿈꾸면서 언론계를 동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뒷 얘기까지 듣게 되면 살짝 달라진다. 해피엔딩이라고 여겼던 드라마에 막판 반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훗날 미국 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 혐오자로 변신한다. "신문은 기자 마음 내키는 대로 탄환을 장전해서 우리를 겨냥해 온 포열"이란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수정헌법 1조 역시 속을 들여다보면 살짝 사정이 달라진다. 표현의 자유가 1조에 자리를 잡게 된 건 헌법 조문을 놓고 공방을 벌이던 양당의 이해관계로부터 가장 자유로웠던 조항이란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표현의 자유'를 맨 앞에 내세운 미국 수정헌법의 가치를 폄훼할 것 까진 없다. 지나친 환상만 갖지 않으면 된다.)

권력자들에게 언론은 '불' 같은 존재였다. 너무 가까이 하면 자기 몸을 데이고, 지나치게 멀리하면 전혀 수혜를 입을 수 없다. 그런 사정은 언론도 마찬가지다. 취재원과 너무 밀착해서도, 또 너무 멀어져서도 안 된다. 늘 긴장 상태에서 서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관계다. 적어도 원론적으론 그렇다.

◆뉴스는 설탕만큼이나 (정신) 건강에 해로운 존재?

거룩한 얘기로 운을 뗀 건,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논쟁의 발단은 스위스 작가인 랄프 도벨리(Rolf Dobelli)가 지난 달 가디언에 기고한 '뉴스는 여러분에게 나쁜 존재다(News is bad for you)'란 칼럼이었다. 도벨리는 이 칼럼에서 "뉴스가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오히려 호도한다"면서 정신 건강을 위해선 뉴스를 보지 않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자세한 내용은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뉴스는 세상살이에 도움이 안된다” 뜨거운 논쟁 기사를 참고하시라.)

그는 뉴스가 사건의 총체성보다는 선정적인 일부 파편을 과도하게 부각시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니 뉴스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도리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오해하기 딱 알맞다는 것이 도벨리의 주장이다.

도벨리는 설탕을 과다섭취하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뉴스 역시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아예 정보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있다는 비판까지 쏟아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가디언의 부주필인 마델레이 번팅이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번팅은 칼럼을 통해 도델리의 파격적인 비판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조목 조목 반박했다.

여기선 반론 중 한 가지만 소개한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앞에 링크한 기사를 참고하시라.)

번팅은 도벨리가 공격 타깃을 잘못 잡았다고 주장했다. 뉴스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파편적인 뉴스를 과다 소비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 따라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선 집중력을 갖고 뉴스를 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요한 사안의 사례로 보스턴 폭발 사고를 꼽았다. (하지만 번팅은 보스턴 폭발 사고 보도 당시 폭스를 비롯한 일부 미국 언론들의 선정 보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는 점은 간과한 것 같다.)

◆뉴스의 기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

가디언에서 '뉴스 무용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기분이 착잡했다. 한 때 건강한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으로 꼽혔던 언론이 이젠 존재 가치마저 의심받고 있는 것 같아서다. 사회의 감시견이란 언론 고유의 기능이 조롱당하고 있는 듯해서다.

하지만 이번 논쟁을 통해 배울 점도 적지 않아 보였다. 도벨리의 주장도 찬찬히 따져보면 '언론의 근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혐의가 없진 않지만, 정보를 파편화하고, 선정적인 부분만 과도하게 부각시킨다는 도벨리의 비판은 언론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특히 인터넷 저널리즘 관점에선 하이퍼링크 등을 활용해 맥락을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데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속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고 '느리게 생각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권고 역시 곰곰히 새길 가치가 있다. 정보 과다 섭취란 비판에선 요즘 유행어 중 하나인 '큐레이션 기능'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이젠 언론이 아니더라도 정보를 전해주는 사람들은 많다. 따라서 언론은 무수히 널려 있는 정보에 어떻게 부가가치를 덧붙일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정보 홍수 속에서 정말 소중한 콘텐츠를 가려내주는 '큐레이션 기능' 역시 21세기 언론들이 지향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여기서 서두에서 운을 떼다 만 얘기로 돌아가보자.

요즘 들어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 했던 학자 제퍼슨보다는 '기자 마음 내키는 대로 총알을 쏴대는 포열'이란 대통령 제퍼슨의 비판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단 얘기다.

우리 현실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암울하다. 뉴스캐스트 이후 선정적인 보도 경쟁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일부 자본 권력 앞에선 '감시견'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지나친 속보 경쟁 때문에 도리어 정확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모바일과 SNS가 급부상하는 외부 상황 역시 녹록치 않다. 전통적인 뉴스 읽기의 문법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들이 예전의 영향력을 다시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쉽지 않다. 그 때와 지금은 미디어 환경 자체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이젠 언론이 정보를 독점하는 '좋았던 시절'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그러자면 전국민을 경쟁 대상자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언론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고 믿는다. 정보를 걸러내고, 또 그 정보에 맥락을 부여하는 능력은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처절한 자기 비판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벨리의 과격한 언론 비판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언론의 그늘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한번쯤 새겨볼만한 논점들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을 빌자면, 이젠 '긴 호흡 강한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전진해 나가야 할 것 같다. 그게 언론이 살고, 사회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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