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보화를 위해 매년 3,4조원의 막대한 투자를 끊임없이 해 온 정부가 이제는 새로운 실험에 나서고 있다.
정보기술아키텍처(ITA)를 도입해 사업중복, 시스템간 연계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효과적으로 정보자원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ITA는 쉽게 풀어 쓰면 정보화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각 기관이 이미 구축된 시스템을 설계도로 도출해 낸 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담아 또 다른 설계도를 만들고, 이를 지도 삼아 현재와 미래를 비교해 가면서 정보화 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이 같은 취지로 시작된 정부의 ITA도입 실험은 지난 7월 1일 ITA법의 시행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정통부 행자부 등 4개 부처가 시범적으로 ITA를 도입한 데 이어 내년에는 12개 부처에서 모두 16개의 관련 과제가 추진될 예정이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ITA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ITA 도입 행렬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출연기관 등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전체 700여곳 가운데 적어도 270~330여곳은 ITA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정보통신부와 한국전산원의 최근 수요 조사 결과다.
이 같은 추세라면 내년에는 공공 시장에 ITA 도입 발주가 그야말로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노력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처음부터 정석대로 잘 만들어진 설계도를 만들고 체계적으로 정보화 사업을 벌였다면, 국가 정보화의 고도화 단계에 접어 드는 지금에 와서 설계도를 그리고 또 그에 맞춰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수고를 새삼스럽게 시작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청사진을 그리고 지도를 만드는 작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에 대해 노력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이런 점에서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앞으로의 관건은 이 같은 정부의 ITA 도입 게획이 요식행위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컨설팅, IT서비스 업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있고 있어, 정책 당국은 각별히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크게 두 가지 우려다.
우선 ITA 프로젝트는 각 기관의 정보화 청사진을 도출하는 것이어서 기존 사업단위의 정보전략계획(ISP) 프로젝트 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 따라서 각 기관은 이에 대한 적정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데, 문제는 각 기관이 이를 위한 적정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벌써부터 감지된다는 것이다.
컨설팅 업체 사장의 얘기를 들어 보자.
그는 "기관별로 적정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것으로 감지되고 있어 수익성이 열악할 것으로 벌써부터 업계에서는 우려하고 있다"며 "만일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서비스 부실화 초래는 물론이고 해당 사업 기피로 수요와 공급 간의 괴리 현상을 빚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정보화 청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발주 기관 스스로가 ITA의 중요성과 방법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맞춰 스스로를 준비해야 하는 데, 정작 발주기관 스스로 이 같은 채비가 매우 덜 돼 있다는 진단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인력부족이다. 한 컨설팅 업체 사장의 얘기를 들어 보자.
그는 "각 기관에 ITA 프로젝트를 추진할 만한 전문 인력이 거의 없다"며 "ITA 도입은 1회성으로 끝나면 의미가 없어 전문인력이 붙어 꾸준히 새롭게 바뀌는 환경에 맞춰 청사진을 끊임없이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단 ITA법 시행으로 당장 내년부터 많은 기관들이 강제적으로 ITA를 도입해야 하는 데, 기관 스스로가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도입한다면 부작용이 적잖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체적으로 어떤 분야든 후발국일수록 설계 단계에 투자하는 데 인색하다고 한다.
국가 정보화에 선도적으로 나선 미국만 봐도 우리처럼 ITA 항목을 따로 떼어서 투자하지는 않는다. 대신 일상적으로 전체 정보화 투자의 일정 부분을 ITA에 투자하고 있다.
늦은감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설계 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만큼, 이제는 제대로 투자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설계을 잘해야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관범기자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