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업계는 지난 8년 간 모든 형태의 파일 공유와 싸워왔지만, 대개 참담한 실패로 종결됐다. 온라인 음악 공유는 '도둑질'과 다르다. 공유는 음악 파일의 판매를 도와준다. 음악산업, 아티스트, 이용자 모두 윈-윈-윈 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공유 잡기'를 골자로 한 저작권법 개정안(통합안 중 우상호 의원 발의안)과 발의자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이 여론의 철퇴를 맞고 있는 가운데, 13일(현지시간) 미국의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가 파일공유의 효용을 입증한 연구결과를 인용, 발표해 공유근절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도발적인 물음표를 던졌다.
보스턴 글로브에 의하면, 최근 하버드대 로스쿨의 '버크먼 인터넷과 사회 센터'와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의 연구결과 빈번하게 음악 파일을 내려받는 네티즌 475명 중 1/4에 이르는 응답자가 "온라인 음악 서비스 선택을 좌우하는 주 고려사항은 다른 사람과 파일을 공유 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답했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1/10에 이르는 응답자들이 "음악 파일을 살 때 빈번하게 다른 사람의 추천 내용을 참고한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는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할 때 다른 이들의 사용후기가 구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듯이 콘텐츠 구입에서도 입소문 마케팅이 주는 효용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파일공유 근절에 뼈대를 두고 저작권법 개정안을 내놓은 우상호 의원이나, 15일 저작권법 개정안 지지 성명을 낸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얘기다.
하버드대 버크먼 센터와 가트너 측은 더불어 "오는 2010년까지 온라인 음악 판매의 25%는 네티즌끼리의 추천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입소문은 음악 파일 판매의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합법적인 다운로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음반 업계가 라이선스에 보다 융통성을 두고,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 재생목록 배포해야 하며, 블로그 또는 팟캐스트에 음악을 포함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 7월, 영국의 가디언 지가 리서치회사 더 리딩 퀘스천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과도 궤를 같이 한다. 당시 가디언은 "조사결과, 파일공유 및 불법 다운로드를 즐기는 네티즌이 해적행위를 하지 않는 네티즌보다 4배 많은 돈을 콘텐츠 구매에 지불한다"고 보도했다.
블로그 등 개인미디어나 P2P 등을 통해 파일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콘텐츠를 평가, 추천하는 이들이 콘텐츠 산업의 주 고객이라는 주장이다.
하버드-가트너의 연구결과는 여기에 이들이 실질적으로 콘텐츠 산업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며 '액센트'를 더한 셈이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이용자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메카' 미국의 이 같은 연구결과는 정보접근성 세계 수위를 넘겨다보는 우리 문화산업계와 정책입안자, 입법기관이 '계산적으로' 새겨봐야 할 내용이다.
이번 하버드-가트너의 연구결과는 국가별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이용자를 가해자로 권리자를 피해자로 규정해서는 저작권 전의 승산이 나지 않는다는 지적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저작권 인정과 보호를 염두에 두고 발의된 저작권법 개정안이 도리어 이용자들에게 저작권이라면 손사래부터 치게 만든 현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의 저작권 담론은 지금 '가지 말아야 할 길'로 접어든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우상호 의원과 권리자들이 말하듯 저작권에 대한 전 사회적 합의 과정은 지난하다. 돈 내고 콘텐츠 사는 일에 학습돼 있지 않은 네티즌을 설득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전쟁'에도 비용이 따른다.
강력한 저작권 법과 규제는 합의에 투입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일지 모르지만, 저작권법과 저작권 자체를 터부시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가장 난색을 표명하는 부분이 바로 '저작권 존중에 대한 사용자 인식'임을 고려하면, 왜 가야하는 지름길인가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짐작해보건대, 출판사를 운영해 본 우상호 의원은 아마도 불법복제로 인한 업계의 피해상황을 절절히 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도 권리자의 하나였다"며 "여러분의 심정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던 불법복제방지 대토론회에서의 언급은 우 의원이 업계의 고충에 오랜기간 마음을 쓰고 있었음을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이 '전력'은 결과적으로 우 의원에게 '우'를 범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업계 고충에 대한 '깊은 이해'가, 권리자 말고도 산업을 받치고 가는 두 축이 더 있음을,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파일공유 문제는 오프라인의 도서 복제와는 성격이 전혀 다름을 간과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돌아봤어야 했다는 얘기다.
의견조율 과정이나 조항에 담긴 권리자 중심의 사고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의 후속조치 역시 개운하지 못했다.
우 의원 측은 균형감각과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는 상황에서도 "지금이라도 열린 공청회 한 번 하자"는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우 의원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토론에 응하겠다"고 언급했으나, 우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13일과 오는 16일 이의를 제기한 관계 단체들과의 비공식 만남을 거론할 뿐 "공개토론 여부는 민감한 사항"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우상호 의원과 문화산업계가 지금 아프게 인식해야 할 '현실'은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와 균형감각을 상실한 우 의원의 법안이 지금, 사익을 추구하는 닷컴 기업 이익단체가 내세우는 논리만큼도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 의원 덕분에(?) 국회 문광위도, 문화관광부도 체면이 땅에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문광위는 지금 우 의원의 법안을 제대로 걸러주지 못한 고장난 필터라는 오명을 덮어쓴 상황이다. 우 의원 발의안의 뼈대 잡기에 조력한 문화부 저작권과 역시 좌불안석하고 있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더욱 큰 문제는 우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민관 관계자들의 '우'가, IT업계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정보통신부가 내세우는 '기술산업 중심 논리'를 검증없이 수용하도록 하는 결과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우상호-문광위-문화부가 '지르고' 과기정위-정통부가 '수습'하는 묘한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어쩌면 다른 누구보다 문화산업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가지고 법안을 만들었을지 모를 우상호 의원.
그의 신념과 그의 법안이 정말 안타까운 것은, 문화산업에 대한 그의 이해와 애정이 지금 결국 '문화'자를 단 민·관 모두를 총체적 난국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박연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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