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IT) 시장을 대표하는 인물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를 능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빌 게이츠는 지난 6월말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지닌 상징적 존재감은 여전하다.)

잡스와 게이츠는 매년 초 맥월드와 CES를 통해 IT시장의 한 해 비전을 제시한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둘의 프리젠테이션 방식이 비교 대상으로 거론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의 현란한 프리젠테이션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
가르 레이놀즈가 지은 '프리젠테이션 젠'은 그 원인을 '젠(禪) 미학'에서 찾는다. 여기서 잠깐 그 부분을 읽어보자.
"잡스의 뛰어난 재능은 그의 슬라이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약간 과장일지 몰라도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에서는 젠 미학이 느껴진다. 그의 슬라이드에는 절제, 단순함, 강력하면서도 미묘한 여백 활용 등의 특징이 나타난다."
"빌 게이츠는 잡스와 상반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 게이츠의 슬라이드가 지닌 문제점은 아주 명백하다. 우선 한 슬라이드에 너무 많은 내용을 올려 놓았다. 글머리 기호가 넘쳐나며, 세련되지 못한 이미지, 지나치게 다양한 색상, 과다한 그라데이션, 시각적 우선순위의 혼란, 전반적으로 난삽한 화면 구성 등이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119쪽)
저자가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프리젠테이션을 비교하면서 지적한 내용, 특히 빌 게이츠 프리젠테이션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내용들은 사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범하는 실수들이다.
내뱉은 말을 문자 그대로 반복하는 슬라이드들로 가득찬 발표. 현란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사용했지만, 보고 있는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드는 지겹기 그지 없는 발표. 발표자의 열정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지저분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들.
이런 것들은 그 동안 수 많은 컨퍼런스들에서 우리가 숱하게 목격했던 풍경들이다. 없는 시간 쪼개어서 그런 발표를 들으면서 "그냥 발표 자료 파일이나 구해서 볼 걸" 이란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생각을 바꾸는 프리젠테이션 디자인'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서양 저자가 동양적 '선' 사상을 프리젠테이션에 접목한 독특한 시각 못지 않게, 우리가 무심코 넘어갔던 문제들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우겨 넣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단순함과 절제의 미학을 배우라는 저자의 주장은 얼핏 별 얘기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정형화되고 도식화된 일반적인 파워포인트 기반의 프리젠테이션의 한계를 절감한 적 있는 사람들이라면, 저자의 이런 주장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그 동안의 프리젠테이션이 왜 실패했는지를 꼼꼼하게 점검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런 다음 준비 → 디자인 → 발표 순서로 프리젠테이션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각 단계마다 여러 가지 원칙과 개념, 영감, 실제 사례를 다양하게 엮어 제시한 점 역시 눈에 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프리젠테이션 잘하는 비법을 바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파워포인트 자료 잘 만드는 법 같은 류의 책은 아니란 말이다. 약에 비유하자면, 금방 약효가 있는 양약이 아니라, 기초 체력을 든든하게 해주는 한약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시한 원칙을 구현한 효과적인 슬라이드 예제들을 다수 담고 있어 읽는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역시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 역자의 설명대로 "(어쩌면) 이것이 기존 대다수의 프리젠테이션 가이드북이나 파워포인트 참고서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점"인지도 모르겠다.
(가르 레이놀즈 지음/ 정순욱 옮김, 에이콘 2만원)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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