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란 기자]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이 승진 100일을 앞두고 미국 해군 함정 건조 계약을 따냈다. 2024년 12월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지 약 2년 만에 거둔 첫 군함 수주다.

김 수석부회장이 직접 공들여 온 미국 함정 시장 진출이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계약에 포함된 추가 3척은 확정 물량이 아닌 옵션이다. 첫 함정을 일정과 예산에 맞춰 건조해 현지 생산 역량을 입증하는 것이 후속 수주를 위한 관건이 될 전망이다.
상선 짓던 필리조선소, 美 해군 함정 건조 나선다
한화디펜스USA는 미 해군의 선박건조관리업체(VCM)인 토트서비스와 중형상륙함(LSM) 1척 건조 계약을 지난달 29일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약 2억6900만달러(약 3575억원)다.
미 해군의 원계약자는 토트서비스다. 한화디펜스USA는 토트서비스가 진행한 경쟁 절차를 거쳐 건조사로 선정됐으며 실제 건조는 한화필리조선소가 맡는다.

계약에는 같은 함정 3척을 추가 건조할 수 있는 옵션도 포함됐다. 옵션 행사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으며 모두 실행될 경우 필리조선소의 건조 물량은 최대 4척으로 늘어난다.
중형상륙함은 해병대 병력과 차량, 보급품을 해안과 도서 지역으로 수송하는 원정작전용 함정이다. 길이는 약 100m이며 네덜란드 다멘의 LST-100을 기반으로 한 상용 설계가 적용된다.
미 해군과 해병대는 중형상륙함을 총 35척 도입할 계획이다. 여러 조선소가 동시에 함정을 건조하도록 해 전력화 속도를 높이고 미국 내 조선산업 기반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계약은 그동안 상선과 국가안보다목적선박 등을 주로 건조해 온 필리조선소가 미 해군 함정 시장에 진입하는 첫 사례다.
2027년 착공·2030년 인도…납기·품질이 후속 수주 좌우
필리조선소는 2027년 4분기 중형상륙함 건조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 해군은 LSM 사업의 첫 함정을 2030년까지 인도받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후속 물량을 확보하려면 건조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필리조선소의 현재 연간 생산능력은 2척 미만이다. 한화는 지난해 8월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를 투자해 생산능력을 최대 20척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도크 2개와 안벽 3개를 추가하고 약 12만평 규모의 블록 생산기지 신설도 검토하고 있다. 한화오션이 국내 조선소에서 활용해 온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 야드, 생산·안전 관리 시스템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숙련 인력 확보는 과제다. 필리조선소는 조선소 안에 교육시설인 '트레이닝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견습생을 양성하고 있지만 미국 조선업 전반의 숙련공 부족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꼽힌다.
미 해군 사업을 확대하려면 보안 역량도 갖춰야 한다. 특히 기밀정보를 다루는 전투함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려면 시설보안인증(FCL) 등 관련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번 계약은 토트서비스가 미 해군에 대한 원계약 의무를 지고 한화디펜스USA가 건조사로 참여하는 구조다. 한화는 우선 보안 요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형상륙함을 성공적으로 건조하며 실적을 쌓겠다는 구상이다.
추가 3척의 옵션과 향후 후속 물량 확보 여부는 첫 함정의 성적표에 달렸다. 여러 미국 조선소가 물량을 나눠 수주하는 구조인 만큼 납기와 품질, 원가 관리 능력이 다음 계약을 좌우할 전망이다.
미국 내 두번째 거점…오스탈USA 인수 추진
한화그룹은 미국 내 두 번째 조선 거점 확보도 추진하고 있다. 한화는 현재 호주 조선·방산업체 오스탈 지분 약 9.9%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율을 19.9%까지 높이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와 별도로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8월 오스탈의 미국 사업부인 오스탈USA를 기업가치 10억5000만~12억달러에 인수하겠다는 비구속적 제안을 냈다. 오스탈은 지난달 한화의 실사 기간을 연장하고 구체적인 거래 조건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투자사 와일드캣 인프라스트럭처도 오스탈USA의 기업가치를 12억5000만~13억5000만달러로 평가한 비구속적 제안을 내놓아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오스탈USA는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에서 미 해군·해안경비대 함정을 건조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는 함정 유지·보수 사업을 수행한다. 핵추진잠수함에 들어가는 모듈 생산에도 참여하고 있다.
인수가 성사되면 한화는 상선과 지원함을 중심으로 하는 필리조선소와 수상함·잠수함 모듈 생산 역량을 보유한 오스탈USA를 양대 미국 생산 거점으로 확보할 수 있다.

미국 내 조선소는 미 해군 함정 시장 진입과 직결된다. 미국은 자국 조선소에서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만큼 현지 생산시설과 인력, 공급망을 갖췄는지가 수주 경쟁력을 좌우한다.
현재 국내 조선사 가운데 미국에서 직접 조선소를 가동하는 곳은 한화가 유일하다. 다만 HD현대도 지난달 미국 건설기업 키윗과 합작법인 'HD키윗조선' 설립 계획을 발표하고 2029년 가동을 목표로 신규 조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김 수석부회장 승진 100일을 앞두고 따낸 이번 계약은 미국 함정 시장 진출의 출발점이다. 첫 함정을 통해 현지 건조 역량을 입증하고 옵션 물량과 후속 사업까지 연결할 수 있을지가 한화의 미국 조선·방산 전략을 평가할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동관 수석부회장 100일]
①방산·조선·에너지 재정렬…성장과 안전 시험대
②美 함정 첫 수주…필리조선소 시험대
③사업은 나눴지만 지분은 연결…한화에너지의 향방
④수주 다음은 수익…김동관의 다음 승부는 '투자의 결실'
/최란 기자(ra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