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연구소 직원들이 분주히 일을 하고 있는 여의도 사무실. 책상 사이 좁은 통로를 따라 안철수 의장을 만나러 갔다. 사무실 맨 끝, 창가의 햇살을 받으며 메모를 하던 안철수 의장은 기자를 보자 웃음으로 맞이했다.
본래 사무실 맨 끝 자리는 안철수 의장이 CEO였을 당시 방이 있던 자리. 얼마전 안철수 의장은 그 방의 벽을 허물고, 둥근 테이블을 들였다. 더 이상 CEO가 아닐 뿐더러, 굳이 직원들과 분리된 '자기만의 방'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현재 대부분의 시간을 카이스트에서 강의하며 보내는 그는 자신이 없는 동안 직원들이 그 공간을 회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CEO,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박사, 교수 등 다양한 직함중 어떤 직함으로 부를 지 순간 고민하던 기자는 직접 물었다.

"안의장도 좋고, 안박사도 좋고, 안교수 모두 괜찮아요. 그냥 부르시고 싶은 호칭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회사 직원들도 저마다 부르고 싶은 호칭으로 불러요."
그가 건넨 명함에는 카이스트 석좌교수라고 적혀 있다. 의학박사, 공학석사, 경영학석사라는 문구도 나란히 쓰여있다.
◆직업 선택 제1기준은 바로 '재미'
국내에서 안철수 의장 만큼 여러 직함을 동시에 가진 인물은 그리 흔치 않다. 의사, 바이러스 전문가, 벤처1세대 CEO, 교수, 최고학습책임자(CLO)까지. 더욱이 전혀 다른 분야를 넘나들면서 뛰어든 분야마다 인정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전 철저하게 미래 계획을 세우면서 진행하는 편이 아니에요. 매순간 하던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전혀 새로운 길로 오게 됐습니다."
안 의장은 학창 시절 의사가 천직이라고 믿으며 공부에 몰두했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진료에 매진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그는 자신 역시 아버지처럼 백발을 휘날리며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의대 공부에 전념했고,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진로를 바꿀 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의 컴퓨터가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컴퓨터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시절, 그는 백신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은 그가 의학도로서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가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대 박사, 20대 교수로 의사의 길을 충실히 가고 있었지만, 나 하나 빠진다고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백신 엔진을 개발하는 일은 달랐어요. 당시에는 내가 아니면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열심히 하는 만큼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안 의장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사람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그 일을 통해 나오는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주로 명예, 돈 같은 외형적인 것들로 판단하기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는 것.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의식하기 때문에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전 딱 세가지만 봤어요. 이 일이 재미있나. 보람되나. 그리고 잘할 수 있나를 생각했지요. 사람들이 20대로 돌아가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겠냐고 종종 묻는데 여전히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잘할 수 있는 일인지 판단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막연히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르거든요.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백신을 개발하는 일을 직접 해보고 나서야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알게 됐어요."
◆"CEO 하면서 매순간 힘들었다"
한국에서 안철수라는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는 없다. 존경받는 CEO를 꼽으면 그는 항상 0순위다. 그만큼 어깨도 무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CEO를 하면서 매순간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제 인생이 순탄하게 보일 때도 있나봐요.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고 4년 동안은 매순간 월급 걱정만 했습니다. 직원들 월급을 주고 나니 통장 잔고가 없었어요. 그때 소원은 직원들 석달치 월급이 통장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지요(웃음)."
안철수 의장은 CEO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재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CEO 역할로서의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직원이 10명일 때의 CEO와 500명일 때의 CEO 역할은 분명 달라야 합니다. 직원이 10명이면 CEO가 직원 각자 업무를 속속들이 알고 관리하지만, 500명일 때는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돼요.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CEO는 조직의 규모에 맞게 자신의 역할을 끊임없이 바꿔나가야 합니다."
CEO를 하는 동안 자신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면서, 지속적으로 역할을 바꾸는 작업이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은 안 의장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CEO를 하지 않고, 의사를 했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직원들을 먹여 살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마음이 편하고, 고민도 덜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10년 후 내가 무슨 일을 할 지 아직 몰라"
"지금 교수를 하고 있지만, 10년 뒤 제가 무슨 일을 할 지는 아직 모릅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더 큰 일이 눈 앞에 보일 것이라 믿어요. 의사, 벤처 CEO, 교수 어느 하나 계획해서 된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다음 직함은 작가가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안 의장이 지금까지 발간한 책은 총 9권. 그중 대부분의 책이 스테디셀러로 인기가 높아 전문 작가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연애의 기억은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와 도서관에서 연애를 했고,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아내, 딸과 함께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인지, 하나뿐인 딸 역시 올해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딸이 벤처사업가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안 의장은 "그 일에 재미를 느끼고,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라면 좋다"고 답했다.
"단순히 전망을 판단하고 직업을 선택하면 불행합니다. 그 직업을 통해 재미를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재미를 느끼면, 잘하게 되고 자연스레 경쟁력이 생깁니다. 그 일을 통해 나의 행복지수가 올라간다면 금상첨화 아닐까요?"
/서소정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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