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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덕의 다시보기]임재범 가수님, 이 감동을 '어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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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덕기자] 가수 교체 등 새단장 후 1일 방송이 재개된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주인공은 단연 임재범이었다.

압도적이었다. 명불허전이었다. 차원이 달랐다. 범접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이번 에피소드의 부제는 이렇게 따로 뽑으면 어떨까. '임재범, 우리들의 전설-님은 가수님이다'로. 김형석 작곡가가 방송에서 말했듯 가히 '나만 가수다' 급이었던 임재범의 포효, 혹은 읊조림, 혹은 혼신의 절규에 우리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맛봤다.

우리는 그와 함께 은밀한 여행을 떠났다. 우리의 과거와 조우했고, 우리의 이별을 떠올렸고, 우리의 '사랑'과 '전쟁'과 '그대'가 우리 곁을 휘몰아치듯 쉴 새 없이 스쳐지나갔다. 그건, 임재범이 인도한 마술 같은 여행이었다. 그건 당대의 가수들만이 이끌 수 있는 황홀한 여행이었다.

우리는 그의 노래에 따라 물결 쳤고, 몸서리 쳤고,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 그의 노래는 거침없이 우리 심장을 쳤다. 가슴을 때렸고, 감성을 깨웠다. 사랑과 이별, 회한까지 한바탕 거대한 토네이도를 안겨주었다. 임재범은 역시 레전드였다.

노래 시작 전 '너를 위해 떠날 거야'란 애틋한 가사에 대한 속살 같은 사연을 살짝 공개한 이 전설의 가수님은 노래 내내 우리들의 단전과 가슴에 뜨거운 공명을 주었고, 눈에서 눈물을 빼냈다. 우리네 잘난 머리는 진공 상태로 비워져만 갔다.

또 한 명의 위대한 레전드인 전인권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었다. 요즘 가수들은 귀만 간지럽히고 가슴을 치지 않는다고.

넘쳐나는 보컬 트레이너들에게서 이론과 기교를 너무나 정교하게 잘 배운 탓일까. 마치 자로 잰 듯한 천편일률적인 보컬 톤과 보컬 컬러, 이젠 너무나 뻔하고 식상해진 기교로 무장한 보컬리스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청중들은 역으로 보다 원초적이고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가수가 주는 진정성을 갈구하게 된다. 가수는, 그리고 음악은 계산하기보다 가슴을 치고 울리고 공명을 주는 거니까.

물론 천하의 임재범을 포함한 모든 가수들은 나름의 기교를 가지고 노래한다. 그 기교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지만, 적어도 기교와 본질의 비율에서 본질적인 면이 좀 더 높고 보다 충만하기를 바라는 게 우리 청중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때론 음정 하나, 호흡 하나 다소 어긋나더라도 본질이 주는 깊은 울림에 더 감화되고 동화되고 싶으니까. 그 본질이란 게 결국 가수 본연의 그 무언가겠지. 그게 철학일 수도, 창법일 수도, 음색일 수도, 그 무언가 그만의 향기이자 차별화되는 무기, 혹은 브랜드 같은 것이겠지.

장기호 자문위원이 '나가수'에서 임재범을 표현할 때 "미국의 경우 스티비 원더 같은 목소리를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목소리라고 칭찬을 해요. 임재범씨의 경우 우리 가수 통틀어서 정말 희소가치가 있는 소리다. 그리고 모든 장르를 다 소화할 수 있다"라고 한 점을 깊게 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불고 있는 가요계 변화의 바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세시봉'의 깊은 향기가 우리를 새삼 취하게 했고, 김건모가 우리의 폐부를 찌른 회심의 '유 아 마이 레이디', 김범수의 절창 '제발' 등은 거리 음악의 민심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1일 방송 후 임재범의 노래를 들은 시청자들은 '소름 돋는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가슴을 후벼판다'며 일제히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임재범의 음악을 찾아 저마다 설레는 음악여행을 떠났다. 이제 당분간 거리 음악은 임재범의 '나가수' 버전 '너를 위해'가 장악할 것이다.

임재범의 노래는 그렇게 우리의 가슴, 혹은 가슴보다도 훨씬 더 아래의 그 어딘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울림으로 우리 감정, 혹은 우리 존재의 심연을 거세게 건드렸다.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해 우리를 얼마간 깨끗하게 해줬고, 찌든 일상에 지친 우리 심신의 노폐물을 빼고 투명한 산소와 생기를 불어넣어줬다.

이게 바로 가수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노래와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다.

가수의 주요 아이템이 '늘씬한 각선미' '아찔한 뒤태' '초콜릿 복근' '하의실종' 'OO 종결자'가 아닌 '노래와 삶에 대한 성찰'과 '감동', '공감'과 '울림'을 찾는 '여정'이어야 하는 이유다.

박정현이 1일 방송된 '나가수'에서 부른, 자신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곡 '미아'의 가사 또한 음미해 볼만하다. 박정현은 은연 중에 이 가사를 통해 가수라는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생을 길에 빗대어 노래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다시 임재범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를 선곡한 이유에 대해 임재범은 이렇게 말했다.

"제 마음 속에 소중한 곡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상황이고, 맨 나중에 '너를 위해 떠날 거야' 라는 게 살다보면 남녀가 사랑하다 보면 안 이뤄지는 사랑은 꼭 그렇게 끝나더라구요. 떠났는데 죽을 때까지 못잊는 사람이 한 사람 있잖아요."

이렇듯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은 그의 연륜이 묻어나는 원숙한 보컬과 아름답고 따뜻한 조화를 이뤘다. 가수가 아티스트로 불리는 이유다.

이쯤에서 임재범이라는 가수님이 내 인생에 축복을 준 불후의 레퍼토리 몇 개만 짧게 나열해본다. 독자 여러분 또한 임재범의 주옥 같은 노래에 얽힌 추억 서너 개쯤은 갖고 계시리라.

지금부터 25년 전인 1986년 시나위 1집 수록곡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가 내 마음 속에 타오르는 촛불 하나를 켰다. 신대철의 환상적인 기타와 어우러진 끓어오르는 듯한 임재범의 보컬, 그 용광로 같은 파워와 헤아릴 수 없는 깊이는 신비롭고 아름다웠으며, 우리 철모르던 청춘들에게 충격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한 해 뒤 발표된, 김태원과 이승철이 빚어낸 부활의 '슬픈 사슴'이 그러했듯.

97년 솔로 2집 '디자이어 투 플라이(Desire To Fly)' 수록곡 '그대는 어디에'는 또 어땠나. 비가 오는 날이면 거의 자동적으로 내가 좋아하던 도곡동 그 거리를 몇 번이고 오가며 차안에서 '그대는 어디에'를 들었다. 적어도 내겐 세상에서 가장 습하고, 진하고, 드라마틱하고, 감정의 파동이 컸던 곡이었다.

임재범 불후의 명곡 '고해'를 너무나 멋들어지게, 그리고 '임재범스럽게' 불렀던 한 후배와는 임재범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첫 만남이었지만 쉽게 거리감을 좁히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 곡이 여자들이 뽑은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 곡' 베스트 중 하나라고 했던가. 그만큼 수많은 남자들이 임재범 특유의 남자답고 강렬한 마성의 노래에 반했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사랑을 노래하고 증명하려 애썼다는 방증일 게다. 물론 그 진정성과는 달리 '임재범 따라잡기'에 무수히 실패했었지만.

임재범 가수님, 당신이 안긴 감동에 취해 우린 또 한 바탕 '너를 위해'와 '고해'를 비롯한 당신의 명곡들을 불러제낄 것만 같습니다.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박재덕기자 avalo@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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