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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별세] 결단의 경영…LG그룹 선진경영 토대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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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기업공개는 물론 고객 중심 경영 등 경영 패러다임 바꿔

[아이뉴스24 윤선훈 기자] 14일 별세한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은 매출 등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도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업을 공개해 기업을 자본 시장으로 이끌었고, 국내 최초로 해외에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특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LG의 '컨센서스(Consensus)' 문화를 싹틔우고, '고객 중심 경영'을 내세운 것도 구 명예회장이 회장으로써 LG그룹을 이끌 때였다.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업공개 단행…해외 최초 공장 건립도 LG

구 명예회장은 1970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락희화학(현 LG화학)에 대한 기업 공개를 단행했다. 당시만 해도 기업공개를 기업을 팔아 넘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풍조가 만연했고, 기업공개를 한 민간기업도 전무했다. 그러나 구 명예회장은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공개가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고수했다.

1970년 2월 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이 국내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곧이어 금성사(현 LG전자)도 기업공개를 했고, 이후 1974년 금성통신(현 LG전자 합병), 1976년 반도상사(현 LG상사)·금성전기(현 LIG넥스원 합병), 1978년 금성계전(현 LS산전), 1979년 럭키콘티넨탈카본(현 LG화학 합병) 등 10년 간 10개 계열사가 기업공개를 했다. 이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었다.

구자경 명예회장(우측 세번째)가 미국 현지생산법인을 방문해 TV를 바라보고 있다. [출처=LG]
구자경 명예회장(우측 세번째)가 미국 현지생산법인을 방문해 TV를 바라보고 있다. [출처=LG]

해외에 최초로 공장을 설립한 국내 업체도 LG였다. 1982년 금성사는 미국 알라바마주의 헌츠빌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세웠다. 뉴욕타임즈는 당시 공장 설립에 대해 "한국의 기업이 이제는 미국 사회에서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구 명예회장은 이후에도 25년의 재임 기간 동안 50여개의 해외법인을 세웠다.

세계 유수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독일 지멘스,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칼텍스 등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을 적극적으로 했다. 이런 와중에도 합작 업체와의 특별한 분쟁도 없었다. 구 명예회장은 합작 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인화(人和)'를 강조하며 서로에게 합당한 원칙을 정하고, 투명한 경영을 하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현재 GS칼텍스의 모태에는 1966년부터 시작된 호남정유와 칼텍스 사와의 합작이 있다. 50대50의 비율로 경영을 양분했지만 별다른 잡음 없이 현재까지 합작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또 1974년 금성통신이 외국과의 합작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기업공개를 했는데, 파트너였던 지멘스의 원활한 협조로 주목받았다.

◆'고객중심경영'과 '책임경영' 모태 세우다

'자율과 책임경영', '고객 중심 경영'은 현재까지도 LG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경영 이념이다. 이 뼈대를 세운 주인공이 바로 구 명예회장이었다.

1988년 구 명예회장은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이라는 변혁 방향을 발표한다. 사업전략에서 조직구조, 경영스타일,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전면적인 경영혁신을 담은 청사진이다.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경영체제를 벗어 던지고,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율과 책임경영'을 내세웠다.

1995년 LG로 사명 변경 당시 로고를 바라보고 있는 구자경 LG 명예회장(당시 회장)의 모습. [출처=LG]
1995년 LG로 사명 변경 당시 로고를 바라보고 있는 구자경 LG 명예회장(당시 회장)의 모습. [출처=LG]

자율과 책임경영은 전문경영인이 권한을 갖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LG 내부는 물론 재계에서도 선뜻 실행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경영체제 개념이었다. 그룹 내부에서도 중요한 결정 권한은 회장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러나 구 명예회장은 이를 기조로 계속해서 전문경영인들에게 많은 힘을 실어 주었다.

1990년 2월에는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삼은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새로운 경영 조류였는데 이를 LG그룹이 채택한 것이다. 기업경영의 축을 공급자에서 고객 중심으로 전환한 셈이다.

구 명예회장은 이 같은 경영혁신 슬로건이 실천되기 위한 '혁신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다. 일일이 임직원들을 만나 경영혁신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2년에 걸쳐 그룹 전 임원 500여명과 오찬 미팅을 가졌고, 1년 동안 현장의 임직원들과 간담회 형태의 대화 자리를 140여차례나 갖기도 했다.

이외에도 LG전자 서비스센터 등 LG의 사업 분야에서 고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방문했다. 그는 "고객의 입장에서 듣고 생각하라, 이것이 혁신이다"라는 말을 항상 강조했다. 1992년에는 LG의 이러한 경영혁신활동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책 '오직 이 길밖에 없다'를 집필하기도 했다. 책에서 그는 "LG의 혁신활동이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향상에 일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구 명예회장의 이러한 노력으로 LG그룹에는 전문경영인의 경영 방식이 조기에 정착됐고, 이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순수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하며 선진화된 지배구조와 투명경영의 근간도 마련했다. LG의 '고객경영'은 1990년대 이후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룹 인재 육성 토대 마련…재계 '사회적 공헌' 징검다리

LG인화원은 LG 인재 육성의 요람이다. 이 역시 구 명예회장의 작품이었다. 그룹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구 명예회장은 인화원에 대해 '기업의 백년대계를 다지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표현을 썼다.

1998년 인화원 개원식에서 구 명예회장은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며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의 번영과 복지도 인재의 빛나는 창의와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인재 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라며 인화를 바탕으로 한 인재 육성의 의지를 천명했다.

1997년 전경련 회장으로 활동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좌측 두번째)의 모습. [출처=LG]
1997년 전경련 회장으로 활동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좌측 두번째)의 모습. [출처=LG]

이후 LG인화원은 교육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측면을 강화해 실무 실행력 증진에 초점을 맞췄다. 2001년에는 기업 교육과정의 우수 사례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뽑은 세계 12대 기업 대학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경제 전반을 위해서도 힘썼다. 1987년 2월 전경련 회장에 취임하며 1989년까지 재임했다. 취임 후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전경련 산하에 '경제사회개발원'을 설립하고, '국민 속의 기업인, 국민경제를 위한 기업'을 모토로 기업 이미지 개선 활동을 전개했다. 전경련과 기업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선 일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윤선훈 기자 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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