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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집토끼도 못 지키는데"…씨티은행 철수에 금융허브 '삐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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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 소비자 금융 시장 철수 결정

한국씨티은행 본사 [사진=아이뉴스24]
한국씨티은행 본사 [사진=아이뉴스24]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한국씨티은행이 한미은행 인수 17년 만에 소비자 금융 시장에서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금융권에선 철수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강력한 금융 규제'가 가장 힘을 받는 분위기다. 글로벌 은행이 한국에서 발을 빼면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아시아 금융 허브' 프로젝트도 타격을 면치 못하게 됐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씨티그룹은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한국을 포함한 13개 국가의 소비자 금융 사업에서 출구 전략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씨티은행은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금융 시장에선 철수하고, 기업금융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은 전날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글로벌 본사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방안을 충분히 검토하고, 고심 끝에 내린 의사결정이라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라며 "경영진은 이사회와 함께 추후 가능한 모든 실행방안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수익성 악화되자 결단…결국 규제 때문?

모든 사업이 아니라 소비자 금융 사업에서만 철수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금융권엔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한국씨티은행의 총 여신은 24조3천억원인데, 이중 소매금융은 절반이 넘는 16조9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시중은행 소매금융 자산의 2.7%다. 임직원 수는 3천500명이며, 이중 소매금융 전담 직원은 939명이다. 43개 점포 중 소매금융 점포는 36개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씨티그룹은 출구 전략 추진 계획을 밝히며 "한국을 포함한 특정 국가의 실적이나 역량의 문제로 인한 결정이 아니라, 씨티그룹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수익을 개선할 사업 부문에 투자 및 자원을 집중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업을 단순화할 필요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선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몇 년간 몸집을 꾸준히 축소해왔다. 특히 2014년과 2017년엔 지점 규모를 크게 줄였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엔 57개, 2017년엔 무려 90개의 점포를 줄였다.

영업력이 축소되면 자연스레 이익도 감소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씨티은행은 '볼륨'을 키우지 않았다. 2014년과 2017년에 철수설이 금융권에 돌았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씨티은행의 순익은 지난 2018년 3천74억원에서, 2019년 2천794억, 지난 해엔 1천87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전의 한국씨티은행은 개인 자산관리(WM)에 특화되는 등 영업력이 강했지만, 통·폐합이 꾸준히 진행된 지금은 영업력이 많이 약화된 상황"이라며 "수익성을 올리려면 영업 조직 등의 덩치를 키웠을텐데, 그러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업계는 이러한 결정 배경에 한국의 금융 규제가 한몫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 등 경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각종 규제 등으로 영업의 자율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자본을 추가로 투입해서 경쟁하기엔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올해 초 한국씨티은행은 금융당국의 배당 제한 권고를 받아들여 배당 성향을 20%로 맞춘 바 있으며, 지난 해엔 키코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 말고도 관치금융으로 지적되는 사안들은 꽤 많다.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대출 원리금 만기 연장·이자상환 유예나 법정 최고금리 인하도 금융권이 불만을 갖는 사안들이다. '이익공유제' 등 정치권의 금융권 압박도 거센 상황이다.

◆ 힘빠진 금융중심지 추진 계획…학계 전문가 "국제 표준에 맞는 규제 필요해"

한국씨티은행의 사업 철수 선언으로 정부의 금융허브 추진 계획도 힘이 빠지게 됐다.

정부는 지난 2003년부터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에 따라 금융중심지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9년엔 서울과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선정하고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 진출, 외국 금융회사 국내 유치 등을 추진해왔다.

외국 금융회사 유치 실적이 빼어나다고 보긴 어렵다. 금융중심지 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 해 말 기준 외국계 금융회사의 국내 점포는 모두 164개인데, 지난 2010년말과 비교해 18곳 늘어나는 데에 그쳤다.

적극적으로 해외 금융회사를 유치해도 모자를 판에, 외려 한국에서의 사업을 축소하는 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으니 정부로선 속이 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씨티그룹은 160여개국, 2억명의 고객을 보유한 글로벌 금융 기업이라 중량감이 크다. 2013년엔 한국HSBC은행이 소매 금융 사업에서 철수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동북아 금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선 '국제 표준'에 맞는 금융 규제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우 금융 규제가 너무 많은데, 최근 들어선 관치보다도 '정치금융'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라며 "한국의 금융산업도 과거보다 많이 발전했고 지정학적으로도 상당히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축소하는 건 결국 규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 금융회사 입장에선 이해하지 못하는 금융 규제들이 많은 상황"이라며 "규제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서상혁 기자(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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