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끊임 없이 나누고 분류하면서 살아간다. 거대한 아파트부터 도서관이나 서점, 백화점 할 것 없이 전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상품을 분류해 놓았다. 고등학교 영어 참고서에 예문으로 자주 등장했던 "고래는 포유류다"는 문장에도 생물을 분류했던 자취가 배어 있다.
이처럼 분류는 우리 삶에서 뗄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어떤 것을 분류하는 관행이 근대 문명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 바로 분류의 역사다.
알렉스 라이트의 '분류의 역사'(Glut: Mastering Information Through the Ages)는 20억 년 동안 인류의 정보시스템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책에서 정보를 습득하고 분류, 관리하는 관행은 인간의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 있는 습성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가족 체계를 모방한 민속분류법이 변화 발전해 온 것이 현대의 분류법이란 것이다.
도서관의 기초를 닦은 듀이나, 동식물 분류법의 태두로 꼽히는 린네 역시 인류 역사 저 멀리에서 이어져 내려온 민속분류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분류 체계 역사를 '계층구조'와 '네트워크'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이런 기본 틀을 토대로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의 전통이 어떻게 융합 발전해 왔는 지를 꼼꼼히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딱딱한 역사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학문 분야에 두루 걸치고 있는 저자는 특유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분류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해 준다.
저자는 빙하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낸 상징물에서 인터넷상의 이모티콘을 연상한다. 또 변방에서 고독하게 작업했던 7세기 아일랜드 수도원의 필경사들에게서 비주류 세계의 강자들인 블로거를 떠올린다.
저자의 이런 비유들은 이 책을 '곰팡내나는' 역사책이 아니라 현대 우리들의 삶을 다루는 살아있는 인문서로 자리매김하도록 해 준다.
하이퍼텍스트의 기초를 닦은 바네바 부시나, 구글 검색 엔진의 토대가 됐던 유진 가필드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최근 들어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댄다는 비명들이 많이 들린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우리 시대 들어 생겨난 것은 아니다. 저자인 알렉스 라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태초부터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정보 홍수 속을 헤매었고, 그런 홍수를 잘 헤쳐 나오기 위해 본능적으로 분류법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인문학적 통찰력과 사회과학적 지식을 잘 버무리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비벼낸 솜씨가 이 책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독자들 역시 그 힘에서 잔잔하고 유익한 재미를 느낄 것 같다.
(알렉스 라이트 지음/ 김익현-김지연 옮김, 디지털미디어리서치 1만8천원)
/안희권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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