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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오만과 편견’ 김지현 “여태 참여한 작품 중 힘듦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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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1인 다역 긍정 의미…좋은 배우들과 함께 나눠 진짜 재밌다”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시작할 땐 이렇게까지 힘들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너무 만만하게 봤나봐요.”

제인 오스틴의 동명 소설을 2인극으로 각색한 연극 ‘오만과 편견’에서 ‘A1’ 역으로 열연 중인 김지현은 작품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김지현은 함께 출연하는 정운선·이동하·윤나무·이형훈과 국내 초연 무대를 올리기까지 만만치 않은 연습과정을 거쳤다. 2명의 배우가 21개의 배역을 나눠 연기하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인 만큼 대사량부터 엄청났다. 이들은 80여 페이지의 대본을 암기해야 했고 연습기간은 단 5주였다.

“한 사람이 많은 말을 하면 ‘와, 많다’라는 생각이 들 텐데 이렇게 나눠서 계속 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많다고 못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다들 대본 많은 작품 한두 번씩은 해봤던 배우들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힘들어했어요.”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기본 스토리는 영국 중상류층 여성의 삶과 서로 다른 계급의 청춘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결혼을 결정하는 이유가 단지 상대방의 가문·재산·명성 등 외적 조건뿐이었던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풍자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김지현은 당당하지만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리지) 베넷’을 중심으로 엄마 ‘미시즈 베넷’, 막내동생 ‘리디아 베넷’, 다아시의 친구 ‘찰스 빙리’, 그의 동생 ‘캐롤라인 빙리’ 등 9개의 캐릭터를 오간다.

극중 신과 함께 진행되는 내레이션도 배역으로서 뱉게 돼 있어서 박소영 연출과 배우들은 1차 번역 후 2주가량 내레이션 감정을 최대한 잘 다룰 수 있는 과정을 공부하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퇴계로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김지현은 연습기간부터 공연을 하고 있는 최근까지 느낀 감정과 다양한 에피소드 등을 유쾌하고 털털한 입담으로 풀어놨다.

다음은 배우 김지현과의 일문일답.

- 바쁜 와중에 한국 초연 연극인 ‘오만과 편견’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작년에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끝날 때쯤에 달컴퍼니에서 대본을 줘서 보기는 굉장히 일찍 봤다. 러프하게 된 대본을 받았는데 내가 사실 ‘오만과 편견’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잘 안 읽히더라. 번역이 많이 윤색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려니까 인물이 너무 많고 어렵더라. 대표님이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말고 형식 정도만 보라고 하셨고 나중에 연출하고도 만나서 그런 얘길 했다. 읽고 보니 중요한 건 따로 있더라. 어쨌든 2명의 배우가 이 긴 이야기를 1인 다역을 하면서 관객들한테 들려준다는 포맷 자체가 나한테 매력적이었다. 이런 식의 다역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결정을 빨리 해달라고 요청하셔서 많이 생각할 겨를 없이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사실은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대본과 소설에 나와 있는 인물들은 작가가 설명과 묘사를 많이 해놨기 때문에 훨씬 더 풍성하지 않나. 이건 공연으로 올려지는 거고 한 사람이 여러 인물을 표현하다보니 아쉬운 지점이다. 다른 공연의 멀티개념처럼 가는 게 아니라 인물들이 각각 중요하고 소중한데, 아무리 다역이지만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지 못한 것 같아서 그게 제일 아쉽다. 어쩌면 매 인물 깊게 표현하다보면 변화가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 안에서 아홉 가지 뭔가가 나오기 때문에 전형적인 인물의 표현이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엄마도 다른 인물들과 차이를 두기 위해 조금 더 주책맞고 속물적인 사람으로 보이게끔 에너지 톤을 많이 띄웠다. 다 너무 독특해서 되게 재미있는 인물들이다. 묘한 인물의 모순된 지점들을 포인트로 해서 작가가 워낙 잘 써놓은 것 같다. ‘이걸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사람들이다.(웃음)”

- 주연배우로서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늘 관객 반응이 궁금하다. ‘이걸 어떻게 볼까’ ‘이 긴 이야기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지루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는데, 첫날 공연을 객석에서 보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2~3배 정도의 호응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너무 재밌게 보시더라. 깜짝 놀란 부분도 많았다. 우리는 전환을 이 공연의 당연한 소스로 생각하고 하고 있지만, 인물이 바뀌는 것이 되게 재밌는 요소가 될 수 있지 않나. 관객들이 전환하는 순간들을 굉장히 흥미로워 하는데 또 금방 집중해서 보고. 그분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보시는지 너무 명확하게 보여서 그냥 ‘이게 이 작품의 매력이구나’ 싶더라. 다양한 배역을 2명의 배우가 하는데 그걸 사람들이 끝날 때까지 놓치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게 보신다. 처음에 ‘너무 어렵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무대에서 구현해서 표현하니까 관객들이 생각보다 너무 잘 따라오시는 걸 직접 보고 이 작품이 정말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는 것도 재미있다.”

- 연기하는 캐릭터 중 본인 성격과 가장 비슷한 캐릭터를 꼽자면.

“내가 하는 건 아닌데 제인이.(웃음) 어떻게 보면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성격이지 않나. 너무 좋게만 보고 다 이해하려고 하는 박애주의적인 사람이니까. 우리가 분석하면서 특히 남자 배우들이 ‘잘 이해가 안돼, 왜 이렇게 하지’ 하는데 나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이유가 있을 거야, 난 이해해, 난 그런 사람이거든’ 그런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랬더니 나한테 ‘이 누나 제인 같은 사람이야’ 하더라.(웃음) 나는 사실 리지처럼 그렇게 정확하게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본 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 어릴 때 몇몇 사람을 겪으면서 ‘내 판단이 굉장히 잘못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어쩜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는지’라고 스스로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모든 사람을 오픈마인드로 보게 됐다. ‘겪어보고 나서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해야지 먼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나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어릴 땐 리지 같은 그런 부분도 좀 있었다. 지금은 굳이 말하자면 제인과 좀 비슷하지 않나 싶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르겠지만 남자친구들이 제인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 때 ‘누나도 여기 들어가 있다’는 얘길 했다. 나이도 어쩌다보니 제일 많아서 제인 같은 모습이 좀 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를 안 내고 다 그러려니 하고 보는 그런 성격은 나랑 좀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좋게만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이 대사가 와 닿는다.”

-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는 누구인가.

“엄마랑 리디아가 제일 어려웠다. 심지어 엄마는 첫 공연 올리고 나서 연출님하고 얘기해서 방향도 조금 바꿨다. 연습할 때 내가 원했던 느낌으로 엄마가 안 잡히더라. 계속 고민을 하다가 시간이 모자라서 어떻게 만들어야 될지 해결을 못한 상태에서 첫 공연을 했다. 운선이 공연도 보고 관객들 반응을 보면서 역시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향이 조금 달라져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출님도 엄마가 좀 더 천박하게 보여도 괜찮고 생각이 깊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좋겠다고 얘길 하더라. 그 다음 공연부터는 톤을 많이 바꿔서 했는데 그렇게 하니까 훨씬 편했다. 지금은 엄마가 제일 연기하기 재밌다. 혼자 고군분후 하는 모습이 주책스럽고 교양 없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귀엽다. 정이 많이 가더라. 엄마 대사처럼 ‘좋은 집에 딸 시집보내는 것보다 행복한 게 어딨겠어’ 이런 생각도 들고. 그리고 리디아는 아이와 여자의 사이 지점을 표현하고 싶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 어른을 흉내내길 원하는, 어리지만 ‘난 아가씨야’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다. 실제로 그런 에너지 때문에 당차고 주위 사람들도 그 매력을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벌써부터 저래가지고 어떡하지’이런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 지점을 표현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 일단은 보이스를 쓰는 데 한계가 있어서 다역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다. 리디아를 조금 더 성숙하게 생각하려고 하면 리지와 가까워지고. 이런 톤을 잡기가 정말 어려웠다. 지금은 그냥 철딱서니 없는 꼬맹이 같은 톤으로 하고 있는데 여전히 아쉽다. ‘조금 더 이 아이 속에 있는 욕망과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너무 아이 같은 모습만 보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결 자체나 나이와도 제일 갭이 있는 인물이라서 지금도 어렵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우리가 공연을 2개나 같이 했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와 뮤지컬 ‘안녕! 유에프오’에서 같은 역할을 했었다. 그래서 워낙 친하고 굉장히 대화가 잘 된다. 작품을 보고 생각하는 게 되게 비슷해서 굉장히 편하다. 굳이 많이 신경 쓰지 않아도 운선인 운선이 대로 알아서 잘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라 그냥 운선이가 하는 거 보고 얘기하고 또 내가 한 거 물어보기도 하고. 되게 정확하게 보고 얘길 해준다. 운선이랑은 작업하기 정말 편하다. 성격 자체도 워낙 명랑하고 좋아서 둘이 되게 잘 맞다. 복이다. 고맙고. 되게 좋은 작업 파트너다.”

- 상대역인 이동하·윤나무·이형훈과의 연기호흡도 궁금하다.

“우리도 그렇겠지만 3명이 너무 다른데 공연을 하니까 점점 더 달라지더라. 개개인의 캐릭터 색깔들이 조금 다른 지점들이 있고 형훈이·나무·동하 3명이 명확히 다 달라서 그런 부분에서 오는 에너지의 차이랄까? 그런 건 좀 있다. 연습 때 그들의 색깔을 파악했기 때문에 다 괜찮다. 3명 다 마인드가 열려있는 친구들이라 불편하거나 의논할 부분들이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하고 수정하면서 해보곤 한다. 사실 전혀 불편한 것들이 없는 친구들이라서 그게 너무 감사한 거다.”

- 그렇다면 전체 합은 당연히 좋겠다.

“이번에 하면서 너무 고마웠던 건 누구 하나 과도하게 열정적인 사람도 없고 5명의 배우가 너무 결이 비슷했다. 갈 길이 먼데 너무 과해도 피곤할 수 있지 않나. 초반에 번역해주신 것을 가지고 말이 좀 더 편해져야 될 부분들이 있어서 테이블 작업을 같이 좀 길게 했다. 그게 꼭 필요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다들 열정적으로 달려들다 보니 진이 빠졌다. 그런 순간에 누구 하나가 더 ‘잠깐만, 그런데 거기’ 이랬으면 한숨이 나왔을 지도 모른다. 누가 못 따라와도 너무 앞서가도 힘들지 않나. 우린 5명이 같은 속도로 같이 열정을 내고 포기할 땐 같이 빨리 포기하고 이런 부분들이 너무 잘 맞았다. 그게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너무 감사하더라. 그 작업을 딱 하고났더니 ‘우리의 합이 되게 좋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습할 때는 내꺼 외우고 하느라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을 챙길 정신이 없었다. 호흡이 중요한 순간들이 있지만 그 안에서 개인이 해야 될 것들이 너무 명확해서 크게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진 않은 것 같다.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 호흡이 잘 맞아지고 있어서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호흡에 대한 생각을 별로 안할 정도로 다 적당히 잘 가고 있구나’ 싶다.”

 [사진=정소희 기자]
[사진=정소희 기자]

“처음에는 하녀장이 너무 웃겼다. 계속 웃길 순 없으니까 지금은 캐릭터들이 많이 약해졌다. 처음에 얘들(이동하·윤나무·이형훈)이 잡은 보이스톤과 아기모자를 썼을 때를 생각하니까 너무 웃기더라. 나중에 모자가 왔는데 실제로 그걸 쓰고 하니까 정말 웃겼다. 공연 때도 얼마 전 나무랑 할 때 웃으면 안 되는데 죽을 뻔했다.(웃음) 나무가 모자를 쓰고 나왔는데 그날 모자 자체의 형태가 너무 웃겼다. 딱 나왔는데 객석도 술렁거리는 걸 내가 느꼈다. 나무도 느꼈는지 모자를 한번 고쳐 썼는데 그게 더 웃긴 거다. 하녀장이 설명을 할 때마다 웃음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다른 데를 보면서 설명을 듣다가 또 보는데 너무 친절하게 날 보면서 설명을 해주니까 웃음을 못 참겠더라. 정말 울상을 하고 계속 버텼다. 내가 터졌다고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왜 저렇게 웃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었다. 참느라고 했지만 진짜 너무 힘들었다. 애들이 땀이 너무 많이 나서 머리가 젖어있는데 그 모자를 쓰니까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리허설 때 동하도 한번 크게 웃겼던 적이 있다. 머리를 추슬러보겠다고 하고 나왔는데 그게 더 웃겨가지고 우리가 만지지 말고 차라리 그냥 나오라고 했다. 다아시로 나왔는데 머리가 초사이언처럼 돼가지고 ‘미스터 다아시’ 했는데 또 웃음이 막.(웃음) 연습할 때 남작부인 때문에도 많이 웃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대사를 많이 축약해서 넣어놓다 보니 리지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남작부인이 굉장히 우스워질 수 있는 상황이더라. 초반에 연습할 때 남작부인들이 열을 올리는데 리지가 거기다 대고 되게 당돌하게 툭툭툭 이렇게 대사를 하니까 남작부인들이 자기 화에 못 이겨서 ‘이거 어떻게 하죠, 혈압 올라서 넘어갈 것 같은데’ 이러는데 너무 웃긴 거다. 그리고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 대답을 했는데 딴소리를 하면서 화를 더 내고.(웃음) 누가 봐도 남작부인이 지는 게임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게 웃기더라. 동하도 막 바닥을 기면서 웃을 정도로 진짜 웃긴 적이 몇 번 있었다. 하다가 자기들도 스스로 너무 초라한 거다. 결국 우리가 좀 더 남작부인에 대한 리액션을 받아주고 흔들리기도 하는 쪽으로 수정했다. 외려 여자인 척하는 건 별로 웃기지 않고 그런 상황들, 이상한 캐릭터로 잡았는데 그게 주는 이상한 웃김이 터졌다. 진짜 너무 웃겨서 즐거웠다.”

- 공연 중 실수담을 고백해보자.

“대사를 너무 많이 틀린다. 난 대사를 그렇게 틀리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첫 공연부터 ‘이렇게 대사를 많이 틀릴 수 있나’ 싶더라. 고등학교 1학년 때 인생 처음 공연한 것보다 더 엉망으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공연에서 대사를 틀리는 게 제일 큰 실수인 것 같다. 연습 때는 그 다음 전환이 생각이 안 나서 힘들었다. ‘그 다음 인물이 뭐지’ 둘이 이렇게 보고 있으면 분명히 둘 중의 하난데 난 아닌지 알고 있다가 다음 전환이 나일 때.(웃음) 공연 때는 외려 그런 전환은 헷갈리지 않았는데 대사 자체를 너무 버벅대고 틀리니까 황당하더라. 뇌랑 상관없이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는 그런 것들이 있다. 첫 공연 때도 연습 때고 리허설 때고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대사가 그냥 나온 거다. 그날 거기서 왜 그게 튀어나왔지? 수습을 어떻게 해야 될지가 막막하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 공연 자체가 그렇다. 정신을 차려도 차려도 자칫 잘못하면 정말 딴말이 나오고, 그 입을 막을 수도 없고 그런 거. 아직도 하면서 사실 틀린다. 관객분들 알게 모르게 틀리는 것도 있고 티가 나는 것도 있긴 한데 횟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한두 번이라도 틀리는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대사가 너무 많으니까 관객들도 우릴 이해해줄 것 같다. 우리의 목표가 이걸 클리어할 수 있는 날을 맞는 거다.”

- 둘이서 여러 역할을 하면서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쉴 새 없이 연기를 펼친다. 끝나고 나면 어떤 기분인가.

“더 이상 말이란 걸 하고 싶지 않다.(웃음) 이렇게 많은 양의 대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인터미션 빼고 단 한번의 퇴장도 없이 2시간 25분 동안 이렇게 떠드는 공연을 해본 적이 없다. 상상을 초월했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다. 무대에서 실제 관객들을 만나니까 에너지를 쓰게 되더라. 워낙 코믹하고 재밌는 요소들이 많다보니 관객 반응에도 되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분위기가 좋은 날은 힘들지 않게 가지만 차분하게 보시는 날은 그걸 끌고 가느라고 힘들기도 하다. 정말 공연하고 나서 성대 결절이 걱정될 정도로 목이 아프다. 하지만 관객들이 재밌게 보시면 우린 정말 안 힘들다.”

- ‘오만과 편견’이 현대 사회에 주는 가장 큰 공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자신의 판단력을 과신하고 굉장히 편파적으로 사람을 보는 태도가 주는 좋지 않은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오만하게 보일 수 있는 태도를 보였고, 그걸 또 어떤 사람은 일부만으로 굉장히 편견을 가지고 보고. 둘 다 나중에 서로를 통해서 깨닫지 않나. 사실 여자에 대한 이미지나 결혼을 잘 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고 이런 것들은 요즘 시대와 맞지 않다. 나는 그런 포인트보다 중심인물들이 하고 있는 모순된 행동과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 구성이 우리의 이야기 같더라. 제인 오스틴이 소설을 쓸 때 모든 인물들이 결함을 가지고 있게끔 만들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교육으로도 바꿀 수 없는 선천적인 결함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라는 다아시 말처럼 모든 인간이 다 각자 조금씩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나. 이 공연에서는 그런 부분을 유쾌하게 에둘러서 보여주지만 ‘맞아, 저럴 수 있지’ ‘나도 저랬던 적이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보던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것이 나한테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 경험을 해서 더 재밌었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인간관계에서 본인을 스스로 편협하게 만드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 폐막까지 한달도 남지 않았다. 아직 ‘오만과 편견’을 보지 못한 예비관객을 위한 관전포인트를 말하자면.

“‘오만과 편견’이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특히 영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지 않나.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영국 사람들이 ‘오만과 편견’을 오만가지 방법으로 공연을 하다 하다 이걸 2인극으로 만들었나.(웃음) 어떻게 2인극으로 할 생각을 했는지 너무 기발하더라. 근데 하다 보니 정말 굉장히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나이스한 공연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연이 주는 장점, 공연이 계속돼야하는 이유가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상상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공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 2명의 인물 안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보신다면, 그들이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걸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지점에선가 연습할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제 이렇게 하니까 얘가 이렇게도 보이고 인물들이 같이 있는 느낌이 드는구나’ 하는. 연기를 할 때도 얼굴들이 다 그 인물로 보여서 너무 신기했다. 똑같은 얼굴을 가진 두 배우가 어떤 때는 부부의 느낌을 내고 어떤 때는 자매의 느낌을 내고 어떤 때는 연인의 느낌을 내고. 그런 게 되게 매력적인 순간들인 것 같다. 그게 관객들한테 딱 보여지는 순간이 정말 연극적인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나 단출한 무대와 단 2명의 배우가 상상력을 자극해 풍성한 극을 보는 그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 독서실에서 공부하듯이 대본을 우리말로 바꾸고 외우고 무대에 올리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인 만큼 애정도 남다를 것 같다. 본인에게 이 작품이 어떤 의미인가.

“늘 힘든 작품을 할 때마다 ‘앞으로 못할 건 없어’ 이런 말을 하는데, 이 작품 하고 나선 진짜 못 외울 대본은 없을 것 같다. ‘인간의 뇌는 무궁무진하구나’ ‘결국은 이게 외워지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대사에 대해서 힘든 건 이제 앞으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들이나 연출들이 또 극한의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겠지만.(웃음) 내가 여태까지 했던 작품 중에 정말 1등으로 힘들었다. 그만큼 재미있는 작품인 건 두말할 나위 없고. 이런 식으로 1인 다역을 하는 건 처음이어서 나한테 되게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그걸 너무 좋은 배우들과 함께 나누고 있어서 뻔한 말 같지만 진짜 재밌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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