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차리고 처음부터도 그렇게 고전 한 편은 아니어서 이제는 조금 자리 잡았다고들 얘기해 주신다.
하기야 바(bar)에서 소면 나오고 라면 나오고 진 안주 나오는 데가 흔하지 않아 차별화된 것도 플러스 요인이겠지만 꾸준히..성실하게..진심으로 손님들을 긴~ 시간 동안 대하다 보면 어지간한 쌩 양아치들도 나중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진심은 통한다는 말이 내 영업에 교과서다.
그렇게 게으름 없이 길게 해 오다보니이 불경기에도 별탈없이 잘 버티고 있는 거 같다. 고생은 월급쟁이 때 얼추 반 은 한 거 같다.
그래도 사고치는 분 꼭 있다.
근래 매일 오다시피 하는 동네 이장 같은 분(?) 한 명 있다. 이름은 주태백! 며칠 전 이었다. 문 열자마자 콧잔등을 빨갛게 해 갖고는 딸랑 거리며 들어 오는 것이었다. 늘 새싹 마크가 중앙에 노랗게 새겨진 초록색 모자를 쓰고 다녀서 동네 이장 이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나이는 30대 초반 밖엔 안된 노총각 이었다.
그날도 모자가 삐딱한 걸 보니 맥주 한 잔만 더 부으면 새벽 4시 반이 될거 같았다. '오~ 태백씨! 이렇게 일찍 웬일이야? 한 잔 한거 같네?'(술이 거하게 돼서 돌연 친구 먹자길래 말 까기로 한게 이틀째다) 얼굴 뻘겋게 해 갖곤 전화통 붙들고 침 튀기느라 인사도 안 받길래 나도 내 일 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군데를 씨불씨불 섞어가며 통화하더니 드디어 우리 애들을 한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빵순 여사까지..
이른 시간이라 밥도 못 먹은 사람들을 주욱 앉혀놓고 맥주 한 잔씩 돌리더니 또 전화질 이었다. 그 쪽에선 태백이 취해서 전화질이니 아예 안 받아 주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받았다가는 끊어 버리고 전원 죽여 버리고 하니 태백이 약이 오를대로 올라 가지고는 갑자기 애꿎은 애들하고 이모(빵순여사)보고'왜 전화 안 받냐고! 씨발 년놈들아!!!' 욕을 하는게 아닌가? 저 시불놈이 미쳤나? 속으로 삭히고 내가 갔다.
"아니, 태백씨 왜 이래? 뭔 속 상한 일 있어? 애들한테 왜 그래?? 더구나 이모는 한참 누나구만!"
"야이 씨~ 너도 필요 없어! 저리 꺼져 꺼지라고!"
맥주잔을 들고 눈을 희번덕 거리길래 식구들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개새끼! 뭐 하나 건들기만 해봐! 아주 죽여 버릴테니까!!'
또 다시 몇 번의 전화질을 하더니 혼자 자빠지고 침 뱉고 바닥에 누웠다 앉았다를 한참 하더니조용히 나를 불렀다. 주방에 다 숨어서 꼼짝 않고 있던 애들이 가지 말라고 손짓 하는걸 주둥이 댓발 내밀고 갔다. 그래도 사장 갑바가 있지..
"서녕아~~ 미안 혀다이~~ 내가 오늘 속상한 일이 좀 있어 가지고 잉~~ 이해 혀라이."
혀가 꽈배기다. 내가 풀어서 통역한거다. '미친새끼! 지 속상한 걸 왜 나보고 이해하래?!!'
"근데 수빈이는 안 나왔냐?" 술 먹으러 나오는지 일하러 나오는지 모를 때 있다는 수빈이 소개 기억나실 것이다. 둘이서 죽이 맞아 주거니 받거니 할때 어째 사고 칠 거 같더만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미친 눔이 수빈이를 좋아한 모양인데 지난 밤에 수빈이한테 밤새 스토커 짓을 한 모양이었다. 수빈이도 첨엔 받아주다가 안되니까 전화기 죽여 놓고 잔거고.. 거기에 앙심을 먹고 대낮부터 술 푸고 이 작당을 연출한 모양인데 정작 수빈인 나오지 않았던 게다.
얘기 들어보니 수빈이가 노래방도 같이 가주고 밥도 한 번 같이 먹고 등등 좀 받아 줬나보다. 노총각 가슴에 불을 지펴 놓은 것이다. 태백이 입장에선 충분히 부푼 시나리오를 쓸 만도 했겠지만 요즘 애들 마음은 사실 나도 모르겠다. 순간순간 감정에 너무나 가볍고 솔직하게 대응하니까 어떨 땐 정말 버겁다.
태백이가 순진 한 것도 죄라면 죄다. 그렇다고 따라 다니면서 간섭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덕분에 우린 잠 잘자고 나와 씨발년 개발년 소리듣고 그날 문 닫을 때까지 분해서 부르르 떨다가 매상 5만4천원에 문 닫고 집에 갔다.
태백이는 다시 안온다는 말을 남기고 욕 몇차례 더하더니 꼬꾸라져 기어 나갔다.
이 날은 정말 재수 똥 밟은 날 이었다.
/박선영(피플475(http://wwww.people4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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