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아마 기억할거야.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안톤 슈낙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가장 잊혀지지 않는 귀절이 있지. <…초추의 양광이 죽은 새의 시체 위에 떨어질 때…> 라는 대목이야.
그 생경한 번역체에다가 '초추'니 '양광'이니 하는 어휘가 종종 시험에나오곤 해서 정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초가을의 엷은 햇살이 죽은 새의 시체 위에 떨어진다는 뜻을 새겨보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에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 풍경이라는걸알 수 있지.
가을...하필이면 죽은 새의 시체 위에 떨어지는 무심한 햇살...
삶의 무상함을 그보다 더 잘 표현해 줄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가을이 깊어지면 아름답고 풍요롭다는 느낌 뒤에 '쓸쓸하다'는 느낌이 별책부록처럼 슬며시 따라붙게 되었어.
그래...참 쓸쓸한 계절이지.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정말로 옆구리가 시릴 수밖에 없는 시절이 또 우리 앞에 다가와 있어.
사랑하는 당신이 옆에 있어서 이 가을, 난 더 이상 쓸쓸하지 않네.
그런데, 우리 서로 사랑하면서도 자꾸만 뭔가 확인하고 싶어지는 이유는뭘까? 당신은 나한테 불만이 없을까? 당신은 더 좋은 여자 만나고 싶지 않을까? 당신이 물은 것과 똑 같은 질문을 나 역시 당신한테 던지곤 하지.
당신은 내가 만족스러운가? 나보다 더 섹시하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원하는건 아닌가?
외모나 관능으로 어필하는 나이는 이미 졸업했으니까 더이상 그런 것묻지 말라고? 그래도 소용없어.
사랑하면 할수록 자꾸만 불안해지는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야.
그건 나이와 상관 없는 일이지.
남자들에게 왜소 컴플렉스나 변강쇠 컴플렉스가 있다면여자들에겐 명기 컴플렉스가 있어.
한번 같이 자면 남자들을 '죽여주는'여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누구나 들어봤을테니까.
나이 든 여자들이 '이쁜이 수술'을 하는건 남편이 나와의 잠자리가 재미없다고 느끼는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지.
아무리 정숙한 여자라 해도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와의 잠자리가 재미 없어서 다른 여자 생각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법이야.
나??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나한테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건 아닐까, 종종 불안해지지.
하지만 난 워낙 뻔뻔해서 항상 자신있게 말하곤 해.
난 너무 예뻐...난 너무 매력 있어...아 귀찮아 죽겠어. 좋다는 남자가 왜 이렇게 많은거야.
SO HOT!! 이건 완전히 내 얘기야.
하지만 그건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고 나도 눈이 있으니까 거울을 보면서 '저 늙은 여자가 누군고?' 하고깜짝 놀라고 당신이 피곤하다고 그냥 자버리면 금세 풀이 죽어 시무룩해지지.
남자의 컴플렉스나 여자의 컴플렉스나 본질적으로는 같은 맥락이야.
나...당신에게는 유일하고도 최선인 파트너이고 싶은 것, 그것이겠지.
변강쇠나 옹녀가 우리 앞에 나타나도 외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유일한 사랑...그대 그리고 나.
그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나는 가능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
내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는 단순히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몸짓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사랑하면 할수록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은 커지는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열망은 언제나 미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지.
서로의 존재를 더 가까이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면우리는 서로의 몸에 대해서 항상 갈증을 느끼게 되어 있어.
당신이 못생겼든 잘생겼든 섹스를 잘하든 못하든 그건 더이상 중요하지 않지.
내가 예쁘든 예쁘지 않든 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아.
당신이 말했지.
우리 흙으로 돌아가서 한 쌍의 사이 좋은 인형처럼 함께 붙어있자고.
신라인들이 만든 토우처럼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생각했어.
인간으로 태어나 몸을 갖고 있는 우리는 불멸이 아니어서 참 슬프구나.
그래서 언젠가 당신에게 말했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 순간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당신이 그랬지.
불멸이 아니어서 우린 슬프기도 하지만 불멸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
그래...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아.
우리 서로 사랑할 시간도 부족한데 당신이 다른 여자를 원하지 않는지 내가 재미 없는 건 아닌지 그런 쓸데 없는 걱정을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사랑한다면 컴플렉스 따위 저 멀리 던져버리고오직 사랑하는데만 전념해야 하겠지.
그래도 나 오늘 또 묻고 싶어.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정말 내가 많이 어여쁜지...
내가 또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더라도 당신은 한결같이 말해줘야 돼.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고...
당신은 이 세상 어떤 여자보다도 더 어여쁘다고...
나도 똑같이 말해줄거야.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멋진 남자라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콘텐츠 제공 = 40대 청년문화를 위하여 '피플 475'(http://www.people4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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