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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성]정보화사업, 설계부터 제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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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동안 고생해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직장인 김씨. 새 집으로 이사하기 전 인테리어 공사에 여념이 없다.

김씨가 고용한 인테리어 전문 설계사는 오늘도 김씨에게 찾아와 100가지 질문을 쏟아낸다.

"사장님. 이 사진 보세요. 베란다 확장을 할까요? 확장을 하면 비용은 이정도 들고, A 디자인, B 디자인, C 디자인으로 선택하실 수 있어요. 벽지는 무슨 색으로 할까요? 푸른 색은 안정감이 있고 흰색은 깔끔한 느낌이 들고요. 지금 선택하셔야 됩니다. 나중에 공사 들어가면 못바꿔요."

설계사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앞으로 평생을 살아갈 내 집을 꾸민다는 생각에 김씨도 열심히 설계사와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나 인테리어 요소를 결정해 나간다.

김씨는 인테리어 전공도 아니고 주거환경에 대해 아는 바도 없다. 하지만 전문가인 설계사를 통해 내집을 함께 설계하고 디자인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건축과 상당부분 흡사한 정보화 사업 역시 이처럼 설계 단계에서 모든 구축 방향을 정하고 상세한 요구사항에 따라 실행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대부분의 정보화 사업들은 'ISP(정보화전략계획)'를 통해 방향을 설정하지만, 말 그대로 '방향'에 그치고 만다. 제대로 된 제안요청서(RFP) 하나 도출하지 못한다.

그러니 사업 중간에 아차 싶은 발주자들은 요구 사항을 추가한다. 예전에 설계했던 내용도 바꿔놓기 일쑤다.

정보화 사업자로 선정된 이들은 불만을 쏟아놓는다. "당초 제안요청서에는 이런 얘기가 없었잖습니까. 이렇게 요구 사항을 중간에 변경하시면 프로젝트 기간이 길어집니다. 비용도 더 들고요."

하지만 이같은 얘기는 그저 마음속의 메아리일 뿐이다. 결국 시키면 시키는대로, 묵묵히 야근에 철야를 거듭하며 시스템을 뜯어고친다.

이미 선택한 푸른색 벽지를 방의 3분의 1쯤 도배했을때, 김씨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푸른색 보단 깔끔한 흰색이 좋아서 벽지를 교체해 달라고 인테리어 사업자에게 얘기한다면 그 인테리어 업자는 어떤 말을 할까.

"그러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잖습니까. 한번 결정하시면 못 바꾼다고요. 그래도 평생 사실 집인데, 정바꾸고 싶으시면 지금이라도 바꾸시던가요. 대신 날짜는 이틀 추가됩니다. 벽지 비용도 더 내셔야 돼요." 김씨는 눈물을 머금고라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벽지를 바꾼다.

이런 당연한 논리가 정보화 사업에서는 적용이 되질 않는 것이다. 그러니 소프트웨어 산업은 3D다, 4D다, '월화수목금금금'이네 하는 불만만 팽배하다.

이 모든 불만은 결국 발주자에게 돌아간다. '발주자가 전문성을 갖추고 처음부터 제대로 된 사업 발주를 했더라면', '과업 변경을 하지 않도록 전문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더라면' 이런 원망이 쏟아지는 것이다.

고백하건데, 기자 역시 '결국 발주 관행이 문제'라는 결론을 여러 번 내렸다. 매번 정보화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공공 발주자 전문화 교육'이 반드시 포함돼 있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제는 달리 말하고 싶다. "발주자가 왜 전문적이어야 하는데?"

그렇다. 발주자는 전문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사업 후 해당 시스템을 운영하고 활용할 당사자로서 어느 정도 정확한 이해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가 왜 미리 현업의 모든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시스템을 설계하고, 사업자를 공정하게 선정하고, 사업자가 행여 하도급 업체에게 불공정 행위를 하지나 않을지 감시해야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고루 사업을 나눠줘야 하는가.

발주자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 부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만약 발주자가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지금 나와서 기업을 차려도 빅3보다 잘나가는 기업이 될 것이다. 현재 어떤 기업도 이 모든 것을 잘 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최근 RFP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발표했다.

전문가 그룹을 통해 정보화 사업 설계부터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예산도 더 필요하다. 소프트웨어진흥원은 시범사업을 통해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발주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정보화 사업의 자세한 요구분석, 이를 할 줄 아는 전문가들은 발주자를 도와 세밀한 설계도를 작성한다.

사업자들은 로비를 하고 싶어도 발주요구서가 너무나 상세해 부정과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크지 않다.

설계도대로 개발하면 되니 사업자 입장에서도 편리하다. 무분별한 과업변경 요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발주자는 이 모든 과정을 전문가와 함께 결정할 수 있어 짐을 덜 수 있다. 마치 김씨가 집을 새롭게 디자인하기 위해 인테리어 설계사를 고용한 것처럼 말이다.

소프트웨어진흥원이 추진하는 이번 시범사업에는 적지않은 공공기관 발주자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선정이 마감된 후에도 "우리 사업도 끼워달라"며 뒤늦게 요청을 해온 발주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들도 지친 셈이다. 이제는 자신들이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속한 조직의 정보화 방향을 설정하고 운영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 하고, 설계하고 개발하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니 호응을 보내는 것이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추진하는 이번 RFP 선진화 컨설팅 시범사업이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빨리, 그리고 폭넓게 안착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강은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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