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윤 기자]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가 마무리되면서 새로운 교육정책의 방향과 공교육 혁신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국제 바칼로레아(IB·International Baccalaureate)가 학교 교육의 변화를 이끄는 실천 모델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식을 전달하고 정답을 찾는 기존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교육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IB가 공교육 혁신의 주요 대안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는 모습이다.
2026년 7월 현재 전국 공립학교 가운데 IB 후보학교와 공식 인증을 받은 IB 월드스쿨은 모두 269개교다. 2024년 9월 95개교와 비교하면 불과 1년 9개월 만에 약 2.8배로 늘어난 규모다. 여기에 IB 도입을 검토하고 준비하는 관심학교도 423개교에 달해 국내 공교육 현장에서 IB 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앞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IB 교육과정을 도입하려는 학교는 일반적으로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는 관심학교에서 출발해 교육과정과 교원 역량, 학교 운영 체제를 준비하는 후보학교 단계를 거친 뒤 공식 인증을 받은 IB 월드스쿨로 나아간다. 2024년 9월부터 2026년 7월까지 공립 IB 월드스쿨은 34개교에서 126개교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후보학교도 61개교에서 143개교로 늘었다. 단순히 IB에 관심을 보이는 학교가 증가한 것을 넘어 실제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공식 인증까지 받는 학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에서 IB가 국내 공교육 현장에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별로는 대구가 월드스쿨 41개교와 후보학교 27개교 등 모두 68개교로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많은 IB 도입 학교를 보유하고 있다. 경기도 역시 월드스쿨 34개교와 후보학교 30개교 등 64개교가 IB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인증을 준비하며 빠른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교육 행정 단위인 경기도에서 IB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전국적인 확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공교육에서 IB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9년이다. 대구광역시교육청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IB 도입을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한 이후 경기와 서울 등 다른 시·도교육청의 참여가 이어졌다. 현재 12개 시·도교육청이 IB와 공식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교원 연수와 교육과정 재설계, 학교 인증 준비 등을 지원하면서 개별 학교의 실험적 시도가 지역 단위의 교육정책으로 확장되고 있다.
IB의 확산을 이끈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도 교육청의 정책적 지원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학교 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부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교원 전문성 강화와 학교별 교육과정 설계, 평가 체제 개선, 인증 절차에 대한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각 시·도교육청이 교원 연수와 전문적 학습공동체 운영, 학교 간 네트워크 구축 등을 지원하면서 IB는 특정 학교나 교사의 개별적인 교육 실험을 넘어 지역 공교육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급별로는 초·중등 과정의 확산이 두드러진다. 2026년 7월 기준 초등 과정인 PYP(Primary Years Programme)는 122개교, 중등 과정인 MYP(Middle Years Programme)는 94개교, 고등 과정인 DP(Diploma Programme)는 53개교에서 운영되고 있다. PYP는 개별 교과의 경계를 넘어 개념과 주제를 중심으로 학습하는 탐구 기반 교육과정이며 MYP는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자료를 분석하면서 교과 간 지식을 연결하는 학생 주도형 학습을 강조한다. 고교 단계의 DP는 비판적 사고와 연구, 논리적 글쓰기, 토론,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을 종합적으로 요구하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대학 준비 교육과정이다.
이와 함께 IB가 고등학생의 학업과 진로·직업교육을 연계하기 위해 도입한 CP(Career-related Programme)도 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천 송도에 위치한 채드윅 송도국제학교가 CP를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학업과 실습, 진로 탐색을 연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IB가 공교육 혁신 모델로 주목받는 이유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하나 더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의 수업과 평가 방식, 나아가 교사와 학생의 역할까지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기존의 수업이 교사가 지식을 설명하고 학생이 이를 습득하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IB에서는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자료를 탐색하며 자신의 생각을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교사 역시 정답을 전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학생의 질문과 탐구를 촉진하고 학습 과정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평가 방식에서도 변화가 요구된다. 단편적인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암기했는지를 확인하는 평가보다 학생이 무엇을 이해하고 배운 내용을 어떻게 적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어떤 근거와 논리로 표현하는지를 살피는 과정 중심 평가가 강조된다. 이 때문에 IB 도입 과정은 교사의 교육과정 설계 역량과 평가 전문성을 높이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IB 도입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교사들이 수업과 평가의 목적을 다시 논의하고 학교 교육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계기가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역 단위에서 초·중·고교를 연결하는 IB 교육체계도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고는 2025년 1월 경기지역 공립고등학교 가운데 처음으로 DP 월드스쿨 인증을 받았다. 인근 죽산중와 개산초까지 연계되면서 전국 최초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IB 교육 벨트가 구축됐다. 학생이 특정 학교급에서만 IB 교육을 경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안에서 성장하며 탐구와 토론, 논술, 자기주도적 학습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교육체계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이 같은 변화는 농어촌과 소규모 학교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수 확보와 교육과정 다양화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학교가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새로운 교육 수요를 창출하고 지역 학생들에게 도시 지역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IB가 수도권과 대도시 일부 학교에 집중되지 않고 농어촌과 중소도시까지 안정적으로 확산한다면 지역 간 교육격차를 줄이고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정책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IB의 공립학교 중심 확산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전체 IB 학교의 68.5%인 2,045개교가 공립학교이며 캐나다 역시 전체 IB 학교의 76.2%인 286개교가 공립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IB 공립학교 가운데 60% 이상이 저소득층 밀집 지역에 위치해 있어 IB가 일부 사립학교나 경제적 여건이 좋은 학생만을 위한 교육과정이 아니라 공교육의 질과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높이는 모델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IB가 지속 가능한 공교육 혁신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가정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교육 기회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교육 안에서 탐구와 토론, 논술 중심의 교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IB 교육은 이제 초·중등 단계의 확산을 넘어 고교 교육과 대학입시와의 연계를 고민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현재 PYP 운영 학교가 122개교인 데 비해 DP 운영 학교는 53개교에 머물고 있다. 초·중등 단계에서 IB 교육을 경험하는 학생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학습 경험을 고등학교까지 어떻게 안정적으로 연결할 것인지가 향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고교 교육과정은 대학입시와 분리해 논의하기 어렵다. 학생과 학부모가 IB의 교육적 가치에 공감하더라도 국내 대학 진학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면 고교 단계의 확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IB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에게 별도의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장기간의 탐구와 연구, 논리적 글쓰기, 토론을 통해 쌓은 학업 역량을 대학이 적절하게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IB 한국은 시·도교육청과 함께 대학 입학처와 대입 관련 정책기관 등과 협력을 확대하고 입학사정관을 대상으로 IB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연수와 참고자료를 지원하고 있다. 향후 대학이 IB 학생들의 학습 경험과 역량을 보다 정교하게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면 초·중등에서 시작된 교육의 변화가 고교와 대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변윤미 IB 커뮤니티협력개발 한국 총괄은 “IB 도입은 특정 국가의 실험이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공립학교를 중심으로 교육 형평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모델로 검증돼 왔다”며 “한국에서도 농어촌을 포함한 다양한 학교 현장에서 그 가능성을 입증해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시·도교육청과 함께 단계적으로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IB의 확산을 단순히 인증 학교의 숫자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학교가 IB 인증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실제 교실에서 수업과 평가가 어떻게 달라지고 이러한 변화가 학생의 성장과 교사의 전문성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IB가 지속 가능한 공교육 혁신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교원 전문성 강화와 학교별 교육과정 운영 역량 확보, 초·중·고교 간 연계 체계 구축, 지역 간 교육격차 완화와 함께 국내 대학입시 제도와의 접점을 마련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전국적으로 새로운 교육정책의 지형이 형성되는 2026년 IB는 일부 학교의 실험을 넘어 공교육의 수업과 평가 방식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몇 년이 IB를 국내 공교육에 도입하고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교육적 성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초·중등에서 시작된 변화를 고교와 대학까지 연결하는 일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결국 IB 확산의 본질은 학교 수의 증가에만 있지 않다.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고하며, 자신의 생각을 근거와 논리로 표현할 수 있는 교실을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지식의 양보다 생각하는 힘이 중요해지는 미래사회에서 IB가 국내 공교육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교육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평택=이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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