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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빅데이터와 '1984'의 미묘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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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감시가 계속되면서 윈스턴 스미스는 서서히 몰락해 간다. 마침내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줄리아마저 배신해 버린다. 감시 당하면서 망가져 버린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이야기다.

요즘 미국에선 '1984년'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대법원에 게루된 한 사건 때문이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2008년 경찰이 마약 판매상인 앤트완 존스의 차량에 GPS를 탑재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GPS로 수집한 정보를 증거를 토대로 존스를 기소하는 데 성공했다. 존스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이 판결이 뒤집어졌다. GPS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한 부분 때문이었다.

지난 8일(현지 시간) 시작된 대법원 재판에서도 이 부분이 집중 부각됐다. 영장없이 GPS 추적을 통해 존스가 마약 거래상이란 걸 입증한 부분이 수정헌법 4조를 위반했는 지 여부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미국 수정헌법 4조는 '이유없는 압수 수색으로부터 개인의 신체, 재산 및 서류 등이 보호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상당한 근거를 갖춘 때만 판사가 압수 수생 영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번 공방에서도 이 부분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진보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영장없이 컴퓨터칩을 다른 사람 외투에 붙이거나 스마트폰을 추적해도 된다는 얘기냐"며 따졌다.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 역시 "행정부가 승소하면 국가가 시민 개개인을 24시간 감시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다"며 우려했다.

반면 행정부를 대표하는 마이클 드리븐 법무차관보는 집 안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면 사생활 침해가 아니란 논리로 맞섰다. 드리븐 차관보는 "GPS는 용의자 위치만 알려주고 수사기관이 실제 장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공방은 논리의 영역에서 따질 문제는 아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GPS 이용이 부당하다고 하는 쪽이나, 어쩔 수 없다는 쪽이나 다 타당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면 당연히 '데이터 이용' 자체를 금지하는 게 맞다. 그렇다고 해서 '긴급한 수사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허황된 것만도 아니다.

하지만 '빅 데이터 시대'란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젠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데이터를 손쉽게 수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데이터 분석 기술도 놀라운 수준으로 발달해 손쉽게 분석해낼 수 있다.

미국 대법원의 이번 재판이 관심을 모으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빅 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GPS에 머무르는 사안이 아니란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이나 교통카드 정보만으로도 24시간 감시가 가능하다. 페이스북 같은 SNS 정보 역시 손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24시간 감시망 내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예전 같으면 밀착 추적을 해야 가능했던 정보를 간단하게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분석 기법도 놀랄 정도로 발달했다.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한 개인의 모든 사생활을 파헤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개인을 대상으로 '빅 데이터'를 활용할 땐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 대법관들이 '1984' 운운하는 것이 결코 오버는 아니란 얘기다.

지금 분위기로 봐선 미국 대법원에서도 항소법원과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GPS로 수집한 정보로 범죄를 입증한 건 '무효'라고 판결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

이 시점에서 우리도 '데이터 활용'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편의' 때문에 '약간의' 침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하기엔, 빅 데이터의 위력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빅 데이터'와 '1984'의 거리가 그리 멀어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바다 건너 미국 대법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방이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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