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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디지털 피로와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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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오기자] "노래 한 곡 불러봐!"

회식 자리에서 후배에게 명령하다 시피 부탁했다. 소주가 몇 잔 돌고, 얼굴에 홍조를 띈 후배는 머뭇거린다. 다행히 주변에는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없다. 밖에는 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어둠이 알맞게 익은 거리는 '노래 한 곡 뽑기'에 딱 좋은 날씨이다. 후배는 잠깐 주저하더니 '신청곡!'을 외친다.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해 주면 자신이 부르겠다고 한다. 나는 이은미·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주문한다. 후배는 '어~어~'를 외치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뭐하니?"

내가 묻는다.

"서른 즈음에 가사 찾는 중인데요."

"......"

후배에게 "그 가사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회식 자리에서 '생음악'을 주문하는 내가 후배에게는 '참, 이상한 양반이네.'라는 힐난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현실이지 않은가. 후배가 "선배! 노래는 노래방에 가서 불러야지요."라는 말이 되돌아오지 않는 게 천만 다행이다.

디지털 피로가 깊어지고 있다. 24시간 동안 우리는 스마트폰과 정보화 기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연필과 종이는 내 곁을 떠난 지 오래됐다. 약속은 스마트폰의 일정관리에 기록돼 있고, 편지는 e메일로 대체된 지 오래됐으며, 길을 찾는 데는 내비게이션과 인터넷 지도가 이용된다. 모든 것을 디지털로 해결하는 것이 지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디지털로 인한 편리함·즐거움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2천 여 명의 전화번호가 등록돼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통화를 할 때는 일일이 전화번호를 누르지 않고 이름으로 검색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니 편리한 세상이다.

'디지털 원주민'으로 태어난 우리는 기억하고, 생각해야 될 일들로부터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일들은 디지털 기기가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디지털 원주민'으로서 우리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디지털 치매'에 대한 연구 결과 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 치매'란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은 물론 계산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치매의 원인이 딱 하나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병의 가장 큰 출발점은 '피곤'에 있다. 몸이 피곤하면 마음이 피곤해 지고, 마음이 피곤해 지면 입맛이 피곤해 지고, 입맛이 피곤해 지면 우리 몸의 장기가 피곤해 지고, 장기가 피곤해 지면 정신이 피곤해 지고, 정신이 피곤해 지면 기억이 피곤해 지고, 기억이 피곤해 지면 치매에 이르게 된다.

자신을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자청한다면 디지털 피로를 어떻게 풀 것인지, 피로가 점점 가중될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 것인지도 스스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기억과 생각을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매트릭스'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반도체의 복잡하게 얽혀 있는 회로망의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디지털 피로와 치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신만의 독특한 해소법을 창조해 보자.

기억과 생각은 인간이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이다. 기억과 생각이 창조를 만들고 그 창조로 인해 우리는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정종오 엠톡 편집장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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