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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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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툰은 '익명의 섬'으로 통하는 인터넷의 특성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뉴요커'의 카툰이 단골로 등장했다.

'익명의 섬'이었던 인터넷이 실명 공간으로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시대가 열리면서 '자기 정체성'이 중요하게 대두됐다. 유명인들의 '짝퉁 계정'을 막기 위해 트위터 같은 SNS가 인증까지 해줄 정도다.

최근 '악마의 시'로 유명한 소설가 살만 루시디를 둘러싸고 한 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루시디가 "내 이름을 돌려달라"면서 페이스북과 열띤 공방을 벌인 것이다. 루시디와 페이스북 간의 공방은 SNS 시대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잠시 그 사건을 되짚어보자.

지난 주말 살만 루시디의 페이스북 계정이 정지됐다. 페이스북 프로필에 자신의 첫번째 이름인 아메드(Ahmed) 대신 중간 이름이자 필명인 살만(Salman)을 사용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실명만 쓰도록 하는 원칙에 어긋났다는 것.

그러자 루시디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여권 사진을 보내 '내가 바로 살만 루시디'라고 해명했다. 덕분에 그는 계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페이스북 측은 '살만 루시디'란 필명 대신 '아메드 루시디'란 실명을 명시하도록 했다.

그러자 루시디는 "한번도 아메드 루시디란 이름을 쓴 적이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결국 페이스북이 양보하는 것으로 '루시디 파동'이 마무리됐다.

루시디를 둘러싼 이번 공방은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인터넷 공간의 정체성을 누가 정해줄 것이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살만 루시디의 시련은 디지털 시대의 삶을 둘러싼 가장 민감한 개념 중 하나를 건드리고 있다"고 평가한 것. 한 마디로 "현재 온라인 상에서 당신이라고 한 사람은 당신이 맞느냐?"는 물음. 그리고 "그게 바로 당신이라고 정해주는 건 누구 몫이냐"는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가했다.

양대 SNS업체로 꼽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이 부분에서 상반된 전략을 택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철저하게 실명으로 쓸 것을 강조한다. 가명을 쓸 경우 계정을 정지하는 조치를 취했던 구글 플러스는 최근 정책을 조금 바꿨다. 가명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반면, 트위터는 필명이나 가명을 허용한다.

SNS업체들이 실명을 강조하는 건 단순히 '책임 있는 발언' 때문만은 아니다. 각종 비즈니스와 연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고려한 조치라고 봐야 한다. 가명을 허용하는 트위터가 페이스북을 비판하는 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문제는 갈수록 SNS 계정이 중요해지면서, 온라인 정체성을 둘러싼 공방이 더 커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 생활 자체가 오프라인 생활 못지 않은 비중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통 사람들이 지금 당장 살만 루시디 같은 극단적인 경험을 할 일은 많지 않다. 첨예하게 대립할 일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SNS 공간이 좀 더 일반화될 경우엔 '정체성 공방'이 좀 더 확산될 여지는 적지 않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거대 SNS 업체들의 정책에 따라 내 정체성이 뒤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과연 누가 어떻게 내 정체를 정해줄 수 있을까? SNS가 우리 삶을 좀 더 강하게 규정하게 되면 될수록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 1막 4장에 나왔던 유명한 대사를 자꾸 되뇌이게 된다. (이 문구는 '리어왕'의 대사보다는 이인화의 소설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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