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 안 되는 치매, 궁극의 치료제 나올까 [지금은 과학]

극복 안 되는 치매, 궁극의 치료제 나올까 [지금은 과학]

IBS 연구팀, 알츠하이머 악순환 가속하는 핵심 인자 찾아내

알츠하이머병에서는 흥분성 신경세포의 ERBB4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면서 신경회로의 과흥분과 시냅스 불균형, 교세포의 과도한 반응, 아밀로이드 축적이 연쇄적으로 촉발되어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떨어진다. [사진=IBS]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치매로 일컫는 알츠하이머는 아직 치료제가 없다. 지금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치료제 가능성이 여럿 열리고 있는데 제한적이고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국내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의 연쇄 병리를 촉발하는 핵심 조절 인자를 찾아냈다. 알츠하이머병의 악순환을 가속하는 핵심 인자를 알아낸 것이다. 하나의 표적을 조절해 다양한 병리(질병에 따른 변화)를 한꺼번에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가능성을 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배경훈)는 기초과학연구원(원장 장석복, IBS) 혈관 연구단 정원석 부연구단장(KAIST 생명과학과 부교수)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에서 신경회로와 시냅스 균형을 무너뜨리고 질병의 진행을 연쇄적으로 악화시키는 핵심 조절 인자를 규명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은 기억력과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대표적 퇴행성 뇌질환이다.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비정상적으로 쌓이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검증됐다.

질병이 진행되면서 신경회로의 과도한 흥분과 시냅스 소실, 교세포의 염증 반응 등 다른 비정상적 변화들도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치료제가 개발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연구팀은 질병 초기부터 나타나는 신경회로와 시냅스의 불균형 현상에 주목했다. 알츠하이머병 모델 생쥐의 해마를 분석한 결과 뇌 회로를 자극하는 흥분성 신경세포는 과도하게 활성화되고 이를 억누르는 억제성 신경세포의 활성은 크게 떨어졌다.

비(非)신경세포인 별아교세포·미세아교세포가 흥분성 시냅스를 과도하게 제거하는 반면 억제성 시냅스는 적게 제거하면서 신경회로의 불균형을 더욱 부추겼다.

연구팀은 이러한 시냅스 소실 불균형의 원인이 결국 신경세포의 비정상적 활성 상태에 있음을 알아냈다. 인위적으로 신경세포의 활성을 높이면 교세포가 시냅스를 더 많이 제거하고, 활성을 낮추면 덜 제거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분자 수준의 원인을 추적한 연구팀은 정상 뇌의 억제성 신경세포에 존재하는 ERBB4(세포막에서 외부 신호를 감지해 세포의 성장과 분화, 신경세포의 기능 등을 조절하는 수용체 단백질) 수용체가 특정 흥분성 신경세포 집단에서 현저하게 증가해 있음을 찾아냈다.

연구팀은 이 신경세포를 ‘초기 반응성 흥분성 신경세포(Early Responsive Excitatory Neuron, EREN)’로 명명하고 ERBB4를 회로 이상을 일으키는 핵심 인자로 특정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 기술로 알츠하이머병 모델 생쥐의 흥분성 신경세포에서만 ‘ERBB4’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과도했던 흥분성 신경세포의 활성은 낮아지고 떨어졌던 일부 억제성 신경세포의 활성이 회복됐다.

교세포의 비정상적 시냅스 제거와 염증 반응 역시 완화됐다. 아밀로이드 플라크 형성 면적과 수량이 50% 이상 감소했다. 기억력과 공간인지 능력도 크게 개선됐다.

반대로 정상 생쥐의 흥분성 신경세포에 ERBB4를 발현시키자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신경회로의 과흥분과 시냅스 불균형, 교세포의 염증 반응 등 알츠하이머병과 동일한 병리 변화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ERBB4가 증가할 때 세포의 성장과 대사 등을 조절하는 ‘엠토르(mTOR)’ 신호전달 체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병리가 주변으로 확산한다는 작동원리도 입증했다. 실제 446명의 뇌 조직 분석에서도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흥분성 신경세포 내 ERBB4 발현이 유의미하게 증가해 있었다. 발현량이 클수록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축적 정도가 증가하고 인지기능 저하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ERBB4 변화가 단순히 알츠하이머병에 동반되는 현상이 아니라 여러 병리의 연쇄적 진행을 촉진하는 핵심 조절 인자임을 확인한 것이다.

정원석 IBS 부연구단장이 과기정통부 브리핑실에서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종오 기자]

정원석 IBS 부연구단장은 “이번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의 증폭 과정을 다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단서”라며 “질병 악순환의 핵심 고리를 표적해 복잡・다양한 병리를 동시에 완화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 개척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알츠하이머에 대한 치료제가 없는데 앞으로 전임상과 독성 실험 이후 임상에 들어가 치매에 대한 궁극적 치료제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김대수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연구팀이 아교세포가 실제로 무엇을 먹는지 추적해 보니 흥분성 시냅스는 더 많이 먹고 억제성 시냅스는 덜 먹었다는 것”이라며 “무차별 폭식이 아니라 편식이었다”고 설명했다.

ERBB4가 병리를 일으키는 통로가 mTOR였다는 점도 흥미롭다고 전했다. 기억을 담당하는 흥분성 뉴런에서만 ERBB4를 정밀하게 억제할 수 있다면 치매를 이른 시기에 막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다만 바로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유보적”이라며 “결론적으로 이번 연구의 가치는 알츠하이머병의 초기에 작용하는 신경세포 군과 이들의 표적을 발견했다는 데 있는데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세포와 유전자 범인을 찾았으니 이제 이들에게 수갑을 채우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고재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과 교수는 “한국 뇌과학이 단순 현상 관찰을 넘어 시냅스와 분자 회로 특이성에 기반한 정밀 신경과학 분야를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연구결과”라며 “이번 성과는 기존 아밀로이드 표적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ERBB4-mTOR 경로를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치매 신약 개발 정책 수립에 있어 핵심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IBS 혈관 연구단 이세영 선임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결과(논문명:Aberrant Excitatory Neuronal ERBB4 Promotes Alzheimer’s Disease Pathology)는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27일 자에 실렸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