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집단사망 사태에 눈 하나 깜빡 않는 한국타이어
2019.10.28 오전 6:00
[아이뉴스24 황금빛 기자]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지난 23일 '스마트 팩토리 구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대전공장과 금산공장 생산설비 현대화와 노동자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2026년까지 총 3천100억 원의 투자를 하겠다는 게 골자다. 한국타이어는 여느 기업들처럼 사회공헌재단인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왔다. 이와 관련해 좋은 평가를 받아 4년 연속 글로벌 지수인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에서 우수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세계 최고 권위의 인증서를 받은 한국타이어 이면에 어딘가 씁쓸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한국타이어 본사 앞에는 매일같이 사측을 규탄하는 노동자들의 울분이 묻어난다.

노동조합을 결성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사측으로부터 노조 탄압을 받고 있다는 노동자들의 집회, 10년 전 산업재해 관련 사측의 은폐 문제를 언론에 내부고발했다 해고된 노동자의 1인 시위가 진행된다. 하지만 본사 앞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지난 20년 간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다 사망하거나 질병을 얻은 노동자들이다.

한국타이어 산재 피해자·가족 모임인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가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다 사망한 정규직 노동자 수는 1996년에서 2016년 1월 사이 총 139명에 달한다. 이후에도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고,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입사 4년 만에 암에 걸려 투병을 하다 생을 마감한 노동자가 있다. 2017년 기준 한국타이어 전체 노동자의 44.8%인 2천611명이 질환을 앓고 있다는 통계조사도 있다.

피해자들 주장의 핵심은 노동자 사망과 질병에 유해화학물질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타이어제조공정에서 유해화학물질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사측은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사실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타이어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물론 기준치 이하로 사용했을 수는 있다. 사측은 법에서 규정돼 있는 기준을 넘어 사용한 유해화학물질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유해화학물질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련, 압연, 압출, 재단, 비드, 성형, 가류 등 타이어제조공정 가운데 가류공정은 타이어를 고온에서 쪄내면서 고무흄을 대량으로 발생시킨다. 이 속에 각종 유해화학물질들이 미세분진 형태로 존재하고 이는 발암물질로 간주된다는 것이 과거 역학조사를 했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즉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아도 유해화학물질은 나온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 측 변호사는 "나는 너를 죽이지 않았지만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라며 사용하지 않았다고 나오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라고 지적했다.

물론 현재 한국타이어 공장은 과거와 다를 수 있다. 보건관리체계를 강화해 노동자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취재를 하면서 사측의 입장을 더 반영하려고 피해자들처럼 구체적인 내용으로 반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그러고 한 시간 후 사측으로부터 "어디서 들었냐", "해당 내용은 1심에서 허위사실유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판결이 나온 것이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그게 끝이었다. 이후 관련 입장을 더 들어보려 했지만 전화를 피하고 메시지를 읽지 않는 식으로 대응했다.

사측으로부터 물음에 대한 답을 받지 못한 기자와 피해자들. 누가 더 답답할지 감히 비교할 수 없었고, 피해자들의 답답함을 헤아려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20여 년이 흘러간 문제답게 가장 최근인 지난 6월 사망자가 또 발생했을 때도 이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대로 묻힌다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제가 됐다. 지금이라도 한국타이어 사측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상세불명으로 고인이 된 노동자와 유가족 그리고 지금도 현장에서 불안감에 떠는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황금빛 기자 gold@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