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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덕의 다시보기]임재범 '여러분', 청중 '한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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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덕기자] 22일 방송된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 새 버전 최종 경연, 마지막 주자로 나선 임재범의 '여러분' 무대가 피아노 선율로 시작됩니다.

임재범은 시작부터 뭔가 다릅니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줄게', 도입부의 이 몇 마디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벌써 젖어듭니다. 숙명적인 음색입니다. 곡이 워낙 대곡이라서 그럴까요. 숙연하고 엄숙하고 종교적이기까지 합니다.

두려웠다고 합니다. 신중현 선생의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던 BMK에게 임재범이 동병상련의 마음을 전하며 건넨 말입니다. 워낙 대곡이라, 이미 편곡이 끝나버린 대곡이라 노래하기가 감당하기가 두려웠다고 합니다. 또한 자기가 불렀다기보다 다른 존재가 자신을 노래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고도 했습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다른 존재가 임재범이라는 가수의 안에 들어와서 몰래 노래했나 봅니다. 그의 심장과 혼과 상처를 빌어, 그의 불후의 목소리를 빌어.

대가들이 명작을 만들어냈을 때 종종 접하게 되는 비유법입니다. 화가든 시인이든 스포츠선수든 어떤 창작이나 희열의 순간에는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하나의 통로로 사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그 무언가의 힘에 이끌려 자신은 텅 비워지고 그 공간을 누군가에게 내주는 느낌인가 봅니다.

임재범이 여전히 나지막이 속삭이며 허공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자신을 비우면서 누군가 거기 들어와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하나 봅니다. 참 애잔한 음색입니다.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형언할 수 없는 초절정 보컬입니다. 장기호 자문위원이 이렇게 표현했지요. 가창력을 떠나 동물적으로 타고난 감각, 혹은 본능 같다고. 남태정 PD는 '야수가 부르는 처절한 희망의 찬가'라고 칭송했습니다.

곡이 조금씩 고조되면서 관객들은 눈을 감습니다.

1절이 끝나자 벌써 눈물을 흘리는 몇몇 여자관객들의 모습이 극적인 효과를 더합니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보컬에 더해 '빈잔' 때보다 몇 배 더 열심히 연습했다고 하니 이런 엄청난 결과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요. 불후의 무대, 오래 오래 기억될 무대 같습니다.

이제 그룹 '헤리티지'의 풍성한 코러스가 더해집니다. 세련되고 웅장한 가스펠 소울 보컬이 더해지며 곡은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임재범의 눈에 눈물이 맺힙니다. 혼을 실은 열창은 터지고 또 터져나옵니다. 야수가 울부짖듯 죄인이 속죄하듯 그렇게 노래하던 임재범은 한 쪽 무릎을 꿇고 내레이션을 읊조립니다. 최대한 담담한 톤이지만 듣는이를 삼켜버릴 것만 같은 강렬함입니다.

이어 노래는 또 한 번의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제 임재범은 멜로디를 헤리티지에 맡기고 그 위에서 뛰놉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거닐듯 자유롭게 멜로디에 임팩트를 더합니다. 화려하지만 오버하지는 않습니다. 절제하는 선을 지키며 자신의 느낌을 드라마틱하게 얹습니다.

관객들의 눈물의 농도는 한층 짙어지고 탄식은 깊어집니다. 열광의 리액션이 화면을 메웁니다. 중저음의 허밍으로 곡을 마무리한 임재범은 "바로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혼신의 무대를 마칩니다. 관객들은 눈물 속에서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임재범은 과거 자신의 인생 역정이 노래를 하는데 토양이 됐다며 '나는 가수다'를 할 운명이었나 보다고 했습니다. 또한 '나는 가수다'에서 자신이 가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고, 노래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 노래 듣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임재범의 역작 '여러분'을 앞으로 도대체 몇 번이나 '다시보기' 할 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아마 가끔 허전하고 쓸쓸할 때, 위안이나 안식처를 찾고 싶을 때 우리는 임재범의 '여러분'을 돌려볼 것입니다. 임재범은 '여러분' 가사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한 줄기 '등불'이 됐습니다.

또한 임재범은 지난 '빈잔'의 무대가 자기만족과 자기 감정 위주의 넋두리나 한풀이 무대였다면 이번 '여러분'은 노래다운 노래를 할 것이며, 관객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선물이 한없이 기쁘고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은 어쩌면 청중들의 한풀이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극과 마케팅, 비주얼과 퍼포먼스, 공허하고 울림 없는 테크닉이 난무했던 작금의 가요계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관객, 청중들에게 임재범의 무대는 어쩌면 한풀이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울었습니다.

임재범은 무대 중 눈물을 보인 것에 대해 친구가 한 명도 없어 그런 게 순간 그리웠다고 했습니다. 항상 혼자였다고도 했습니다. 그런 숙명적인 외로움이 외로움을 모티브로 한 '여러분'을 만나고 노래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임재범은 행복해 보입니다. 무대에서 역작을 완성한 후 담담하게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하며 작은 위안을 찾았나 봅니다. 거꾸로 그의 역작에 큰 위안을 얻는 수많은 '여러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임재범이 바친 회심의 '여러분', 혼신의 '여러분', 불멸의 '여러분'을 노래의 주인공인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혹시 우셨습니까.

박재덕기자 avalo@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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