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명예 없는 명성'만 남은 미쉐린 가이드
2019.11.19 오전 6:00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미쉐린 코리아가 발간하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은 지난 2016년 첫 발간 이래 서울 소재 고급 레스토랑들이 얻어야 할 성배와도 같은 존재였다. '블라인드' 심사를 진행하는 평가단에게 별을 받느냐 마느냐에 셰프와 가게의 명예가 걸렸고, 미래가 갈렸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미쉐린 코리아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을 발간했다. 라연과 가온 등 기존의 '3스타' 레스토랑은 그 자리를 지켰고, 새로이 5개의 레스토랑이 별을 받아 총 31개의 레스토랑이 공인받은 맛집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선정 과정에 공정성 논란이 제기돼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이 발간되기 이틀 전인 지난 12일, 서울 명동의 한식당 '윤가명가'를 운영하는 윤경숙 대표는 '어네스트 싱어'라는 일본 거주 미국인이 미쉐린 가이드의 선정을 대가로 연 5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의 컨설팅을 제안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윤 대표는 "미쉐린 가이드는 심사위원이 누군지 밝히지 않는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의 레스토랑을 점검하고 심사해 별을 준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사전에 조사 시기 등을 조율하고 일정 등을 미리 알려주는 컨설팅이 횡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윤 대표는 현재 미쉐린 3스타를 확보한 가연과 라온도 컨설팅을 수행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해당 레스토랑의 전현직 대표자도 사실상 컨설팅을 받았다고 시인해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신뢰성을 추락시켰다.

미쉐린 가이드 선정에 대한 조작 논란이 2년 연속으로 불거졌다. [사진=미쉐린 코리아]


이에 미쉐린 코리아 측은 시상식 당일 별도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미쉐린 가이드는 독립성을 기반으로 독창적 평가 기준을 개발해 왔으며 평가원 외 다른 사람의 개입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논란의 중심이 된 '어네스트 싱어'라는 인물과 미쉐린 가이드의 연관 관계도 부정했으며, 지난해 논란이 제기됐을 때 내부 감사를 진행했지만 의심 정황이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함께 자신들의 평가 방식이 검증된 것인 만큼 평가 과정을 공개하거나 수정할 의사도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 셰프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하며 가이드에서 빠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소비자 일각에서도 이 같은 미쉐린 가이드 선정 방식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지고 있어 논란이 점점 커져 가는 모습이다.

이는 결국 미쉐린 코리아의 대응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간담회 당시 미쉐린 코리아 측은 이번 논란이 미쉐린 가이드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라며 불쾌한 반응을 내비쳤다. 때문에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황 판단이다. 이번 논란은 미쉐린 가이드의 '명예'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신뢰'에 대해 제기된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 논란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관점도 전제 맥락의 틀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로 읽혀진다. 미쉐린 코리아는 이번 논란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온 일선 셰프들과 미쉐린 가이드를 믿어온 소비자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결국 미쉐린 코리아가 미쉐린 가이드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면 하루 빨리 대중들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평가 방식의 투명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제도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권위'를 앞세워 묵살하는 행위는 더 큰 의문을 불러올 수 밖에 없으며, 소비자의 '신뢰'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평가기관에게는 '투명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명성을 잃는 것은 이름을 잃는 소극적인 것이지만, 명예를 잃는 것은 치욕이자 적극적인 것이며 곧 생명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미쉐린 코리아의 논란에 던진 묵직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미쉐린 코리아의 합리적인 대응이 없다면 이는 곧 미쉐린 가이드의 '생명'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글귀로 말이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