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최근 잇달아 친박(친 박근혜) 의원들과 회동을 갖고 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지난 1일 이정현, 김세연 의원 등 친박계 초선 6명과 오찬을 가졌다. 또 7일에는 친박계인 핵심인 유승민, 김성조 의원과 저녁을 함께 할 예정이다. 내주에는 이혜훈 의원과 이성현 의원과도 약속을 잡아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도 지난 2일 지난해 대선경선 때 박근혜 전 대표를 도왔던 한선교, 유기준 의원과 만찬을 하기로 해 청와대 인사들이 발 벗고 친박 의원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다.
그간 정중동 행보를 보였던 청와대가 다급하게 몰아치듯 친박계 인사들을 만나는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發 금융위기가 국내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과 이른바 'MB법안' 등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당부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당내에서는 그러나 청와대 인사들의 잇단 '여의도行'에 대해 내년 초 개각론 등 여권 개편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친박계와 갖은 회동이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친이(친 이명박)계를 중심으로 '박근혜 역할론'을 띄우고 있음에도 정작 청와대는 '거부감'을 나타내는 등 혼선을 빚고 있는 데다, 이에 대한 실체도 불분명해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흔들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는 상황이다.
◆'내우외환' 위기의 巨與, '여당내 야당' 친朴계의 협조 절실
여권 내부의 가장 큰 고민은 '친이-친박' 간의 갈등이다. 이로 인해 172석의 거대 여당이 국정을 주도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대선과 경선 등을 거치면서 쌓인 양 측의 갈등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도적인 승리 이후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측근내각을 구성하면서 더 커진 상태다. 또 지난 총선 공천과 탈당 친박 인사들의 복당 문제로 '이명박-박근혜'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데다, 위기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총리설', '대북특사설' 등이 거론되다 무위에 그치면서 서로 간 신뢰는 바닥을 드러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대통령은 친이계를 전위부대 삼아 국정 운영 드라이브를 걸어보려 했다. 그러나 쇠고기 정국에 이어 금융경제 위기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이 대통령 뿐 아니라 친이계의 당내 입지는 급격히 좁아진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친박계는 '월박', '복박' 등의 유행어가 당내에서 공개적으로 나오는 등 현재까지 만해도 의석수만 50여개로 늘어나 사실상 '여당 내 야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력이 확대됐다.
이명박 정부는 아직까지 그럴싸한 MB정책 드라이브를 시작해보지도 못했고 내년도 예산안과 감세법안 등에 야당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이제는 친박계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국정을 주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사건건 야당과 대치하고 있는 여당은 과반수가 넘는 172석의 의석수를 갖고 있지만 이중 3분의1 가량이 친박계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어, 이들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내년도 예산안과 이른바 각종 'MB 법안'을 힘의 논리로 통과시키려 해도 친박계의 도움 없이는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추경예산안을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하려 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친박계 의원들의 불참으로 무산되는 등 친박계 존재감을 실감한 터다. 때문에 친박계의 지원 없이는 예산안 등 처리가 녹녹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감과 함께 또다시 실패할 경우 거대여당의 무기력과 당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 등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와대가 직접 친박계 인사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위기감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다급함이 그대로 배어있다.
◆친이-친박 화합, 표면적으론 '신뢰회복'…가능할까?
결국 친이계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박근혜 역할론'을 거론하고 나선 것도 현재의 위기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박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계기는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자신의 최대 경쟁 상대였던 힐러리 경선 후보를 국무장관으로 기용하자, 통합의 정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박 전 대표가 정권이 어려울 때는 정부를 도와주는 게 맞다. (박 전 대표가 이명박 정권을)비판만 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박 전 대표의 입장변화를 완곡하게 촉구했다.
주호영 의원 역시 "소극적 자세로 있으면서 역할을 다했다고 할 시기는 지났다"고 박 전 대표에 기대감을 나타내도 했다. 안상수 의원도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힘을 합쳐야 한다"며 박 전 대표를 자극했다.
이는 최근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이명박 경제입법, 한미FTA 비준안 등에 발목을 잡혀 국회 뿐 아니라 정부여당 모두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카드'가 국면 전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박근혜 역할론' 띄우기에 친박계는 불쾌해 하고 있다. 이정현 의원은 "도발인지 돌발인지는 모르지만 명백하게 부적절한 처사"라며 "각자의 방식으로 국가위기 극복에 기여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발끈했다.
김선동 의원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만큼 우선 신뢰회복이 필요하다며 현재로선 시기상조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 의원은 "(박 전 대표가)협력을 할 부분이 있다면 하겠지만 모든 문제는 시기나 때가 있다"면서 "진심으로 진정성이 통하면 얼마든지 협력이 가능한 것 아니겠느냐"며 "(그간)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돼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근혜 역할론'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와의 신뢰 회복을 통한 관계정상화 등 몇 가지 장벽들이 해결돼야 가능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주된 인식이다.
◆해법없는 '신뢰회복'…진정성 있는 대화 창구 열려야
친박계는 이 대통령과 친이계가 '박근혜 역할론'을 거론하기 전에 신뢰회복이 전제돼야 한다며 친이계에 의심에 눈총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신뢰회복의 방법에 있어서는 친이, 친박 모두 명확한 해법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총선 공천과 친박연대 및 친박무소속 연대의 복귀 문제, 이명박 정부 출범 시 개각 등을 거치면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 신뢰가 무너졌다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또 친이계 내부로부터 제기된 박 전 대표의 총리설과 대북특사설이 모두 해프닝으로 끝나면서 신뢰감은 거의 바닥에 달했을 것이라는 인식이 당 안팎에 퍼져있다.
때문에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이 대통령 측에서 진정성이 담긴 신뢰를 보낼 때만이 박 전 대표의 역할론을 수긍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뢰회복이란 말이 나오는데 실제로 신뢰회복이 딱히 무엇이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우선 상호간 대화가 먼저 이뤄져야 (친이-친박)서로 의견 접근이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제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신뢰라는 것이 뭐 은행에 빚 갚듯 하는 게 아니고 현재로써는 계파를 정의하는 자체가 신뢰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당장은 그쪽(친이)에서 뭘 말하더라도 우리가 들어줄 것도 아니고 현재로써는 신뢰회복을 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고 일회성 이벤트나 총리직 제안 같은 단기적인 방편으로 양 측의 갈등을 해소하긴 어렵다는 점을 시사했다.
친이계 측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정치는 싫은 사람도 만나야 한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이 맞는데 결국 이를 실행에 옮기느냐 아니냐의 문제만 남았다"며 "어느 측이든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먼저 손을 벌리는가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경선 과정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기 때문에 신뢰회복까지는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근혜 총리설'의 현실적 가능성은?
최근 정치권에 가장 설왕설래가 오가는 이슈는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선물을 내놓을 수 있는가"이다. 이와 관련 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박 전 대표의 차기 총리직 내정설과 함께 친박 인사들의 내각 전면 배치론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여권 내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친이계 한 핵심관계자는 "박근혜 같은 위력 있는 인물이 내각에 들어온다면 국정운영에 있어 사사건건 부딪칠 가능성이 높다"면서 "또 박 전 대표가 총리가 된다면 총리 임명권도 달라고 해서 친박 쪽 인사들을 국무위원으로 몇 명 앉힐텐데 이 대통령이 이를 받아주기는 어려울 듯하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친박계 한 의원도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 지금처럼 위기정국에서 내각에 들어갈 경우 총알만 맞게 되고 책임론이 불거져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데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부정적으로 답했다.
반면 "개각을 단행할 경우 4~5명 정도의 친박 인사들을 내각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본인의 유불리에 관계없이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제안이 온다면 총리를 맡는 게 맞다"는 등의 찬성 입장을 가진 친박, 친이 인사들도 있다.
◆'박근혜 역할론'은 '흔들기'?…친朴에 줄 선물이 없다
근본적으로 친박계가 '박근혜 역할론'에 대해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밑바탕에는 '지난 대선,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를 흔들어 급한 불만 끄고 다시 친정체제로 가려는 것 아닌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친박계 김성조 의원이 박 전 대표의 역할론에 대해 "박 전 대표가 무슨 자리를 제안 받지도 않았는데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말들을 하는 것 자체가 계파를 만드는 발언이 아니냐"고 지적한 것도 지난 대선,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헤프닝으로 이용만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정치권에서도 친이계가 '박근혜 총리설'을 퍼뜨리고 청와대는 이를 부정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엇박자를 보이는 패턴이 지난 올해 초와 유사하다는 점을 들며 '박근혜 역할론'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또 정치권 일각에서는 "결국 박 전 대표가 법안 처리를 도와주도록 흔들고 난 뒤 위기를 모면하면 다시 친정체제로 돌아갈 계산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올 연말을 남은 임기 뿐 아니라 차기 정권까지 이어지는 중요 고비로 보고, 올 연말을 MB정책 드라이브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삼겠다는 공언을 몇 차례 한 바 있다.
이는 현 정부가 올 연말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넘길 경우, 경제위기 악화로 인한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 조기에 올 수도 있다는 위기 인식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가 조기 레임덕을 막기 위해서는 MB정책 드라이브의 본격 입법화 작업이 필요하고, 이는 친박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친박계에 줄 '선물'이 필요한데, 총리나 국무위원 등의 자리를 내 줄 경우 행정부 자체가 계파로 분열돼 MB정책 드라이브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현 정부의 딜레마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 "친이계의 이런 계산법을 친박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친이계와의 화해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닌가"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여당이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내부적인 갈등의 골로 인한 악재를 떠안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0년 만에 찾아온 보수 재집권인 만큼 꼭 지켜야 한다는 보수층의 압박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친이, 친박 양 측이 극적인 타협에 이를지 지켜볼 일이다.
/민철기자 [email protected] 박정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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