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막은 美 표심⋯K전력기기 37조 수주, '착공 시차' 변수

데이터센터 막은 美 표심⋯K전력기기 37조 수주, '착공 시차' 변수

미국 10개 주에서 관련 주민투표 41건 실시
오하이오 최소 14개 지역서 금지·제한안 통과
노후 전력망 수요가 버팀목이지만 개별 발주 지연 가능성

[아이뉴스24 홍성효 기자] 미국 중간선거와 함께 치러진 주민투표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제한하는 안건이 잇따라 통과하면서 국내 전력기기업계도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노후 송배전망 교체 수요가 수주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지역 반대로 데이터센터 착공이 늦어지면 전력기기 발주와 납품 일정도 밀릴 수 있어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커뮤니티센터 투표소에서 선거 관리 요원이 '나는 투표했다(I Voted)' 스티커를 떼어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미국 경제매체 포춘과 선거정보 사이트 밸러피디아 등에 따르면 지난 3일 미국 10개 주에서 데이터센터 관련 주민투표 41건이 진행됐다. 이 중 28건은 건설 금지나 일시 중단, 추가 규제에 관한 안건이었다.

21개 안건이 몰린 오하이오에서는 최소 14개 지역이 데이터센터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방안을 택했다.

트렌턴에서는 전력 사용량이 25MW(메가와트)를 넘는 데이터센터를 금지하는 시 헌장 개정안이 약 80%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트렌턴에서는 250MW 규모 데이터센터 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규제 적용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버리에서도 25MW 초과 데이터센터를 금지하는 안이 가결됐다. 이 지역에서는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약 20억달러 규모의 사업을 추진해 왔다.

주민들은 전기요금과 용수 사용, 소음, 비상발전기 배출물질 등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갤럽이 지난 5월 공개한 조사에서는 미국인의 약 70%가 자신이 사는 지역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데 반대한다고 답했다.

AI 데이터센터가 끌어올린 수주…3사 수주잔고 37조원 넘어

국내 업체들이 미국 데이터센터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전력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미국 에너지부는 2023년 전체 전력 사용량의 4.4%였던 데이터센터 비중이 2028년 최대 12%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LS일렉트릭 UL인증 데이터센터향 배전 솔루션. [사진=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의 3분기 말 중공업 부문 수주잔고는 역대 최대인 18조8988억원이다. 미국 물량 비중은 1년 전 46%에서 60%로 높아졌다.

HD현대일렉트릭의 수주잔고는 88억4300만달러다. 지난 7월에는 글로벌 빅테크와 최대 1조1212억원 규모의 배전·전력기기 장기 공급 기본계약을 맺었다.

LS일렉트릭의 수주잔고는 7조430억원이며 이 가운데 배전반이 2조2472억원이다. 세 회사의 수주잔고를 합하면 약 37조원대다.

다만 전체 수주가 데이터센터 물량은 아니다. HD현대일렉트릭의 전력기기 신규 수주에서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6.3%다. 회사는 내년 이 비중이 16%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데이터센터 밖에도 수요…버팀목은 '전력망 교체·증설'

전력기기업계는 미국 수요의 기반이 데이터센터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노후 송배전망 교체 수요가 먼저 수주를 끌어올렸고 데이터센터 투자가 추가 성장 동력으로 더해졌다는 것이다.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효성중공업 초고압변압기. [사진=효성중공업]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 사용 중인 배전용 변압기 6000만~8000만대 가운데 약 55%는 설치된 지 33년 이상 됐다. 2050년 필요한 배전용 변압기 용량은 2021년보다 최대 260%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민간 전력회사 51곳이 2030년까지 계획한 설비투자도 최소 1조4000억달러다. 전년 조사보다 21% 이상 늘어난 규모다. 데이터센터 외에도 노후 설비 교체와 기상이변 대응, 제조업 투자와 전기화가 수요를 이끌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의 10MVA 초과 대형 변압기 대미 수출액은 1억1544만달러로 2015년 이후 월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1~9월 누적 수출액도 전년 동기보다 44.2% 증가했다.

증설 나선 업계…관건은 데이터센터 착공 일정

국내 업체들은 아직 고객사로부터 발주 지연 통보를 받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북미 수요에 맞춰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어 프로젝트 일정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AI 데이터센터 내부 이미지. [사진=삼성SDI]

HD현대일렉트릭은 이달 울산 전력변압기 신공장 양산을 시작하고 청주 배전캠퍼스에 1980억원을 추가 투자한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멤피스 공장에 1억5700만달러를 투입해 2028년까지 생산능력을 50% 이상 늘린다.

LS일렉트릭도 2500억원을 들여 미국 유타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증설 후 배전반 생산능력은 연간 5000억원 수준으로 확대된다.

문제는 데이터센터용 물량이 공사 일정에 맞춰 발주된다는 점이다. HD현대일렉트릭이 빅테크와 체결한 기본계약도 데이터센터 구축 일정에 따라 개별 주문이 이뤄진다.

주민투표 통과가 기존 사업의 즉각적인 취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업자가 다른 지역으로 입지를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착공이 늦어지면 변압기와 배전반의 발주·납품도 함께 밀릴 수 있다.

결국 미국 데이터센터 반대 움직임이 수요를 없애기보다 프로젝트의 위치와 착공 시기를 얼마나 바꾸느냐가 국내 전력기기업계의 실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홍성효 기자(shhong0820@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