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이토록 보통의’ 이예은·정욱진 “소소한 일상 나누며 창작에 매진”
2019.09.23 오전 1:24
“보통 유지하기 쉽지 않아…소중한 순간·의미 있는 인연 챙기는 계기 됐으면”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이 좋은 멤버들과 함께 하다 보니 창작의 고통이 어느새 창작의 희열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뀐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죠.”

정욱진은 ‘이토록 보통의’가 창작 초연 뮤지컬인 만큼 힘든 점도 있었지만 공연을 올리면서 느낀 만족감에 대해 이같이 표현했다. 이예은도 새롭게 도전한 작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사진=조성우 기자]


두 배우가 현재 출연 중인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는 옴니버스로 구성된 캐롯 작가의 동명의 웹툰 원작 중 두 번째 단편작인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를 다룬다.

박해림 작가와 이민하 작곡가, 김태훈 연출, 주소연 음악감독, 홍유선 안무가가 의기투합해 한국콘텐츠진흥원 ‘만화 연계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작품이다.


이예은은 우주에 가는 것이 꿈인 우주항공국 직원 ‘제이’ 역을 맡았다. 제이는 매사에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로 어린 시절부터 꿈꿔 오던 우주 비행을 앞두고 가치의 차이로 연인인 은기와 갈등한다.

정욱진이 연기하는 ‘은기’는 제이와 보통의 하루를 계속해서 함께 보내는 것이 꿈이다. 제이와 달리 순수하고 섬세한 성격의 인물로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해 제이의 선택에 상처를 받는다.

제이와 은기를 통한 사랑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사랑하고 이별하기도 하는 ‘이토록 보통의’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설정 자체는 평범하지 않다. 두 인물 간 사건과 이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네 일상과 다르지 않아 자연스레 공감이 가는 특별한 작품이다.

이예은과 정욱진은 ‘이토록 보통의’를 무대로 옮겨오기 위해 배우·창작진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무대 위 인물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 작품 관련 다양한 얘기를 진솔하게 전했다.

[사진=조성우 기자]
다음은 배우 이예은·정욱진과의 일문일답.


- 작품 출연 계기는 무엇인가.


이예은 “나는 일단 2인극이 되게 끌렸다. 연기적으로 긴 호흡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연극적인 작품을 하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떻게 보면 완벽하게 이어지는 사랑은 아니지만 내가 사랑에 대한 주제를 가진 작품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런 것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주라는 소재를 차용했단 것 자체도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다. 제이의 여정이 굉장히 공감이 됐고 웹툰도 봤는데 너무 좋았다.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아서 ‘되게 잘 표현해보고 싶다’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정이 생기더라. 그래서 결정하게 됐다. 사실 많은 고민은 안했던 것 같다. 2인극이 힘들 수도 있는데 나에게 명확한 해석이 있고 그 호흡을 내가 운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깊이 빠져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걸 해내고 싶었다.”


정욱진 “대본을 받기 전에 제작사 대표님과 PD님을 만났다. 두 분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일단 너무 와 닿았다. 또 대본을 읽기 전에 스태프 이름을 보니 믿음이 가더라. 무대디자인 하시는 선생님과 소품 선생님은 ‘시데레우스’부터 ‘너를 위한 글자’까지 연달아 나랑 같이 하고 계셨다. 연출님은 2014년에 ‘원스’에서 만났고 음악감독님의 대표작 중에 ‘키다리 아저씨’ 빼고 내가 다 같이 했다. 안무감독님은 ‘차미: 리부트’ 트라이아웃 공연을 같이 했는데 굉장히 나이스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마케팅하는 랑 팀도 ‘시데레우스’ 때 나랑 굉장히 잘 맞았다. 스태프와 배우들 이름만으로도 믿음이 간 상태에서 대본까지 좋으니 굳이 안할 이유가 없었다.”


[사진=조성우 기자]
- 각자의 캐릭터를 애정을 담아 소개해 달라. 캐릭터 분석 과정에서 어떤 매력에 끌렸나.


이예은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단순하게 이 친구는 사랑도 하고 있고 꿈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이 크고 진취적인 여성이라고 생각을 했다. 근데 대본을 계속 읽다보니까 ‘왜 우주에 대해서 저렇게 갈망하고 원하는가’를 생각하게 되더라. 별은 사라지고 또 태어나고 다시 사라지고 태어나고 이런 걸 반복하니까 이 친구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은기보다 삶에 대해서 조금 더 회의적이고, 예민하고 외롭고 공허함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주를 보면서 더 나아가고자 했고 여기서 찾지 못하는 것을 가서 발견하고 그걸로 위안을 얻고 싶어 한 친구라는 생각이 드니까 더 매력적이더라. 하면서 더 애착이 많이 가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정욱진 “2인극이지만 메인 스토리는 제이가 갖고 있다. 은기는 제이의 행동에 따라, 제이의 생각 속에서 등장을 하기 때문에 제이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는 거다. 우리 작품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지 않나. 푸는 재미가 있다. 나도 사실은 7회 공연을 했는데 한번 공연할 때랑 2~3회 할 때랑 느껴지는 게 다르더라. 나는 이걸 다 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제이의 경우 사람으로서 지금 상황에 닥친 인물로서 연기해야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배우들이 갖고 있어야 풀리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은기 역할 자체는 흐름을 모르는 게 더 유리하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도 잘 모른다. 다른 작품은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그 흐름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알면 더 불편할 것 같더라. 은기가 포맷되기 전까지는 그냥 나는 사람이라고 믿고 연기한다. 로봇 은기도 그렇게 믿고 행동을 하는 거지 않나. ‘나는 은기라는 사람인데 안 죽었고 사고 후 다시 깨어나 니스에 갔다’고 그 상황에 맞게 생각한다. 날것으로 들어가서 흐름을 따라가니까 매회 거듭될 때마다 보이는 게 다르다. 그런 식으로 해야 반전의 상황이 더 충격적으로 느껴지더라. 그게 이 작품에서 의도하는 거다. 시점도 너무 많이 바뀌니까 그걸 내가 다 인지하고 연기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일 것 같았다. 나는 리액션을 하는 역할이고 액션은 사실 제이들이 하는 거다. 모든 건 다 제이의 머릿속에 있는 내용이니까. 중간에 갑자기 ‘도시 위에서’의 첫 만남은 뭐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건 은기의 상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여행까지 같이 갔다 온 그 여자친구가 가짜였대, 그러면 이건 뭐지’ 하는데 그 생각을 한 거다.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며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고는 인간 제이한테 ‘도저히 안되겠다, 헤어지자’ 했는데 포맷이 딱 되는 거다. 그런 식으로 나는 이번 작품에서는 끝까지 큰 흐름의 답을 내리지 않고 할 생각이다.”


[사진=조성우 기자]
- 창작 초연이라서 연습기간에 배우들끼리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것 같다.


이예은 “아무래도 창작이니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게 너는 가능하냐’ ‘이게 말이 되냐’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배우들끼리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서로 연애관·경험담 등 사적인 얘기들이 나오게 되니까 더 친근하게 빨리 친해졌다. 되게 재미있었다.”


정욱진 “넘버 중 ‘니스’라는 곡이 있는데 그 가사가 대한민국 창작뮤지컬의 현실을 여실 드러내고 있다. ‘끝이라 생각한 순간 다시, 마지막이었던 순간 처음으로’ 이런 가사가 나온다. 연습을 오랫동안 계속 하다보니까 아닌 것 같은 것도 있고 더 좋은 게 생각나기도 하고, 그런 게 되게 많았다. 무대 자체가 상상력에 따라서 이렇게 바뀌고 저렇게 바뀌고 하니까 더 그랬다. 공연 2주 전에 처음으로 공연 때 쓰는 스툴이 들어왔는데 그날 다 바뀌었다. 무대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스툴이 그 전에 놓고 연습하던 의자랑 너무 달랐던 거다. 무게감도 다르고 크기도 각각인데다 불이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는지 체크해야 했다. 끝이라 생각하고 마지막이었던 순간이 처음으로 돌아갔고 우린 다시 시작했다. 어차피 대사·가사는 익숙했고 배우들끼리 주고받는 호흡도 거의 완벽했기 때문에 연기적인 흐름 안에서 어렵지 않게 바꿨다.”


이예은 “너무 재밌었다. 되게 웃픈 사연이다. 시간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해냈어야만 했다. 그래서 더 정신 차리고 신경을 곤두세워서 했다.”


- 팀워크가 정말 좋았나보다.


정욱진 “한 5년 전만 해도 ‘텐투텐’(오전 10시~오후 10시 연습)이라는 용어가 흔했다. 사실 그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어긋나지 않나. 요즘엔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막바지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고 보통 오전 11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난다든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가는 추세다. 우리 작품은 끝이라 생각한 순간 다시 해야 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돌아가고 그러다보니까 우리가 자발적으로 좋은 마음으로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했다.”


이예은 “오후 2시 콜이어도 항상 2~3시간 전에 와 있었다.”


정욱진 “‘텐투텐’을 간만에 해봤다. 정말 좋았던 순간은 밤 10시 반쯤 되면 연습실 관계자가 나가라고 하는데 그분들이 천사 같았다. 내색은 못했지만 너무 고마웠다.(웃음)”


[사진=조성우 기자]
- 가족적인 분위기였을 것 같다. 연습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정욱진 “배우들끼리 회사에서 잡아준 식당 말고 중간중간 외식을 하기도 했다. 두섭이 형 차가 크다. 형 차를 타고 점심시간에 잠깐 성북동 가서 갈비탕도 먹고 오고.”


이예은 “아! 그게 우리 나름의 일탈이었지. 음원공개를 위해 녹음을 한 날이었다. 연습실에 들어가야 되는데 2시간 정도 텀이 생긴 거다. 그래서 두섭이 오빠 차를 타고 ‘뭐 먹을까’ 이러고 있다가 ‘성북동 가서 맛있는 거 먹자’ 해가지고 소심한 일탈을 했다.”


정욱진 “그러고 오면서 ‘이토록 보통의 행복이 멀리 있지 않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이예은 “팀원들이 적어서 가능했던 일이겠지만, 이번에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고 소소한 얘기들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진짜 좋았다. 사실 해내기 급급했던 것도 있고 빨리 만들어야 되니 엠티도 못 갔다. 이대로 갔으면 너무 재밌었을 것 같은데 좀 아쉽긴 하다. 두섭이 오빠도 서핑을 좋아하고 작품에 바다도 등장하지 않나. ‘니스는 못 가도 양양 바다라도 보고 와야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일상적인 얘기를 많이 해서 재밌었다. 보통의 일상을 한껏 즐겼다. 잠만 따로 자고 사실 가족보다 더 많이 봤다.”


- 연습실 분위기는 어땠나.


이예은 “연습실이 지하 5층이었는데 굉장히 조용했다. 그런데 천장에 노출배관이 있어서 화장실 소리가 되게 크게 들렸다. 슬프고 감정적인 장면에 집중해서 ‘넌 누구지’ 하는데 갑자기 물 흘러가는 소리가 나고. 너무 웃긴 거다. 소리가 정말 컸다. 아! 빨리 친해지니까 그런 것도 있더라. 웃음이 터진다. 진지하게 연기하면서 울고 있는데 그 모습이 캐릭터가 아닌 배우로 보이니까 너무 웃겼다. 내가 많이 웃어서 좀 미안한 부분이다. 특히 정휘 할 때 엄청 웃었다.”


[사진=조성우 기자]
- 각각 상대배우와의 호흡을 얘기해 달라.


이예은 “비슷비슷한데 두섭이 오빠야말로 제일 베테랑이지 않나. 굉장히 중심을 잘 잡아줘서 우리가 잘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한다. 각자의 생각들이 다 펼쳐져 있었는데 두섭이 오빠와 연우 언니가 중간에서 잘 잡아줬다. 두섭이 오빠의 은기도 듬직하다는 걸 지울 순 없다. 나이나 오빠가 선배란 걸 떠나서 오빠 성격이 기복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되게 듬직하다. 제이는 은기가 자기 옆에 있을 거고 떠나지 않을 거고 나에게 돌아올 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는 친군데, 두섭이 오빠는 제이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은기다. 그리고 두섭이 오빠는 긴 다리에 마른 몸이라고 해야 되나? 만찢남 같다. 오빠가 실제로 멜로를 많이 해서 나는 그런 인상을 갖고 있다. 이 작품의 원작이 웹툰이지 않나. 그래서 처음 회식날 내가 오빠한테 그런 얘길 했다.”


정욱진 “만찢남 이미지도 있지만 얼마 전에 우리가 시파티를 했는데 두섭이 형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형의 ‘늑대의 유혹’ 커튼콜을 봤는데 형한테 그런 모습이 있는지 몰랐다. 춤도 잘 추고 아이돌 같아서 굉장히 새로웠다.”


이예은 “휘는 꽃사슴 눈을 가졌다. 밤비 같은 느낌이다. 나에게 휘는 그렇다. 그 친구 눈망울이 우수에 차서 쳐다보면 되게 미안해지는 그런 느낌이 있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은기다. 걔는 진짜 눈빛이 되게 좋다. 연우 언니랑도 그런 얘길 많이 했다. 그리고 음색에서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뭔가를 갖고 있는 친구다. 휘 같은 경우는 인사만 하다가 처음 만났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굉장히 내실이 있는 친구더라. 생각이 깊고 배우로서의 열정도 있다. 휘랑도 이번에 얘길 진짜 많이 했다. 배우로서 가지는 가치관이라든지 그런 얘기도 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되게 좋은 배우의 발견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되게 좋은 친구 같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잘됐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더 들더라. 다음에 또 만나고 싶은 배우다. 욱진이 오빠랑 둘이 장난도 많이 치는데 휘도 생각보다 능글맞다.(웃음)”


정욱진 “다들 내가 장난을 치면 정휘가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진다. 나의 능글맞음이 거의 톱급인데 정휘는 나보다 센 것 같다. 내가 장난치면 더 큰 장난을 친다.”


- 최연우와의 연기 호흡은 어떤가.


정욱진 “연우 누나는 외모에서 풍기는 작고 소중한 작소과 이미지와 굉장히 반대되는 매력이 많더라. 에너지가 넘치고 털털하다. 무대 위의 배우가 연기로 여러 인물을 만들지만 결국엔 자기 자신에서 출발하고 자기 자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좋은 연기라고 믿고 있고. 특히 2인극이다 보니까 연기를 하다보면 그 사람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연우 누나는 좀 더 시원하고 예은인 따뜻한 그런 마음이 생긴다. 두 배우가 친하지만 생각하는 것도 정말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작품에 대한 분석이나 인물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다르다. 배우들의 상상력에 따라서 흐름이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다 보니까 제이의 어떤 단면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허용이 된다. 둘 다 맞는 이야기다. 큰 흐름은 같으나 그 안에 갖고 있는 것들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페어가 바뀌어서 공연을 할 때마다 설레고 재미있다.”


[사진=조성우 기자]
- 김태훈 연출이 세트를 ‘기억의 방’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이예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들 중 뭐가 진짜이고 뭐가 가짜인가, 무엇이 실존하는 것인가’ 이런 얘길 되게 많이 했다. 기억 속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작품에서 되게 중요하다. 복제된 제이와 은기에게 인간 제이가 없는 1년 동안 다른 기억이 생긴 거지 않나. 작가님도 그 기억 자체가 진짜 제이와 복제된 제이의 큰 차이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억’이란 단어가 굉장히 중요하다. 스툴과 뒤에 있는 픽셀화된 무대장치들이 그 기억을 담당을 하고 있다. 스툴들이 공간의 전환에 사용되기도 한다.”


정욱진 “스툴을 비롯해 컵과 벽 등 다른 소품들도 다 조각조각 디테일하게 돼있다. 내 생각에는 디스크 조각모음 하는 것처럼 다 기억의 조각들이다. 우리가 스툴을 열어서 니스 책자도 꺼내고 여행갈 때의 가방 등 우리의 기억과 소중한 순간을 꺼내는 것들이 몇 군데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포맷이 돼 다시 기억을 찾아갈 때 처음 기억을 열고 기억을 찾는 것도 있다. 이런 조각조각들이 영상에 따라 바뀌지 않나. 나는 공연을 하면서 그 영상이 어떤 과거를 쏜다고 보고 그때를 투영한다고 생각했다.”


이예은 “초반에 동선을 짤 땐 소품들이 더 많았다. 우리가 숫자를 정해놨는데 ‘이 스툴은 은기의 기억을 담당하고 이 스툴에는 니스의 소품들만 있고’ 그런 식으로 담당을 하나씩 해뒀다. 거기서 나중에 몇 개가 제외됐다.”


- 혹시 무대 위 실수담이 있나.


정욱진 “실수라기보다는 스툴이 작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감정적인 신들이 많은데 스툴에 올라갈 때 아래로 볼 수가 없지 않나. 그러다보니까 예은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몇 번씩 삐끗할 때가 있었다. 큰 실수는 없었다.”


이예은 “재밌는 건 있었다. 둘이 붙어있는데 서로 먼저 손을 잡으려고 한 거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상대배우 손이랑 엉켜서) 손이 이렇게 빠져가지고 순간 그 손이 외로워지게 되는 상황.(웃음)”



- 내 삶의 보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 하나씩만 말해보자.


이예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람이 성장함에 따라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우리는 직업 특성상 환경이 굉장히 많이 바뀌지 않나. 그리고 일도 좀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업 앤 다운이 다소 심하고 변질될 가능성이 높은 삶의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변질되지 않도록 기본을 잘 지켜야 되겠단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좀 고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들더라도 원칙적으로 단계를 밟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작업을 할 때도 기본적으로 차근차근 밟고 나가야하는 원칙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보니까 가끔 스스로 정한 틀에 갇히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기본을 지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진짜 어렵다. 많은 유혹도 있지만 최대한 잘 지키려는 나름의 고집이 있다.”


정욱진 “우리 작품이 어떻게 보면 워라밸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은기가 ‘나는 소소하게 별 보면서 있었던 일 얘기하고 가끔 니스 놀러간 게 좋았다’고 얘기하는데 당시의 제이에겐 일이 너무 중요했다. 나도 그런 면이 있어서 너무 공감한다. 일이 최우선이 되는 시기가 누구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엔 제이가 조금 후회하는 건 적당한 일, 워라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보통을 유지하기 위해 집중을 덜 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요즘의 내 관심사다. 20대를 나름 너무 열심히 살아서 놓친 게 너무 많다. 친구나 가족에게서 전화가 오면 목 아프니까 문자로 얘기하자고 하고. 사람을 많이 경험하고 보통의 일상과 삶을 누려야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가짓수나 깊이가 늘어난다고 믿게 됐다. 연기를 더 잘하고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 보통의 삶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와중이다.”


- 아직 작품을 보지 못한 예비관객을 위한 관전포인트를 짚어 달라.


이예은 “나는 이 작품을 봤을 때 우주라는 공간이 미지의 세계고 ‘우주가 있는가보다, 그 안에 우리가 살고 있는가보다’ 했다. 우주에 대한 생각이 깊지 않았다. 그런 걸 사랑이나 인생에 대입해서 생각을 해봤다. 사랑이나 인생도 나한테는 명쾌하게 규정돼있는 논제가 아니다보니 궁금했다. 제이의 태도와 선택들을 자기 자신에 빗대서 생각하고 그 여정을 따라감에 있어서 많은 질문들을 갖지 않을까 생각한다. 캐롯 작가님이 ‘이 작품이 당신에게 어떤 답을 제시해주는 작품은 아니다,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 말에 공감을 한다. 이 작품을 관람하시면서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라면 어떤 식이었을까’ 또는 ‘내 삶은 어땠을까’ 하는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순간순간들이 더 소중하고 내 주변 사람들과의 인연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욱진 “만약에 이 인터뷰를 보시고 우리 작품이 궁금하신 분들이나 자첫(해당 공연 첫 관람)을 미뤄왔던 분들은 자둘까지 같이 잡으시라고 추천한다. 종일반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낮 공연과 저녁 공연 사이 2시간 정도 비니까 궁금한 부분 정리해뒀다가 다시 보면 작품의 매력까지 보일 것이다. 이 공연을 처음 보려고 마음먹으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두 페어를 보시라.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종일반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박은희 기자 ehpark@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