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여행]<21> 걷기예찬
2019.01.24 오전 10:00
주변에서 새해 계획으로 걸어서 출퇴근하기, 도보여행 등을 꼽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바쁜 생활 속에서 우리는 늘 바퀴에 의지해 살아간다. 자가용,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우리를 실어 나르는 고마운 탈 것들 때문에 점점 두 발이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이다.


그래서 걷기를 실천하는 것은 이러한 의존을 깨고 내 몸을 더 잘 써야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걷기예찬'이란 책을 쓴 다비드 브르통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방식'이며 '관능으로의 초대장'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의 뼈 207개 중에서 25%에 이르는 52개의 뼈가 두 발에 모여 있다고 한다. 두 발이 땅을 굳건히 딛고 있을 때 사람은 자신과 세상의 맥박이 일치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걷기는 치매를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뇌 활동에 필수적인 것이 뇌혈류와 아세틸콜린이다. 혈류가 충분하지 않으면 뇌신경세포가 약해져서 쉽게 사멸하며 신경세포의 재생도 어려워진다. 그런데 우리가 걷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뇌의 혈류가 저하되고 혈류저하는 신경세포 재생산을 저해한다.

고령자, 특히 알츠하이머형 치매환자들의 대뇌피질이나 해마에서 혈류저하가 종종 발견된다. 대뇌피질이나 해마는 기억을 관장하는 뇌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 걷기를 하면 아세틸콜린 신경전달물질이 활성화되는데 이는 대뇌피질과 해마의 혈류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걷기의 중요성 때문에 종아리의 굵기를 재어 치매위험도를 예측하는 연구마저 있다.

물론 걷기 뿐 아니라 운동 자체가 치매에 영향을 미친다. 운동할 때 근육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이리신 결핍이 알츠하이머와 관련된다는 연구가 있다. 이리신은 근육조직에서 만들어져 혈액을 통해 온 몸에 전달되는 신호전달단백질이인데 치매환자의 뇌에는 이리신이 적다고 한다. 쥐의 뇌에 이리신을 차단했더니 학습과 기억력이 저하했다.

걷다 보면 온갖 고민이 사라진다. 걷기는 뇌를 자극해 평소 풀지 못했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걷기는 의욕을 북돋워준다. 걷다 보면 식욕도 돌고, 수면문제도 해결된다. 그래서 걷는 사람의 뇌가 젊다.

일본 군마현에서 65세 이상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2000년부터 장기추적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꾸준히 걷는 고령자들에게서 치매 발병률이 낮았다고 한다.

하루에 5천보를 걸었던 고령자들은 치매발병률이, 하루 4천보를 걸었던 노인들에게서는 우울증 발생이 유의미하게 적었다. 또 8천보를 걸었던 고령자들은 걷지 않는 고령자들에 비해 다른 질병의 발생률도 낮았다고 한다.

그런데 노인이 되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걷기'도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 다리 근육이 줄어들고 무릎 연골이 닳아 걷는 것이 고통스러워진다. 무릎연골이나 인대에는 신경세포가 없어 관절염 치료는 매우 어렵다. 최근에는 고가의 줄기세포 주사니, 무릎수술들이 있지만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걷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다면 조금씩 걷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무릎에 가해지는 적당한 자극은 신경세포 재생을 돕기 때문이다.

사실 통증을 호소하는 노인들의 경우 연골이 닳고 인대가 찢어져서이기도 하지만 통증의 직접 원인은 염증 때문이다. 80대인데도 다람쥐처럼 산을 오르는 노인들도 있는 데 이들의 무릎이 멀쩡해서가 아니라 통증을 못 느껴서이다.

그런데 아프다고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종아리근육은 점점 사라지고 치매의 위험은 더 커진다.

관절염 치료에서는 통증을 줄여가면서 재활운동을 실시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긴다.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에게 무조건 집안에 앉아 계시라고 하는 것보다 조금씩 걷는 것을 도와드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집 안에 핸드레일을 설치하고, 벤치가 곳곳에 놓여져 있어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거리 만들기도 필요하다.

최근 일본을 방문했을 때,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인구가 부쩍 줄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택가를 걷다 보면, 허약노인이 비틀비틀 걷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허리가 90도로 꺾인 할머니가 보행기를 밀면서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이나 쇠약해진 모습의 할아버지가 식료품이 든 비닐주머니를 들고 비틀비틀 걷다가 거리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시 걷는 모습을 보게 됐다.

최근 일본은 노인들을 위한 시설서비스를 줄여가고 있다. 대신 허약노인들도 자택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돈이 많거나 아주 심각한 상태가 아니면 혼자서 생활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외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쑤시는 다리를 끌면서 장을 보고 병원에 가야 한다. 힘들지만 다들 이러한 자립생활에 적응해 가는 모습이었다.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지리학을 강의하는 조용헌 선생은 육산인 지리산과 골산인 설악산을 빗대어 '사는 것이 외롭다고 느낄 때는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 기운이 빠져 몸이 처질 때는 설악산의 바위 맛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걷기를 통해 외로움도, 피곤함도 다 날려버려야겠다. 2019년 늦었지만 해 보는 각오이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