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성]최지성 부회장이 발견한 '미래의 삼성전자'
2012.02.28 오전 11:37
27일(현지시간)부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고 있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의 최대 화두는 예년과 달리 기술 트렌드가 아닌 듯하다. 머리가 4개여서 속도를 더 빠르게 해준다는 '쿼드코어'와 4세대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이 눈길을 끌었지만 이미 전시회가 열리기 전부터 알려졌던 이야기들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고, 통신판을 크게 뒤흔들 만한 새로운 소재라고 볼 수도 없다.

이번 MWC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보다 범 중국계 기업들의 약진이다. 어떤 신문의 경우 이런 분위기를 전하면서 '중국의 침공(China`s invasion)'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으니 중국계 기업들이 얼마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지를 짐작할 만하다. MWC 현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약진을 누구보다 실감나게 느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그는 꽤 이례적으로 '중국 경계령'을 발동했다.

"삼성전자 부스 옆에 있는 중국 업체들을 봐라. 10년 전에 우리가 (미국과 일본의 선진 업체를 따라잡기 위해) 했던 일을 (지금 중국 업체들이) 그대로 하고 있다. ZTE, 화웨이 등 중국 업체가 (추격해 오는 것을 보니) 긴장된다. 중국 업체의 발전 속도가 무섭다. 지금 (우리 부스를) 방문한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 경쟁사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새로운) 제품을 내기도 전에 비슷한 제품을 내놓는다."



최 부회장의 우려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바르셀로나 현지 전시장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기기 업체들인 화훼이와 ZTE가 삼성전자 부스 좌우에 나란히 자리 잡아 삼성전자를 협공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삼성전자에게는 이들 업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교되는 것마저 불편한 이른바 ‘듣보잡’이었지만 지금은 기술력이나 제품 판매량 측면에서 가시적인 추격권에 들어왔다고 판단할 수 있다.


통신 판에는 세 부류의 기업이 있다. 일정 기간마다 플랫폼 혁신을 통해 판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리는 주도 기업이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이 주로 이런 역할을 해왔다. 탄탄한 제조 실력을 기반으로 혁신된 판에서 빠른 속도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 가는 기업들이 상단에 위치한다. 스마트폰 혁신 바람이 분 뒤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든 삼성전자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마지막은 혁신 기업과 시장 주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틈새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후발 기업들이 있다.

세계 전자산업은 빛의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이런 피라미드 구조가 불가피하다. 중국 업체들은 이 구조에서 맨 아래에 위치했었다. 최 부회장의 말처럼 10년~15년 전에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처음으로 섰던 자리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달라졌다는 게 최 부회장이 느낀 감각이다. 스스로 걸어왔던 길인만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 업체들은 아마도 '미래의 삼성전자'다.

미국 전자산업의 제조 기반을 무너뜨린 것은 소니 등 일본 업체들이었다. 그들은 발 빠르게 미국 기술을 흡수하면서 짧은 기간에 ‘전자왕국’으로 세계를 호령해왔다. 당시 모습은 지금의 삼성전자와 같았다. 하지만 소니 등은 원가경쟁력 등에서 삼성전자에 치이고 제조 대신 플랫폼과 서비스 혁신으로 재무장한 미국 기업들에게도 다시 역전 당하면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제 중국 기업에도 덜미가 잡힐 판이다.

문제는 역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기업이다. 우리가 일본을 넘어섰듯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전은 피할 길이 없다. 중국 기업은 우리가 일본 기업을 추격할 때보다 훨씬 더 우호적인 시장 환경을 갖고 있다. 광대무변한 자체 시장을 갖고 있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기반하고 있으며 순수 과학기술의 수준 또한 세계 최상위권이다. 우리 기업으로선 밑으로 갈 길이 전혀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공간도 따로 없다.

오직 위로 가야 하는 위태로운 한 가닥 길만이 남아 있다. 그 한 가닥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과거에 성장했던 방식과 현재 누리는 시장의 지위를 깡그리 잊어야 한다. 향수에 젖거나 지위에 안주하면 현재의 삼성전자는 ‘미래의 삼성전자’에게 지금의 자리를 내주고 ‘미래의 소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더 이상 애플과 구글을 추격할 때도 아니다. 애플과 구글발 혁신은 이미 판을 바꾸어놓았다. 모두가 지금 그 새 판 위에서 경쟁한다. 삼성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애플과 구글이 짜놓은 판에서 고만고만한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게 무엇이든 삼성 주도로 시장에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큰 판을 면밀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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