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오바마 섹스스캔들 외신 어떻게 볼 것인가
2010.05.04 오전 11:10
'더 뉴스(The News)'란 책이 있다. 아시아 기자 9명이 현장을 뛰면서 겪은 일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2년 여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아시아 기자들의 뛰어난 역량과 기자 정신에 크게 감동했던 경험이 있다.

최근 외신 기사를 놓고 연이어 벌어지는 소동을 보면서, 또 다시 이 책을 떠올리게 됐다. 잠시 그 얘기를 해 보자.


어제 국내 주요 매체들은 일제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기사를 쏟아냈다. 모 매체는 [단독]이란 꺽쇠까지 달아서 내보냈다.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각종 금기의 벽에 도전한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이 결국 여자 문제로 좌초하는가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길 바랐지만, 국내 매체들이 쏟아내는 기사를 보면, 사실인 것 같았다. 'CCTV 증거까지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궁금한 마음에 외신들을 뒤져봤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미국의 유력 매체들은 오바마 섹스 스캔들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클린턴 사건 때 엄청난 기사를 쏟아낼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뭔가 이상했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오보'일 가능성이 많다. 미국의 연예추문 폭로 전문 매체의 기사를 무분별하게 받아쓴 것이 확대재생산 된 셈이다.

구글과 애플 간의 막말 싸움을 다룬 외신 기사들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얼마 전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포르노를 보려거든 안드로이드 마켓에 알아봐라"고 독설을 퍼부은 적 있다. 그리고 며칠 뒤 구글 부사장이 "애플은 북한 같은 폐쇄 사회'라고 맞받았다.

국내 주요 매체들은 이 두 사건을 다루면서 '애플과 구글의 막말 싸움'이란 쪽으로 분위기를 잡았다. 당연히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과연 구글과 애플이 막말 다툼을 한 것일까? 물론 구글 부사장이 애플 같은 폐쇄사회는 북한에서나 볼 수 있다는 요지의 말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개방을 둘러싼 두 업체 간의 철학논쟁'이었다. 따라서 구글과 애플의 경영진들이 왜 격하게 공방을 벌였을까, 란 관점으로 접근했으면 훨씬 더 입체적인 기사가 될 뻔했다. 이런 배경을 빼 버린 채 '막말'만 부각시키면서 결과적으론 사안 자체를 왜곡한 셈이 됐다.

최근의 해프닝들은 외신에 대한 잘못된 접근 자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외신에 대한 맹신과 입맛에 맞는 부분만 지나치게 부각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더 뉴스' 얘기로 돌아가보자. 이 책에는 아시아 기자들이 서구 중심주의 때문에 얼마나 홀대받고 있는 지 잘 보여준다. 24년 전 1만5천명이 사망한 보팔참사를 특종 보도한 한 기자의 이야기는 서구 유력 언론사들에 대한 아시아 인들의 맹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인도 보팔지역에 들어와 있던 다국적 기업의 위험성에 대해 끊임 없이 경고해 왔던 이 기자는, 결국 자신의 경고대로 폭발 사건이 발생했지만 특종의 공은 서구 언론사들이 고스란히 가져가 버렸다.

그 과정에서 이 기자는 자국 정부와 동료 기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또 공동 작업했던 뉴욕타임스는 탐사보도 기사에 그 기자의 이름을 빼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최근의 외신 소동을 지켜보면서, '더 뉴스'를 떠올린 것은 바로 이런 내용들 때문이다.

이젠 지구 반대쪽 소식까지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외신이 그만큼 더 중요해진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런 만큼 외신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추종이나, 적당한 짜깁기보다는 비판적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이라고 해서 이런 원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김익현 통신미디어 부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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