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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미의 명랑한 경제]고개숙인 삼성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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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 근무하는 A수석은 오후 9시경 짐을 꾸렸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이른 퇴근이다.

새벽 6시면 집에서 나와 밤 11시, 12시에 회사를 나서는 게 일상. 수원 사업장에서 11시40분에 떠나는 강남행 막차를 탈 수 있는 날은 그래도 서울에 도착해 쓰는 택시비 부담이 적은 편이다. 막차 시간에도 대지 못하면 달리 방도가 없다. 기름 값이 오른데다 졸음 운전으로 큰 사고를 낼 뻔한 이후로는 웬만하면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이런 날은 눈을 질끈 감고 수원부터 서울 집까지 5만원 짜리 심야 택시를 탄다.

오랜만에 지하철 운행 시간에 퇴근하는 운수 좋은 날. 그런데도 A수석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제 심야 근무할 때 지급되던 교통비가 안 나옵니다. 사실 한 달이면 택시비만 30만원 넘게 드는 경우가 많은데…. 날마다 심야까지 남아서 일하는 부하 직원들 보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오늘은 제가 먼저 하던 일 접고 나왔습니다. 다들 들어가라구요."

삼성전자가 3일 임금 동결과 PS(초과이익분배금), PI(생산성격려금) 상한선 축소에 이어 평일 야간 근무자에게 지급하던 교통비도 주지 않기로 했다.

삼성 측이 밝힌 수당 폐지 이유는 '비용 절감과 정규 근무시간 집중 유도'. 할 일이 있으면 업무 시간에 밀도 높게 일해 마무리하라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 1만~2만원 정도 교통비를 받자고 새벽 별 보고 나와 새벽 별 뜰 때 귀가하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익히 알려져 있는 삼성의 근무 강도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간 교통비의 주 수혜 대상은 밤샘 근무가 잦은 개발팀이나 대외 업무가 많은 영업, 수출 관련 부서 직원들이었다. 특히 부서간 협조가 주요한 부서원들이다. 직원들 사이에선 이 때문에 벌써부터 각종 업무 처리 지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일 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주말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택시비도 자기 호주머니에서 충당하라면 누가 막차 끊기는 시간까지 일하고 싶겠습니까. 개발 등 전체적으로 업무 처리 시간이 크게 지연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수원 사업장 앞 삼겹살 집에서 엿들은 한 직원의 속엣말이다.

커피와 녹차, 종이컵이 사라진 사무실. 종이, 볼펜도 배급받아 쓰는 요즘 삼성맨들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사라졌다. 지난 4분기, 1조원에 이르는 영업적자를 낸 상황. 세계 경기가 동반 하락하고 있는 지금 긴축경영이 불가피하다는 데는 노사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전방위 긴축 압박이 지나친 사기 저하를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을 주요 고객사로 둔 한 기업의 대표는 요사이 삼성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최근 수원 사업장에 다녀온 그는 "혀를 내둘렀다"며 말문을 텄다. "세상에 회의하는 동안 음료수 한 잔을 안 주더군요. 마른 행주도 다시 짜야 하는 때라는 건 알겠는데 분위기가 너무 삭막해요. 직원들 얼굴이 너무 어둡더군요."

'시계 제로'의 시대다. 청와대부터 기업들까지 '워룸'(War Room·전쟁상황실)을 꾸려놓고 경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상황이 그 만큼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왜 하는 긴축인가'이다. 긴축의 목표는 긴축 그 자체가 아니라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자는 데 있다. 위기가 지나간 다음에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 국가도 기업도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그러자면 임원을 내보내고 초임을 깎고 잡비를 줄이더라도 저력은 남겨둬야 한다. 저력의 뿌리는 조직의 활력이다. 이건 직원들의 사기에서 나오는 힘이다. 하지만 요사이 부쩍 알뜰해진 삼성은 종종 그걸 잊고 가는 것 같다.

최근 일본의 유명 중소기업은 경제 위기로 직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불량률이 높아지자 사내에 승려를 초빙했다. 직원들은 매일 오후 승려와 함께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불량률이 낮아지고 조직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꼭 명상을 해서가 아니라 회사의 배려에 감동해 마음을 다잡는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음을 보듬는 위기 극복 방식인 셈이다.

주마가편(走馬加鞭). 지난해부터 시작된 위기 1막에 대응해 삼성은 닫는 말에 채를 들었다. 그러나 전력 질주로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없다.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은 불황 레이스, 이젠 직원들의 마음을 좀 어루만져주면서 가면 어떨까. 위기 이후를 준비하기에 지금 삼성맨은 너무 피로해 보인다.

/박연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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