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관성·원칙 없는 정부의 전자담배 규제 잣대
2019.10.30 오전 6:00
[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액상형 전자담배를 포함한 전자담배 제품들이 일반담배보다 건강에 해롭지 않다며 적극 권장할 때는 언제고, 시장에 자리잡으니 갑자기 해롭다면서 판매를 중단시키니 황당합니다. 그럼 지금까지는 유해한 줄 알면서도 팔았다는 건가요?"

'쥴'을 사용하고 있는 직장인 이준혁(32)씨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에 대한 '유해' 낙인찍기에 대해 어이가 없는 일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어 "만약 유해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팔 수 있도록 한 거라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 아닌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주일은 담배 시장에 '격변'이 일어난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중증 폐질환 발병 논란이 한국에까지 번졌고, 지난 23일 보건복지부의 사용 중지 권고에 이어 편의점과 면세점에서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 대부분이 사라졌다.

정부는 이 같은 조치의 이유로 국민 건강권을 들었고, 유통업계는 정부의 조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소비자로부터 '늑장 대응'이라는 질타를 받을 것을 우려해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에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들이대는 잣대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의 성분 중 중증 폐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판단된 것은 대마 유래 성분인 'THC'와 비타민E 유기 화합물 등이다. 이 성분은 이번 사용중지 권고에 따라 판매 금지된 KT&G의 '시드 툰드라'나 쥴랩스의 제품 3종에는 함유되지 않았다.

또 정부는 미국에서 중증 폐질환을 일으킨 환자 중 10%는 순수 니코틴 액정만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액상담배 전 제품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현장에서는 가향형 제품이 아닌 KT&G의 '릴 베이퍼 시드' 3종과 쥴랩스 '쥴 팟' 2종의 판매는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이 일관적이지 못한 정부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게 담배업계의 반발을 불러왔다.

한국전자담배협회(협회)는 지난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은 한국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관계가 없는 만큼 보건복지부의 사용 중단 권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협회는 오는 31일 이 같은 주장을 담은 기자회견을 개최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쥴랩스 코리아도 적극적 움직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전자담배가 시장에 출현한 지난 2017년 이후 지금까지 과세 표준 하나 마련하지 못한 정부의 미적거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늦장 대응 때문에 건강권을 우선시한 정책마저 세금을 더 받기 위한 것이라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는 지적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 움직임은 기재부가 관련 연구용역을 거쳐 세율을 재산정하겠다는 발표 직후 이어졌다. 소비자가 이번 조치를 세율 인상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일부라는 의심을 충분히 품을 수 있는 상황이다.

만일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 출시 전 검증 작업을 거치고, 과세 표준을 마련한 후 판매를 허용했다면 지금 같은 비난의 화살은 쏟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를 둘러싼 지난 1주일 동안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무능 그 자체였다. 사용 중지 권고에 대한 어떤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고, 업계는 영문도 모른 채 휘둘려야 했다. 또 소비자는 잘 쓰고 있던 제품이 갑자기 '독극물'이 되는 어이 없는 상황에 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정부의 정책에 의한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없었고, 이는 곧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조치가 세금을 올리기 위한 수순으로 비쳐졌다.

정부는 하루 빨리 액상형 전자담배를 둘러싼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제대로 움직여야 한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필요하다면 사용중단 권고가 아닌 판매중지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 그것만이 떨어진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방법이자,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된 업계 및 소비자 모두를 위한 길이다. 시장 하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화두를 던진 후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사태 해결의 의지를 보일 때이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