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권서아 기자] "예전에는 메모리 공급이 1%만 부족해도 가격이 크게 출렁였는데, 지금은 고객사 주문이 생산능력을 한두 배 웃도는 수준이다."
최근 한 반도체공학과 교수가 건넨 말이다. 이 교수의 말처럼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열풍에 따라 현재의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은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중국 CXMT 등 세계 4대 메모리 업체들이 공장 건설 시기를 앞당기며 생산능력 확대 경쟁에 나서고 있다.

최근 AI 데이터센터 확충 열풍에 따라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주요 빅테크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은 착공부터 양산까지 통상 2~3년이 걸리는 만큼 지금 증설에 나서야 2028~2030년 AI 메모리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총 100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증설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용인 국가산업단지 첫 번째 팹(생산공장) 가동 목표를 기존 2031년에서 2029년으로 1~2년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짓고 있는 평택캠퍼스의 P5는 2028년 가동이 거론된다.

SK하이닉스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4기 팹 완공 목표를 기존보다 12년 앞당긴 2033년으로 조정했다. 최근 나스닥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으로 조달한 40조원도 용인 클러스터와 청주 첨단 패키징 공장(P&T7), 극자외선(EUV) 장비 확보 등에 우선 투입할 예정이다.
정부도 총 800조원이 투입되는 서남권(호남)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다. 전력·용수 공급과 인허가 절차를 단축해 2029년 첫 HBM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AI 메모리 주도권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은 2035년까지 자국에 2500억달러(약 373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 미국 정부의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기반으로 뉴욕·아이다호·버지니아 등의 팹을 확충할 계획이다. 일본 히로시마 공장에는 1조5000억엔(약 14조원)을 투자해 HBM을 생산한다.
중국도 메모리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6년 설립된 CXMT는 허페이를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해온 데 이어 상하이 신규 팹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CXMT는 지난 15일 상하이증권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공모가를 주당 8.66위안(약 1900원)으로 확정했다. 최대 666억위안(약 14조6000억원)을 조달할 수 있으며, 조달 자금은 D램 생산능력 확대와 연구개발(R&D)에 투입할 계획이다.
CXMT는 중국 정부의 지원과 공격적인 증설,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본부장은 "CXMT는 2020년 1% 수준이던 D램 점유율을 최근 7~8%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능력과 기술 투자를 지속하지 않으면 중국의 추격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포항공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지금은 수요가 워낙 커 먼저 생산해 공급하는 기업이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며 "AI 메모리 시장에서는 생산능력 확보가 곧 경쟁력인 만큼 글로벌 업체들이 증설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을 짓더라도 반도체 장비 공급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공급 부족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수급이 안정된 이후에는 미세공정과 차세대 메모리 중심의 기술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